산행일시: 2015년 10월 20일 화요일 (맑은 후 흐림)
산행코스: 소청 대피소 ~ 소청 삼거리 ~ 희운각 대피소 ~ 무너미고개 ~ 천불동 계곡 ~ 설악동
산행거리: 10.1km
산행시간: 06:10 ~ 12:35
산행트랙:
등산지도:
어제저녁 추워서 일찍 대피소로 들어가 9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다행히 코 고는 사람도 없고 잠꼬대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바닥이 딱딱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뒤척이다 밖에 나가서 밤하늘의 별을 구경하였다.
그렇게 들락날락하다 2시 이후 깜박 잠이 들었다 깬 것 같다.
시계를 보니 4시가 조금 안되었다.
4시가 지나니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어 잠도 안 오는 김에 나도 그냥 일어났다.
아침을 먹고 짐을 꾸리고 꽃단장을 했다.
좀 밝아진 다음에 산행을 하려고 할 일 없이 꾸물거리다 6시 10분에 산행을 시작하였다.
소청 삼거리에 도착하니 이미 몇 사람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여명에 공룡능선과 울산바위가 신비롭게 보인다.
오늘은 운해가 없지만 이 모습도 충분히 멋지다.
소청 삼거리에서 대청봉까지는 1.2km인데 바람도 불고 하여 skip 하기로 하였다.
대청봉은 몇 번 가보았으니 아쉬울 건 없다.
이번 산행은 수렴동, 구곡담, 천불동 계곡을 보는 것이 주목적이니까 구태여 대청봉을 올라갈 필요는 없겠지.
소청 삼거리에서 희운각 대피소 내려가는 길은 너덜 내리막이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쉬엄쉬엄 내려갔다.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던 해는 쑥쑥 위로 올라와 7시쯤 되자 온 세상을 환히 비췄다.
맑은 하늘에 대청봉도 선명하게 보인다.
희운각 대피소에 도착하여 미사리 님을 만났다.
희운각 대피소
아침을 준비하는 중인데 그러지 않아도 내가 내려오지 않을까 하여 밖을 살피고 있었다고 한다.
난 미사리 님이 벌써 공룡능선으로 떠났으리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니 정말 반갑다.
희운각 대피소 벤치에서 커피를 마셨다.
앞에 앉은 두 아가씨는 홍콩에서 왔다고 한다.
새벽 4시에 설악동에서 올라왔다고.
대청봉에 갔다가 다시 설악동으로 내려갈 거라고 한다.
같이 커피를 마시며 한참 노닥거리다 길을 떠났다.
무너미 고개로 가기 전에 있는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전에 왔을 때는 못 올라가게 막아놓았었는데 오늘은 줄이 없어서 전망대에 올라가 사진을 찍었다.
무너미고개에서 비선대까지는 5.3km 란다.
무너미고개
기어가도 12시 전에 비선대에 도착할 거 같다.
무너미고개에서 천불동 계곡으로 가는 길은 초반 가파른 너덜 내리막이다.
<내 몸은 소중하니까> 이러면서 천천히 내려갔다.
오늘은 천천히 간다고 해도 뭐랄 사람이 없으니까 정말 마음이 편하다.
500m 정도 내려가니 길이 편안해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계속 내려가는 길이고 계단이 많아서 나중에 집에 가서 하루 지나니 무릎이 시큰거렸다.
무릎이야 어떻건 일단 경치는 정말 좋다.
희야봉은 어디일까?
칠형제봉은 어디일까?
은벽길이나 별따소는 어디일까?
좌우에 도열해있는 기암절벽들이 다들 나에게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저기 가봐야 하는데.
저기도 가봐야 하는데.
갈 수 있을까?
산은 항상 그대로라지만 난 항상 그대로가 아닌데 내가 저런 데 가볼 기회가 있을까?
꼭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긴 계단을 내려가니 천당폭포가 있었다.
천당폭포
계단과 데크가 잘 설치되어 있는데 그런 것이 없던 예전에는 여길 어떻게 왔었을까 싶다.
양폭 대피소 아래 계곡에서 족탕을 하며 간식을 먹었다.
양폭 대피소
천불동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낭만과 환상 그 자체이다.
멋있는 경치를 볼 때마다 붕 떠있는 같은데 나만 그런가?
중독성이 강해서 그 맛을 보기 위해 자꾸 산을 찾는 것 같다.
오련폭포
오련폭포는 상당히 길고 구부러져있는 데다 등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사진 찍기가 힘들었다.
다섯 개의 폭포가 연이어져 있다고 해서 오련폭포란다.
가까이에서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ㅠㅠ
천당폭포를 지나면서부터 다시 보이기 시작하던 단풍은 양폭 대피소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지난주에 천불동 계곡을 다녀간 미사리 님이 이미 단풍이 지고 있다고 해서 기대를 안 했었는데 너무 예쁜 모습에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다.
경치는 너무 아름다운데 어느 암벽에 보니 추모판이 붙어있었다.
아마 이곳 어디메쯤에서 잠든 산꾼을 기리기 위한 것이겠지.
산이란, 자연이란 언제든 우리에게 겸손하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저 나에게도 좀 더 많이 볼 수 있도록 허락해주길 바랄 뿐이다.
조심스러운 마음도 잠시 뿐 주위 경치에 또다시 마음이 붕 뜬다.
귀면암
계곡에 떨어진 낙엽은 물속에서 금 조각마냥 반짝거린다.
이런 곳이라면 잠들어도 그다지 억울하지 않을 것 같은데.
하루를 살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다 가야 하지 않을까?
난 상당히 겁이 많으면서도 때론 당돌하고 겁이 없다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아마도 그것은 내 안에 있는 호기심 때문인 것 같다.
궁금한 건 꼭 알아야 하고 해보아야 하는 호기심.
그 호기심이 나를 삼키지 않도록 또한 조심해야 할 것이다.
비선대가 보이는 걸 보니 이제 산행이 끝마무리에 들어가겠구나.
금강굴 쪽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을 지나니 갑자기 사람들이 많아진다.
설악동으로 내려가는 길은 수렴동 계곡이나 천불동 계곡보다 단풍이 덜 들어 있었다.
70대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완벽한 등산 복장을 하시고 올라오시기에 어디까지 가시느냐고 하니까 목적지가 비선대란다. ^^
비록 비선대까지만 갈지언정 한껏 멋과 기분을 내고 오신 그분들이 예뻐 보인다.
문득 내가 70세가 되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다.
설악 탐방안내소에서 설악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12시 35분.
속초에 나가서 회를 한 접시 먹고 가면 좋을 텐데...
내년 가을에도 이 아름다운 설악을 볼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