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15년 4월 7일 화요일 (흐림)
산행코스: 옥천매표소 ~ 관룡사 ~ 구룡산 ~ 관룡산 ~ 드라마 세트장 ~ 화왕산 ~ 도성암 ~ 자하곡 주차장
산행거리: 9.9km
산행시간: 11:05 ~ 16:15
등산지도:
화왕산이 억새로도 유명하지만 진달래도 멋있다고 하여 진달래를 보러 갔다.
그런데 기대했던 진달래는 못 보고 대신 멋진 암릉을 보고 왔다.
꿩 대신 닭이 아니라 꿩 대신 봉황인 산행이었다.
옥천매표소에서 산행을 시작하였다.
관룡사로 올라가는 길은 벚꽃이 만발하였다.
요새 우리나라는 어디든 벚꽃이 많은 것 같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도 벚꽃이 만발한 길이 여러 군데 있었는데.
벚꽃은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반면 국화인 무궁화는 오히려 보기가 힘들다.
국화인 무궁화를 가로수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물론 나도 벚꽃을 좋아하지만 국화인 무궁화 보기가 힘들다는 건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무궁화 군락지를 만들어 상품화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조금 걸어 올라가노라니 멀리 병풍바위가 보인다.
그저 육산이려니 하고 왔는데 예상외의 모습에 호기심이 강하게 생겼다.
관룡사 석장승을 지나니 그야말로 병풍바위를 병풍 삼아 서있는 관룡사가 나타났다.
병풍바위와 관룡사
대장님께서는 용선대로 하여 관룡산으로 올라가라고 하셨는데 관룡사 옆에 있는 이정표를 보니 병풍바위 능선이 있단다.
오! 구미 당기는데?
그리하여 일행과 떨어져 관룡사에서 구룡산을 향해 오른쪽에 있는 옥천 제1등산로로 올라갔다.
한동안 오르막을 올라가서 진달래가 만발한 능선에 닿으니 조망이 확 트인다.
그곳에서부터 병풍바위 쪽으로 능선을 타고 가는 길은 암릉 구간인데 정말 이쪽으로 오길 잘했다는 자화자찬이 끊임없이 나오게 만드는 길이었다.
양 옆으로 절벽을 이룬 암릉은 좌로 보아도 좋고 우로 보아도 좋다.
아래로는 관룡사가 내려다보이고, 앞으로는 위풍당당한 병풍바위가 보인다.
관룡사
병풍바위
사진을 찍으려고 전망 바위에 올라서서 까마득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려니 다리가 후덜덜~~ 떨린다.
간간히 나오는 소나무 길과 암릉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경치가 너무 멋있어 사진을 찍느라 발걸음을 자꾸 멈추게 된다.
밧줄도 없는 험한 암봉을 기어올라가니 바로 앞에 또 다른 멋진 봉우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저기 가려면 먼저 수직의 절벽 같은 이런 길을 내려가야 한다.
조심조심 내려가서 보니 <등산로 아님>이란다.
옆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었는데 몰랐네.
하지만 그랬더라면 저 위에서 내려다보는 멋진 경치는 못 보았을 테지.
다시 암봉을 올라가니 의자바위가 있었다.
의자바위 뒤로 보이는 암봉이 방금 전 내려온 봉우리이다.
사진 왼쪽으로 우회로가 보인다.
다시 한번 당겨서 찍고.
우와, 멋지다!!
I've been there!!!
의자바위에 앉아 여왕님 흉내도 내본 후 계속 나아갔다.
병풍바위가 점점 더 가까이에서 보인다.
여기 있는 진달래를 보니 오늘은 아마 군락지에서 만개한 진달래는 못 볼 거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든다.ㅠㅠ
처음 도착한 능선에서는 진달래가 만개했는데 올라갈수록 진달래를 보기가 힘들다.
입을 꼭 다문 봉오리들만 있다.
아무렴 어떠랴.
오늘 멋진 암릉을 보았는데 That's enough!
부곡온천에서 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에는 종이로 만든 정상 표지판이 앞글자가 찢겨나간 채 땅에 떨어져 있었다.
구룡산 이정표
<O룡산>이라는데 이게 관룡산인가, 구룡산인가?
지도에 보면 관룡산과 구룡산이 분명 따로 있는데 검색을 해보면 관룡산이 일명 구룡산이란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산림청에 문의하니 뒤늦게 답변이 왔다.
