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21년 11월 10일 수요일 (맑은 후 흐리고 바람 강함)
산행코스: 내원사 주차장 ~ 공룡능선 ~ 집북재 ~ 성불암 계곡 ~ 내원사 주차장
산행거리: 7.4km
산행시간: 11:25 ~ 16:18
산행트랙:
등산지도:
2019년, 천성산에 갔다가 시간이 부족하여 공룡능선을 넘지 못하였는데 오늘 그 아쉬움을 풀러 간다.
원래 산행 공지는 내원사 주차장에서 중앙능선을 타고 비로봉에 갔다가 오는 것이지만 난 개인적으로 공룡능선을 타려는 것이다.
공룡능선은 봉우리를 7개 넘어야 한다는데 시간 내에 하산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하나님, 무사히 시간 내에 하산할 수 있게 해주세요.
아침에 사당역으로 가는데 눈발이 날린다.
올해 첫눈이네.
왠지 오늘 산행이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원사 주차장에 도착해 매표소에서 표를 샀다.(2,000원)
왜 절에 가지 않는 사람들까지 다 표를 사야 하지?
절에서 등로 정비를 해놓는 것도 아닐 텐데.
완전 봉이 김선달이란 생각이 든다.
투덜투덜 대며 주차장 화장실 우측에 있는 다리를 건너 상리천을 따라 성불암 쪽으로 간다.
가야 할 공룡능선이 보이자 가슴이 뛴다.
공룡능선
성불암 계곡과 상리천이 합류하는 지점(성불암과 노전암 갈림길)에 있는 세 번째 다리를 건너면 공룡능선 들머리가 나온다.
오늘 대부분은 중앙능선으로 가고, 공룡능선으로 가는 삐딱이들은 3~4명밖에 안 되는 것 같다.
어쨌든 신이 나서 전봇대 뒤로 올라간다.
무지막지하게 가파른 너덜길이다.
게다가 돌들이 흔들려서 올라가기가 더 힘들다.
초반부터 이름값을 톡톡히 하네.
그런데 이를 악물고 올라가다 보니 1봉이 왼쪽에 보인다.
어라?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지도를 보니 1봉과 2봉 사이로 올라가고 있었다.
어쩐지 너무 험하더라.
기운이 다 빠져 1봉과 2봉 사이 안부에 도착했다.
공룡능선 들머리
1봉과 2봉 사이 안부
이제 본격적으로 공룡 등을 타고 간다.
눈앞에는 2봉으로 올라가는 암벽이 보인다.
오늘 코스 중 가장 힘든 구간이다.
밧줄이 있지만 대각선으로 올라가야 하는데다 발 디딜 틈이 좁아 몸의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고 힘을 주기도 곤란하다.
다행히 함께 가던 동제 님이 도와주셔서 무사히 올라갈 수 있었다
오늘 하루 동제 님이 없었더라면 나 혼자 이 산중에서 울고불고 난리쳤을 것 같다.
2봉 올라가는 길
2봉에서 바라본 1봉(내가 온 길은 왼쪽에 있다.)
곧이어 3봉에 올라선다.
3봉으로 올라가면 발아래 노전암이 보이고 저 멀리 원효봉과 화엄벌도 보인다.
화엄벌은 원효대사가 당나라에서 온 천 명의 승려들에게 화엄경을 강론하던 곳이다.
이 때 원효의 강론을 들은 그들이 모두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천성산이다.
현상 세계의 개개의 사물들이 겉으로는 다르지만 서로 자기 본질을 지키면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 화엄의 세계라고 하는데 아, 석가모니가 깨달은 세상은 정녕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인가?
3봉 올라가는 길
노전암
원효봉
조망터에서는 영남알프스와 가야할 4, 5, 6봉이 보인다.
오늘 그다지 맑지는 않지만 바람이 강하게 불어 미세먼지가 없는 것 같다.
덕분에 시야는 아주 좋다.
영남알프스
가야 할 능선
잠시 후 4봉으로 올라가는 밧줄 코스가 나온다.
공룡능선이 비탐이 아니라 이정표도 있고 위험 구간에는 밧줄도 있지만 두 군데는 올라가기가 까탈스럽다.
이곳도 보기보다 힘든 곳이다.
이왕 코스를 개방했으니 안전시설을 좀 더 해주면 좋을 것 같다.
4봉 올라가는 길과 오늘 나의 수호천사
상리천
봉우리를 넘을수록 행복도 커진다.
뒤돌아보면 영남알프스가 손에 잡힐 듯하다.
상리천 주변의 단풍도 온통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단지 바람이 너무 강하다.
거의 태풍 급이라 조망터에 섰다가 날아갈 뻔 했다.
영남알프스
가야 할 능선
5봉 올라가는 길
지나온 4봉
6봉 정상
산죽 길을 올라가면 조망이 없는 7봉에 도착한다.
이후 집북재까지 긴 내리막길이 나온다.
공룡능선을 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 부지런히 걸어갔더니 3시간 만에 집북재에 도착하였다.
7봉 올라가는 길
집북재로 내려가는 길
집북재
집북재는 원효대사가 암자 곳곳에 흩어져 있던 수도자들을 불러 모으려고 짚으로 만든 북을 울린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원래 이름은 짚북재였는데 후에 집북재가 되었다고 한다.
집북재에 있는 벤치에 앉아 간식을 먹고 쉬다가 성불암 쪽으로 내려갔다.
성불암 계곡 길은 순하다.
여름에 왔을 때는 계곡에 물이 많아서 좋았는데 오늘은 물이 많지 않은 대신 단풍이 반겨준다.
너무 빨갛지도 않고 그렇다고 덜 든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 주홍빛 단풍이 가슴 아프도록 아름답다
어디선가 애끓는 가야금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나 혼자 걸어갔더라면 분명 이 사무치는 아름다움에 눈물 한 방울 쯤 흘렸겠건만 오늘은 보는 눈이 있어 조신하게 가을을 온 몸과 마음으로만 느끼며 걸어간다.
중앙능선 갈림길을 지나고, 성불암 갈림길에서 성불암 입구 쪽으로 가면 성불폭포가 나온다.
폭포 왼쪽으로 데크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 중간에 약수터가 있다.
성불폭포는 천불동 계곡 오륜폭포 같은 폭포이다.
따라서 폭포 전체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폭포 중간에서 마지막 간식을 먹었다.
떨어지는 물소리,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 소리가 내 영혼을 두드린다.
단풍이 물든 황홀한 산속에서 느끼는 존재의 외로움은 때로 강렬한 미적 경험을 수반하는 것 같다.
이 아름다움을 보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또 욕심이 난다.
죽기 전에 하나님이 만드신 이 아름다운 세상을 다 볼 수 있었으면.
성불폭포
붉은 색 단풍이 별처럼 쏟아지는 가을을 뒤로한 채 내연사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또 하나의 가을이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산에 다니게 될까?
건강과 체력에 자신이 없으니 항상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 절실한 것 같다.
보고 싶던 천성 공룡을 만나 행복한 하루였다.
신불 공룡과 간월 공룡도 볼 수 있을까?
오늘 나 때문에 수고한 동제 님께서 마지막까지 큰 수고를 해주셨다.
인생 동영상을 만들어주셨는데 이거 보고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는...
아름다운 날을 기억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9년 10월 8일 천성산 산행기 https://blog.daum.net/misscat/778
* 2017년 3월 21일 천성산 산행기 https://blog.daum.net/misscat/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