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20년 7월 25일 토요일 (흐림, 산 위는 가는 비)
산행코스: 실운현 ~ 중봉 ~ 승원폭포 ~ 옥녀탕 ~ 칠림계곡 ~ 건들내 왕소나무
산행거리: 11.2km
산행시간: 10:50 ~ 17:00
산행트랙:
등산지도:
비가 오긴 와야 하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서 부산은 물바다가 됐단다.
인명 사고도 있었고.
코로나 바이러스에, 벌레들의 습격에, 폭우까지.
결국 자업자득인 것 같다.
자연 파괴의 결과.
인간은 아무리 역사가 오래되어도 철이 들지 않는 것인가?
산을 다니다 보면 그런 딜레마가 있다.
자연 그대로가 좋긴 한데 불편하고 때로는 위험하고.
과연 어느 선에서 타협할 것인지 지혜가 필요한 지점이다.
오늘 가는 화악산은 그 두 가지가 공존한다.
화악터널이 있는 실운현에서 중봉 직전까지는 군사도로가 깔려있어 수월하게 갈 수 있다.
하지만 중봉에서 칠림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다소 자연 그대로일 것 같다.
동해안 쪽은 오늘도 많은 비가 내린다는데 경기 지역은 다행히 비가 그쳤다.
호명산을 지날 때는 구름 사이로 더할 나위 없이 파란 하늘과 밝은 햇살이 보였는데 화악리로 들어서니 짙은 비구름에 잠겨있었다.
이런 날 운해를 볼 수 있으면 정말 좋으련만.
원래 오늘 공지는 칠림계곡에서 노는 건데 친구 한 명이 중봉을 갔다 오자고 꼬드기는 바람에 산행 팀에 합류를 하게 되었다.
사실 5시간 동안 계곡에 앉아서 노는 것도 나에게는 맞지 않고 차라리 산행을 하는 게 낫지.
일행들은 건들내에서 내리고 소수정예부대만이 화악터널이 있는 실운현으로 올라갔다.
실운현에 도착하니 부슬비가 내리고 있어 우비를 입고 산행을 시작하였다.
실운현 화악터널
정자 옆 임도로 올라가려는데 정자에 앉아계시던 분들이 그쪽은 막아놓아서 못 간다며 등산로로 가라고 하신다.
막아놓았더라도 돌아가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하도 강력하게 안 된다고 하시는 바람에 할 수없이 정자 길 건너 등산로로 올라가게 되었다.
임도는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이고, 이 길이 질러가는 길이니까 가깝기는 한데 그만큼 가파르다.
잠시 숨 가쁘게 올라가면 임도를 만나고, 임도에서 왼쪽으로 가면 군사도로를 만난다.
군사도로를 만나면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앞 쪽을 보니 막혀있었다.
그래도 우린 가야 하리.
이후 군사도로를 따라 3km 이상 올라간다.
이런 도로 정말 싫다.
빗속에 길가에 핀 동자꽃, 바위솔, 노루오줌을 보며 걸어갔다.
동자꽃
바위채송화
노루오줌
건들내 갈림길을 지나 500m 더 가면 중봉 입구가 나온다.
중봉까지 200m만 올라가면 된다.
중봉 입구
그 200m는 짧지만 화악산이 왜 화악산인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올라가는 중간 점심을 먹었다.
간단하게 먹는다더니 삼겹살을 얼마나 많이 가져왔는지 모른다.
난 먹지도 않는 삼겹살인데. ㅠㅠ
거의 한 시간 정도 점심을 먹고 중봉으로 올라갔다.
비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저 빨리 내려가고 싶다.
중봉 정상
지나온 건들내 갈림길까지 되돌아가서 내려가도 되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내려가려고 애기봉 쪽으로 진행하다가 첫 번째 이정표에서 왼쪽으로 내려갔다.
지도를 보면 조금 더 가서 내려가야 할 것 같은데 친구들이 다들 그쪽으로 내려가서 어쩔 수 없이 따라 내려갔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내려감.)
험하지만 처음에는 그런대로 길도 있고 이정표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없어져버렸다.
분명 길을 잃은 것이다.
지도를 보니 오른쪽으로 가야 등로가 있는 걸로 나오는데 그저 무작정 치고 내려간다.
그렇게 계속 내려가면 안 될 것 같은데.
친구들을 따라가다 너무 험해 난 우회하는 사이 친구들과 헤어지고 말았다.
아무리 호루라기를 불어도 대답이 없다.
흠, 괜찮아, 내겐 GPS가 있으니까. ㅎ
길을 잃었을 땐 능선으로 올라가야 한다.
지도를 보며 가까스로 능선에 있는 등로를 찾아가긴 했는데 사람들이 안다며 길이 분명하질 않는다.
제천 메밀봉 갔을 때와 같다.
그래도 지도를 보며 능선만 따라 내려갔다.
중간 중간 암봉이 있는 곳에서는 우회하느라 가파른 산 사면을 오르내려야 했다.
혼자라는 긴장감에 힘든 줄도 모르고 사진 찍을 생각도 못한 채 정신없이 내려갔다.
한참 내려가다 보니 물소리가 들린다.
계곡에 가까이 왔나 보다.
지도를 보니 능선에서 왼쪽으로 가도록 되어있다.
아마 계속 직진하면 절벽이 나오나 보다.
왼쪽으로 우회하여 계곡으로 내려가니 엄청난 폭포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승원폭포였다.
승원폭포
이제 계곡을 따라 내려가야 하는데 이쪽으로는 도저히 내려갈 수가 없다.
그렇다면 계곡을 건너야 한다는 말인데 비가 와서 계곡에 물이 너무 많아 건너기가 마땅치 않았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다 그나마 얕아 보이는 곳에서 계곡을 건넜다.
물이 무릎까지 차는데 물길이 세차 조심해야 했다.
계곡을 건너 가파른 길을 헤치고 올라가니 편안한 등로가 있었다.
휴, 이제 살았다!!
몇 백 미터 내려가니 옥녀탕 이정표가 나타났다.
60m만 가면 된다니까 옥녀탕을 가봐야지.
옥녀탕
여기서 알탕 하기 딱인데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냥 내려가야겠다.
옥녀탕을 되돌아 나오니 나랑 헤어졌던 여성 명의 친구들이 위쪽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다들 엄청 고생했나 보다.
여기저기 부딪히고, 찢기고, 피도 나고.
역시 다년간의 알바 경험이 빛을 발휘한 날이었네. ㅎ
난 혼자라 좀 무섭기는 했지만 다친 데는 없고 길도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옥녀탕 갈림길에서 300m 내려가면 임도를 만나게 된다.
왼쪽으로 가면 임도를 따라가게 되고, 오른쪽으로 가면 천도교 수도원을 지나 등산로로 가게 된다.
천도교 수도원
다시 임도를 만나 칠림계곡을 따라 쭉 내려간다.
건들내 왕소나무 앞에 도착하니 물놀이 팀 친구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대장이 정해준 하산 시간보다 한참 늦었지만 누구 하나 뭐라는 사람 없이 다들 걱정해줘서 고마웠다.
그런데 오늘 코스는 3시간 30분 준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알바를 하지 않았더라도 절대로 3시간 30분 안에는 못 내려온다.
건들내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면 재미있다.
하지만 길도 없는 곳에서 혼자 헤매며 산행하는 건 이제 그만둬야겠다.
*2015년 8월 18일 화악산 산행기 blog.daum.net/misscat/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