문의하신 구룡산은 화왕산 군립공원 내 위치하는 산으로
관룡산과 같은 산은 아니고 관룡산에서 700여 m 정도의 거리에 있는 산입니다.
화왕산 군립공원에는 3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화왕산, 관룡산, 구룡산 봉우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분명 관룡산 정상석이 있던데 그럼 여긴 구룡산이겠지?
나중에 알고 보니 구룡산 정상석은 부곡온천 쪽으로 조금 더 가서 있었다. ㅠㅠ
관룡산 정상까지 가서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데 경치에 홀려 사진을 찍느라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나 보다.
배가 고파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용량이 적은 나는 제 때에 먹지는 않으면 시쳇말로 엥꼬가 난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기 전에 먹어야 하는데.
지금이라도 먹어야 하는 줄 알지만 쓸데없는 오기에 기를 쓰고 관룡산까지 갔다.
동굴을 지나고.
청룡암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을 지나면 밧줄 난간이 설치된 암릉 구간을 만난다.
아마도 여기가 병풍바위 위가 아닌가 싶다.
암릉이 끝난 후 나타나는 이정표에서 용선대 쪽으로 조금만 가면 관룡산 정상이다.
관룡산 정상
관룡산 정상 헬기장에서 점심을 먹고 서둘러 화왕산으로 향하였다.
전날 내린 비로 미끄러운 흙길을 내려가 옥천삼거리에 도착하였다.
여기서부터 화왕산성까지는 차가 다니는 널찍한 임도이다.
임도를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는 드라마 세트장이 있고 왼쪽으로는 진달래 군락지가 있다.
그런데...
진달래가 하나도 안 피었다.ㅠㅠ
불길한 예감은 왜 그리 잘 맞는지...
오로지 진달래만 바라보고 왔다면 실망을 많이 했겠지만 지나온 암릉 구간이 너무 멋있었기 때문에 썰렁한 진달래 군락지도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화왕산성 동문이 길을 막고 있다.
화왕산성 동문
동문을 통과하니 너른 억새 군락지가 나타났다.
매년 이곳에서 억새 태우기 행사가 있었는데 2009년에 억새를 태우다가 바람에 불똥이 튀어 불이 나는 바람에 인명사고가 있었고 그 후로 행사가 취소되었다고 한다.
나도 당시 TV 뉴스로 사고를 본 기억이 난다.
이 넓은 억새밭이 불타는 광경은 정말 멋있겠지만 바람 한번 불면 엄청난 사고가 나겠다.
어찌했건 가을에 하얀 억새꽃이 넘실대는 모습은 너무나도 황홀하리라.
그 모습을 보러 와야 하는데...
화왕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다 뒤돌아 보니 지나온 드라마 세트장과 진달래 군락지가 보였다.
저곳이 온통 다 붉게 물들었어야 하는데. ㅠㅠ
화왕산 능선에서도 한쪽 사면은 억새 군락지, 또 다른 쪽 사면은 진달래 군락지인데 이 진달래가 언제 일어나려는지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진달래는 대금산에서 본 걸로 만족하자.
대신 너무나도 멋진 암릉 산행을 하지 않았는가?
억새 꽃은 없더라도 광활한 억새밭도 나름 멋있고.
산에 다니면서 배우게 된 것 중 하나가 자족하는 법이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더 높이"를 목표 삼도록 교육받다 보니 좋은 면도 많았지만 한편으론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는 단점이 생겼다.
언제나 더 높은 곳, 더 나은 것을 향해 노력하는 삶이 실력 향상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지나치게 미래지향적이 되어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언제나 파랑새만 쫓아다니는 꼴이 되었다.
그런데 산에 다니면서 "지금 이곳"에서 감사하고 행복을 느끼는 훈련을 하게 되었다.
또한 지금 내가 향유하고 있는 것이 영원히 내 것이 아님을 알고 내려놓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
...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거늘
내게 능력 주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
지식적으로만 알던 자족함을 산에 다니면서 배우게 되다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화왕산은 천혜의 요새이다.
정상 주위 억새 군락지 사방으로 사진과 같은 암벽이 둘러싸고 있다.
올라오는 길목만 막으면 정말 난공불락의 요새였을 것 같다.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자하곡 제3등산로로 내려갔다.
화왕산 정상
도성암에 이르니 다시 만개한 벚꽃이 맞아준다.
산 위에는 아직 진달래도 안 피었는데 산 아래에는 세상이 궁금한 영산홍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였다.
오늘 또 멋진 하루를 보냈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지나온 암릉과 억새 군락지가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보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