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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2016.08.01 백두대간 47차(3): 장터목 ~ 천왕봉 ~ 중산리

산행일시: 2016년 8월 1일 월요일(맑은 후 오후 비)
산행코스: 장터목 ~ 제석봉 ~ 천왕봉(지리산) ~ 장터목 ~ 중산리탐방안내소
산행거리: 대간 3.4km + 접속 5.3km = 8.7km
산행시간: 4:05 ~ 11:25
산행트랙:

장터목~천왕봉~중산리 20160801.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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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지도:

 

천왕봉 일출을 보겠다고 3시 30분에 일어났다.

사실 어젯밤에 거의 자지 못했다.

모포 한 장 깔고 자는데 몸이 배겨서 한 자세로 누워있을 수가 없어 계속 뒤척여야 했다.

게다가 오리털 패딩 재킷을 입었는데도 추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산에서는 잠을 잘 못 자더라도 별로 피곤하지가 않다.

공기가 맑아서 그런가?

긴장해서 그런가?

산행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하늘엔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내 똑딱이로는 별이 찍히지를 않는다. ㅠㅠ

배낭은 대피소에 놓아둔 채 4시 5분에 헤드랜턴을 켜고 천왕봉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는 1.7km인데 초반 제석봉과 통천문을 지나고 나서부터는 가파른 너덜 오르막이다.

한 치 앞 밖에 보이지 않는 캄캄한 새벽에 산을 오르려니 도대체 왜 무박산행을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좋은 산에 와서 주위를 둘러보지도 못하고 발밑만 보고 하는 산행은 난 싫다.

일출을 보려고?

이렇게 대피소에서 자는 경우라면 모르지만 단순히 일출을 보기 위해 버스 안에서 새우잠을 자고 땅만 쳐다보며 새벽 3~4시부터 산행을 한다는 것은 나에겐 의미가 없다.

그건 아마 내 산행의 목적이 <운동>이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오늘은 일출을 보려고 나왔으니 별이나 구경하며 가야지.

제석봉에 올랐다가 내려가 안부에서 약과와 초코파이를 먹었다.

 

제석봉 정상

5시 30분에 해가 뜬다니까 여유가 있어서 천천히 올라갔다.

5시쯤 되어 통천문에 이르니 주위가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한다.

 

정상에 다가갈수록 점점 더 밝아진다.

 

정상으로 가는 길 왼쪽에 칠선 계곡에서 올라오는 길이 있다.

칠선 계곡에서 올라오는 길은 탐방예약제로 5, 6, 9, 10월에만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로또에 당첨되는 것만큼 어렵다고 하지만 언젠가 거기도 가봐야 할 텐데 말이다.

 

하늘을 보니 오늘 어쩌면 운해도 보고 일출도 볼 수 있는 쌍복이 터질 것 같다.

 

정상에는 사람들이 이미 많이 올라와 해가 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정상석을 찍은 후 나도 자리를 잡고 앉아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천왕봉 정상

5시 40분경 드디어 해가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인데 내가 덕이 많긴 많은가 보다. ㅋㅋ

오늘 내 바람대로 운해도 보고 일출도 보았다.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은 세 가지이다.

로터리 대피소를 거쳐 중산리로 내려가는 길과 대원사로 내려가는 길, 그리고 다시 장터목으로 가서 중산리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나는 배낭을 장터목 대피소에 놓고 왔기 때문에 다시 장터목으로 가야 한다.

정상에서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으며 한참을 보내다가 다시 장터목으로 내려갔다.

 

장터목에서 천왕봉 사이의 길은 올라올 땐 어두워서 못 봤는데 너덜길이라 험하지만 예쁜 길이다.

 

역시 올라갈 때 제대로 볼 수 없었던 통천문도 보았다.

 

통천문

이렇게 멋진 풍경들을 못 보고 지나쳤다니!

되돌아갔기에 망정이지.

다시 한 번 무박 산행은 절대 안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이건 테디베어 같고,)

(이건 엄마 고릴라와 아기 고릴라 같다.)

장터목 대피소로 돌아가 느긋하게 북엇국으로 아침을 먹고 8시 30분이 넘어 산을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장터목에서 중산리까지는 5.3km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너덜 내리막이다.

특히 장터목에서 유암폭포까지는 아주 가파른 내리막이라 빨리 내려갈 수가 없었다.

뭐, 시간이 많아 빨리 내려갈 필요도 없었지만.

 

500~600m 정도 내려가면 계곡이 나오기 시작한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대로 수량이 많아 가파른 계곡을 따라 크고 작은 폭포들이 생겨났다.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뒤돌아보니 천왕봉에 이르는 능선이 보였다.

 

장터목에서 1.6km 내려가면 유암폭포가 나온다.

유암폭포에서 삼일 동안 지친 발을 달래주었다.

 

                      유암폭포

유암폭포를 지나고 나면 경사도가 조금 낮아진다.

그래도 중산리까지는 계속 너덜 내리막이라 생각하면 된다.

계단을 지나고, 흔들다리를 지나서 내려오다가 다시 한 번 계곡에서 쉬었다.

지나가던 국공들이 발은 담가도 되는데 수영은 하지 말라고 한다.

이렇게 앉아있는 건 괜찮다는 거지?

장터목에서 4km 정도 내려가면 천왕봉에서 로터리 대피소를 거쳐 내려가는 길과 만나게 된다.

 

천왕봉에서 장터목을 거치지 않고 바로 내려가면 빠르겠지만 로터리 대피소까지의 길이 무지막지한 내리막이라는 말을 들어서 그쪽으로는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쪽으로 내려가면 유암폭포를 볼 수 없다.

갈림길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칼바위가 있다.

 

칼바위

이후 중산리 야영장을 지나서 아스팔트 길을 따라 중산리 탐방안내소까지 내려갔다.

 

중산리 탐방안내소

버스는 1시 30분에 출발한다고 하였는데 11시 25분에 하산하였으니 거의 두 시간이 남았다.

산악회에서 주선해둔 탐방안내소 바로 옆에 있는 거북이 식당에서 3일 만에 샤워를 하고 점심을 먹은 후 상경하였다.

 

오늘 bucketlist 중 하나에 줄을 그었다.

과연 내가 지리산 종주를 하는 날이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오늘 그 꿈이 성취된 것이다.

내 눈으로 지리산을 보았다.

그리고 천왕봉 일출도 보았다.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 있지만 내게는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어쩌면 두 번 다시 못할 그런 산행이니까.

온몸은 물 먹은 솜처럼 무겁고, 하지정맥류 때문에 다리는 퉁퉁 붓고, 무지외반증 때문에 엄지발가락 뿌리 부분은 딛기 힘들 정도로 아프고, 여기저기 부딪힌 상처에다 모기에 물린 자국들로 성한 데가 없다.

2박 3일 일정이라 여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35km나 되는 장거리 산행은 내 체력으로는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사실 나 혼자서는 엄두를 못 낼 일이었는데 동행해준 산우들에게 너무나 감사하다.

무엇보다 내게 이런 기회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장터목~천왕봉~중산리 20160801.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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