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15년 7월 21일 화요일 (흐림)
장소: Stockholm, Sweden
외레브로(Örebro)에서 3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Stockholm)으로 갔다.
차 창밖으로 보이는 목초지에 널려있는 건초더미들이 인상적이었다.
먼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청 건물이라는 스톡홀름 시 청사(Stadshuset)에 들렀다.
멜라렌(Maelaren) 호수 위 쿵스홀멘(Kungsholmen) 섬 남쪽에 위치한 스톡홀름 시 청사는 매년 12월 10일 노벨상 수상식이 거행되는 곳이다.
블루(blue)가 아닌 붉은 벽돌로 되어있는 1층 블루홀(Blue Hall / Blå hallen)에서 노벨상 수상식 후 만찬이 열린단다.
그런데 왜 이름이 블루홀이지?
스톡홀름 시청사(Stadshuset)
이곳에는 12,000개의 파이프를 자랑하는 북유럽에서 가장 큰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었다.
여기서 연주하면 그 소리가 어떨지 궁금하다.
내부가 모두 흡음계수가 낮은 자재로 마감되어 있어서 울림이 좋을 것 같기는 하다.
게다가 홀이 직사각형이고.
다만 평면인 천장이 마음에 안 든다.
다른 방들의 천장은 무척 아름다웠다.
위 사진은 회의하는 곳인데 옛날 것들을 그대로 보존하는 모습이 본받을 만하다.
그것이 그대로 관광자원으로 사용되는데 5천 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우리는 너무 마구잡이로 개발에만 몰두하지 않았는지.
이곳에는 백 년, 2백 년 된 호텔들이 많이 있는데 현대적인 호텔들보다는 그런 호텔들이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우리나라도 요새는 고택 체험이 상품화되고 있지만 고택들을 많이 발굴하여 호텔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
2층에는 골든홀(Golden Hall /Gyllene Salen)이 있었다.
1,800만 개 이상의 금도금 타일로 모자이크 처리된 이곳에서는 노벨상 수상식 직후 스웨덴 국왕 주재의 무도회가 열린다고 한다.
스톡홀름 시청사를 나가 리다르홀름(Riddarholmen) 섬으로 갔다.
이 섬에는 리다르홀름 교회와 궁전, 귀족들의 집 등 역사적인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다음에는 구시가지인 감라스탄(Gamla Stan) 섬으로 갔다.
입구에는 대성당과 왕궁이 있었다.
13세기에 세워진 대성당은 스톡홀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왕실의 주요 행사가 열렸던 역사적인 장소라고 한다.
고딕과 바로크 양식이 융합된 웅장한 건축물이며 조각가 비겔란(Vigeland)의 작품인 스테인드글라스 창과 천장 벽화가 볼만하다고 한다.
스톡홀름 대성당
그리고 대성당과 이웃하고 있는 왕궁 역시 13세기에 지어졌단다.
원래는 요새였는데 왕궁으로 발전하였고, 현재는 스웨덴 왕족의 공식 집무실이자 스톡홀름을 방문하는 국빈들의 연회 장소로 사용된다고 한다.
이 왕궁에 있는 <보물의 방>에는 에릭 14세의 왕관을 비롯한 역대 왕실의 보물들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들어가 보지 못했다.
스톡홀름 왕궁
감라스탄의 중심은 스토르토리에트 광장이다.
광장을 둘러싸고 13~19세기의 오래된 건물들이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곳에 있는 한 상점에 들어갔다.
상점 윈도우에 걸려 있는 것이 이곳 특산품인 자작나무로 만든 행주라고 한다.
너무 예뻐서 어떻게 행주로 쓰나?
상점 안에서는 예쁜 아주머니(할머니?)가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스웨덴 전통 목각 인형인 달라 호스(Dala Horse)에 색을 칠하고 있었다.
이 아주머니와 거리에서 만난 전통 의상을 입은 예쁜 언니들은 흔쾌히 사진 촬영을 허락해주었다.
감라스탄 섬을 떠나 테라콤(Teracom) 전망대로 갔다.
이곳에서 스톡홀름 시내를 내려다보며 월귤(lingonberry) 잼을 곁들인 스웨덴 식 미트볼을 먹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비 오는 밴쿠버에서 갈 데 없으면 항상 가던 이케아(Ikea)에서 먹던 음식이다.
거기가 우리 아이들 놀이터였는데 벌써 이렇게 컸다.
전망대에서 점심을 먹고 바사 박물관(Vasa Museet)으로 갔다.
바사 박물관은 1625년에 건조되고 1628년에 처녀 출항을 떠나기에 앞서 왕궁 아래의 선창에서 강풍과 함께 수심 32m 아래로 침몰한 바사호가 전시된 해상 박물관이다.
바사 박물관(Vasa Museet)
바사호는 길이 69m, 높이 52m, 중량 1,400톤이나 되는 스웨덴 왕실의 전함인데 너무 많은 포를 실으려 하다가 균형을 잃고 돌풍에 침몰하였다고 한다.
세월호와 야고보서 1:14~15 말씀이 생각났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956년 해양고고학자인 안데스 프란첸(Anders Franzen)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1961년에 인양되었다고 한다.
당시 잠수부 복
박물관을 나와 배를 타고 핀란드 헬싱키로 건너가기 위해 선착장으로 갔다.
실야 라인(Silja Line)은 스톡홀름과 헬싱키 구간을 운행하는 배로서 2,800명이 탑승 가능한 13층 높이의 대형 크루즈선이다.
배 안에는 면세점과 상점들, 레스토랑들, 수영장, 사우나, 카지노, 극장 등이 있었다.
뷔페 레스토랑에서 마지막으로 연어를 포함한 식사를 한 후 선창 밖으로 발트해를 바라보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