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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 <신발, 스타일의 문화사> (Shoes: The Meaning of Style)

지은이: Elizabeth Semmelhack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이 안 되는 특이 체질이 있다는데 혹시 내가 그런 체질인지 착각하고 있다가 드디어 나도 확진자가 되고 말았다. ㅜㅜ
어차피 1주일 동안은 격리해야 하니 마음 편하게 있자.
계속 잠을 자는 것도 그렇고, 할 일이 없어 그동안 미뤄놓았던 책을 읽었다.
"샌들, 부츠, 하이힐, 스니커즈에 담긴 시대정신과 욕망"이라는 부제의 이 독특한 책은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바타 신발박물관의 수석 큐레이터가 신발의 역사와 문화적 의미에 관해 쓴 것이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샌들, 부츠, 하이힐, 스니커즈가 어떻게 변해왔으며 역사적으로 어떤 사회-문화적 역할을 수행해왔는지 이야기한다.
고대부터 사용된 샌들이 자유주의를 상징한다거나 발이 아픈 사람들을 위해 만든 버켄스탁과 닥터 마틴이 각각 진보주의와 반항, 폭력의 상징이 된 것은 80년대 우리나라 운동권에서 부른 노래들이 작곡, 작사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졸지에 저항가요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 운명이다.
대표적인 여성화인 힐이 서양이 아니라 서아시아에서 유래한 신발이며 원래는 남성화였다는 사실은 예상 밖이었다.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힐이 스틸레토 힐까지 진화하며 어떻게 여성의 성적 상품화가 이루어졌는지, 나아가 여성의 자율성과 서구의 자유를 뜻하게 되었는지 분석한 내용도 아주 흥미롭다.
원래 남성들의 신발이었던 힐이 이제는 대표적인 여성화가 되었으며, 오늘날 힐을 신는 남성들은 오히려 여성적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으니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운동화(스니커즈)가 부의 상징이었다가, 너도 나도 신는 일상화가 되었다가, 다시 자신의 특권을 보여주는 수단이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는지?
스니커즈라는 용어가 범죄와의 관련성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는지?
무엇보다 스니커즈 수집가들이 "인종차별적인 저의와 더불어 다소 분별없는 사람들로 간주"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지?
신발에 사회-문화적 의미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치적 의미까지 있을 줄이야!
하긴 신발이 재테크 수단으로도 사용되고 예술품으로 인정될 정도이니 무슨 의미인들 없겠는가?
요절한 천재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의 <아르마딜로>가 2015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3켤레에 295,000달러에 팔렸다는 사실은 신발이 단순한 "신발"이 아니라는 증거 아니겠는가? 

알렉산더 맥퀸의 <아르마딜로>

수록된 멋진 신발 사진들은 이 흥미로운 책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나저나 난 유행이나 브랜드에는 관심이 없는데 신발이 그 사람의 성격과 취향을 나타낸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으니 앞으로는 좀 신경 써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