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Nick Chater
사람들이 왜 합리적인 생각을 못하는지 늘 궁금했던 나에게 완벽한 답을 준다는 책이 있어 읽게 된 책이다.
책을 펼치니 맨 앞장에 "우리에게 심오한 정신적인 깊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읽기도 전에 심란해지네.
인간에게 숨겨진 깊이 즉 내면세계와 그 세계가 포함하는 신념, 동기 등은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인간의 뇌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즉흥적이면서도 순간적으로 생각과 행동들을 만들어낼 뿐이라고 하니 더 이상 책을 읽을 필요가 없나?
어렵진 않았지만 기존의 생각을 뒤집는 책이라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어야 했다.
읽는 내내 책과 씨름을 한 것 같다.
이 책은 내가 원하는 답을 명쾌하게 주는 책은 아니었다.
아니, 그보다는 다람쥐 쳇바퀴를 탄 듯한, 미로 속에 갇힌 듯한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심리학이 인문과학이 아니라 자연과학이라는 것은 대학교 교양 과목을 수강하며 진즉에 깨달았지만 과연 인간을 자연과학만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인간이 그렇게 단순한가?
자연과학이 그렇게 확실한가?
인지심리학자인 저자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믿는 사유라는 영역이 사기라고 까발리고 있다.
인간은 신념과 욕망에 의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먼저 하고 난 후 그 행동을 설명해 줄 신념과 욕망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생각뿐만 아니라 지각, 감정도 착각이라고 한다.
감정은 우리가 처한 상황에 비춰 현 신체 상태를 뇌가 해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감정 때문에 특정 신체 상태가 되는 게 아니라 반대로 특정 신체 상태를 당시 상황에 맞춰 적절하게 해석한다는 것이다.
윌리엄 제임스의 말을 인용하여, 곰에게서 달아날 때 우리는 무서워서 벌벌 떠는 게 아니라 벌벌 떨기 때문에 무서운 기분을 경험한다고 설명한다.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것 같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를 보았을 때 그를 좋아해서 흥분되거나 두근거리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신체 상태가 되어있을 때 눈앞에 있는 사람이 그였기 때문에 그를 좋아한다고 해석하게 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때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건 상관없이 좋아한다고 해석하게 되는 걸까?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는데, 잘생긴 남자가 있는 경우와 우락부락한 남자가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똑같은 신체 상태라 해도 잘생긴 남자를 보면 좋아한다고 해석하는 것이고, 우락부락한 남자를 보면 무섭다고 해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잘생긴 남자를 사기꾼 같다고 느낄 수도 있고, 우락부락한 남자를 듬직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어떻게 해석하는가가 과거의 경험에 근거한다면 경험에 의한 추론 자체가 생각 아닌가?
또한 그러한 신체 상태는 왜 일어났을까?
외부 자극이 있기 때문에 신체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감각 정보 -> 생각/추론 -> 신체 반응 순으로 되는 것이 맞는 거 아닌가?
저자의 말대로 의식이라는 것이 기억에 의존하여 감각적 정보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의미를 찾는 것과 생각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이지?
여러 가지 실험 결과를 통해 인간에게 정신이나 의지는 없다는 것이 명확하다고 말하지만 기억을 소환하여 현재의 정보에 적용, 해석하는 과정 자체가 "생각" 아닐까?
정녕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해 말하는 철학자들은 모두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은 완전 뻥이었나?
또 하나, 감각을 타고 들어오는 정보의 해석은 과거의 감각적 정보에 대한 과거의 해석을 기억하는 것으로서 과거의 경험과 기억이 현재의 나를 만든다고 한다면 기억력이 굉장히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기억력 좋은 사람이 옳은 해석과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가서는 “Mind is flat."이라는 말이 자가당착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뇌가 그토록 부정확하고 제한적인 감각 정보를 한 번에 하나씩 밖에 해석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인류가 놀라운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논리적 비약인 상상력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 지성의 비결이 바로 상상과 은유라는 것이다.
그럼 잠깐, 상상과 은유는 어떻게 가능한 것인데?
예상외의 내용에 머리를 많이 굴리며 읽어야 했고 많은 의문을 남겼지만 나름 얻은 소득도 있다.
첫째, 생각하고 있는 것만큼 내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지 아닐 수 있다는 것. 따라서 나의 판단과 결정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었다.
둘째, 뇌는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할 수 있기 때문에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하다는 것. 멀티태스킹이 안 되어서 나는 단세포생물인가 하고 자조했던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ㅎ
이 책에서 말하듯, 인간은 불완전하고 모순적이며 우리가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착각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며 생각할 것이다.
왜냐?
난 인간이니까.
그것도 머리형 인간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