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15년 10월 23일 금요일 (흐림)
산행코스: 한천 주차장 ~ 민주지산 ~ 석기봉 ~ 은주암골 ~ 황룡사 ~ 한천 주차장
산행거리: 12.5km
산행시간: 10:15 ~ 16:30
산행트랙:
등산지도:
영동에 들어서니 감나무가 많이 보인다.
심지어 가로수도 감나무이다.
주렁주렁 매달린 주황색 감들이 탐스러워 보인다.
가을 기분에 한껏 젖은 채 민주지산 산행을 시작하였다.
한천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그 넓은 주차장에 달랑 우리 버스 한 대만 있을 뿐이었다.
장승이 서있는 물한 계곡 표지석 앞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조금 가다 보니 또 다른 물한 계곡 표지석과 장승이 있었다.
그 옆에 철책이 끊어진 곳으로 가면 각호산으로 가는 길이다.
오늘 가을국화 대장님은 각호산은 안 가시고 민주지산만 가신다고 한다.
그래서 각호산을 가는 남자들을 따라 올라갔는데 초반부터 어찌나 빨리 가는지 금방 뒤처지고 말았다.
'혼자 가야지, 뭐' 하고 생각하는데 뒤에서 한별이 따라왔다.
무릎이 아프다고 대장님과 민주지산만 가겠다더니 뒤늦게 마음이 변했나 보다.
사방댐이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올라갔다.
길은 널찍이 잘 닦여있었다.
이 각호산(배겨리봉) 안내판이 있는 곳까지만 해도 잘 갔는데...
가다 보니 어느 순간 길이 없어졌다.
눈을 들어보니 각호산은 오른쪽에 있는데 우리는 왼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되돌아 내려가기도 그렇고,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가기도 그렇고, 일단 능선으로 올라가 보기로 하였다.
한참 가파른 비탈을 힘들게 올라가 능선에 이르렀다.
그런데 양 옆이 깎아지른 칼날 능선이었다.
다리가 후덜덜 떨리는 걸 참고 기다시피 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아이고, 여길 나 혼자 왔었더라면 정말 큰일 날 뻔했구나.
그나마 한별이 산악회 후미대장을 한 덕분에 겁을 내지 않고 지도를 보며 길을 찾아 나아갔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개고생을 하다가 겨우 정규 등산로를 만날 수 있었는데 민주지산과 각호산 중간 지점에 있는 봉우리였다.
각호산까지 왕복 2km 정도면 될 것 같았지만 날도 덥고 알바하느라 너무 힘을 뺐더니 기운이 없어서 포기하기 그냥 민주지산으로 가기로 하였다.
산세가 민두름하다고 해서 '민두름산'이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민주지산'이란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전해지는 것처럼 민주지산 가는 능선 길은 편안했다.
하지만 기운이 빠져서 그런지 몸이 물 먹은 솜처럼 축축 처지며 천근만근 무거웠다.
오늘 산행 거저먹기라며 날아가는 한별을 쫓아 헐떡거리며 걸어갔다.
가다 보면 무인대피소가 나온다.
유일하게 국립공원이 아닌데 대피소가 있는 산이 민주지산이라고 한다.
1998년 특전사 천리행군 중 폭설로 군인 6명이 동사한 이후 세운 무인대피소라고 한다.
요새 <진짜 사나이>를 보니 특전사들이 정말 대단하던데 그런 군인들이 여섯 명씩이나 동사할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춥고 눈이 많이 왔었을까?
산에서는 항상 조심에 조심을 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대피소에서 민주지산 정상까지는 400m 남았다.
정상에 오르니 우리가 알바하다가 오른 봉우리와 그 뒤로 각호산이 보였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앞으로 가야 할 석기봉과 삼도봉이 보였다.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점심을 먹은 후 길을 떠났다.
민주지산 정상
정상에서 직진하면 내북마을로 가는 길이다.
석기봉은 왼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또다시 민두름한 산길을 따라가노라니 쪽새골 갈림길이 나왔다.
한천 주차장에서 물한 계곡을 따라가다가 쪽새골로 올라가면 민주지산에 좀 더 쉽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지쳐서 여기에서 내려가고 싶었지만 꾹 참고 석기봉을 향하여 발을 옮겼다.
석기봉은 암봉이라 올라가는 길이 다소 험하다.
하지만 오른쪽으로 우회로가 있으니까 걱정할 건 없다.
물론 난 끙끙거리면서도 바위 길로 올라갔지만.
석기봉 정상
다시금 삼도봉을 향하여 가는데 은주암골 갈림길에 이르니 마음이 심하게 흔들렸다.
삼도봉까지 1km 밖에 안 남았다는데 왜 이리 가기가 싫을까?
오늘 너무 덥고 너무 힘들다. ㅠㅠ
그래서 그냥 내려가기로 하였다.
예전 같았으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갔을 텐데.
지난번 관악산에서 떨어진 이후 약해진 건지 현명해진 건지 모르겠는데 포기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삼도봉은 대간 산행 때 갈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쉽게 포기하는 나 자신이 놀랍기도 하다.
은주암골은 길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경사가 있는 곳은 돌로 계단을 만들어놓아 내려가기가 훨씬 수월했다.
가다 보면 오른쪽에 약수터가 나온다.
누군가 페트병을 잘라 수도꼭지처럼 만들어놓았다.
급할 때는 요긴한 식수처가 될 것 같다.
또 내려가다 보니 곰이라도 살 수 있을 만큼 큼직한 동굴도 있었다.
산 위의 나무들은 잎사귀들이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었는데 이곳에 내려오니 만추의 느낌이 물씬 난다.
낙엽이 소복이 깔린 오솔길이 너무나 아름답다.
대장님께서 시간을 7시간 30분이나 주신 덕에, 게다가 각호산도 안 갔고 삼도봉도 안 갔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숲길을 천천히 음미하며 걸을 수 있었다.
삼도봉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부터는 따라 내려가게 된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계곡에서 족탕도 하고 쉬다가 내려갔다.
이런 숲에서는 요정이 살 것만 같다.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그런 마법의 숲인 것만 같다.
어디선가 Puck이 나타나 사랑에 빠뜨릴 것만 같다.
숲에 취해 가다 보니 아름다운 목교가 나타났다.
쪽새골로 올라가는 잣나무 숲 삼거리를 지나자 두 번째 목교가 나타났다.
이 숲에서는 나도 공주가 되는 것 같다.
저 다리 위에서 멋진 왕자님을 만날 것만 같다.
꿈 깨라잉!
와? 꿈도 못 꾸나?
출렁다리를 건너면 황룡사가 나온다.
황룡사를 지나면 민가가 나타나는데 스키 플레이트로 만든 울타리가 인상적이었다.
이 근처에 스키장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냈을까?
길 가의 가지나무에는 보라색 꽃이 피어 있고 앙증맞은 가지도 열려있었다.
가지가 나무에서 열리는 것인 줄은 오늘 처음 알았다.
서울 촌놈이라. ㅎ
가지나무
한천 주차장에 도착하니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각호산을 못 간 것도, 삼도봉을 못 간 것도 전혀 아쉽지 않았다.
아름다운 숲이 그 모든 것을 충분히 보상해주고도 남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