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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2014.10.24 (제천) 금수산(1,015m)

산행일시: 2014년 10월 24일 금요일 (흐렸다가 맑아짐)
산행코스: 상천휴게소 ~ 금수산 ~ 망덕봉 ~ 용담폭포 ~ 상천휴게소
산행거리: 8.5km
산행시간: 10:00 ~ 16:40
등산지도: 

 

지난 5월 16일 금수산에 갔다 왔다.
가을 단풍이 비단에 수를 놓은 듯이 아름답다 하여 금수산이라고 해서 가을에 가보고 싶었으나 가을에 갈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봄에 공지가 올라왔을 때 그냥 갔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갑자기 다시 금수산을 가게 되었다.
300개 산을 채우기까지는 한 번 갔다 온 산은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가을 금수산이 보고 싶어 다시 제천으로 향하였다.
일기예보에는 "구름 조금"이라고 하였는데 가는 내내 고속도로에 안개가 짙게 깔려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청풍호를 내려다볼 수 없게 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제천에 도착하니 고도가 낮은 곳은 운무가 잔뜩 끼어있었고 고도가 높은 곳은 맑게 개어 있었다.
오후쯤에는 맑은 날씨를 회복하지 않을까 기대가 되었다.
지난번에 상천휴게소에서 원점 회귀하는 코스로 산행을 하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상학주차장에서 올라가는 코스로 가보려고 하였다.
그런데 상학주차장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비에도 안 나오고.
등산로를 못 찾고 헤매다가 그냥 상천휴게소로 갔다.
하지만 지난번과는 반대로 상천휴게소에서 금수산 삼거리를 지나 정상으로 가는 방향으로 코스를 잡았다.
산은 한껏 멋을 부린 채 기다리고 있었다.
울긋불긋 채색 옷을 입은 모습에 '그래, 너 예쁘다.' 칭찬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운무가 낀 산은 더욱 분위기 있었다.
정상을 올라가는 길은 3.5km 정도 걸리는데 초반에는 가벼운 오르막, 후반에는 심한 오르막이었다.
5월에 왔을 때는 물이 없어서 계곡이 있었는지 몰랐는데 이번에는 계곡 물 흐르는 소리가 힘차게 들렸다.

 

아름다운 단풍과 시원한 물소리가 어우러져 단연 산행하기 좋은 날이었다.
점점 경사는 심해지고 숨이 차올랐다.
금수산 삼거리 가기 전 짧은 암릉 구간이 나온다.
오른쪽에 우회로가 있었는데 모르고 왼쪽으로 갔다.
그 길은 등산 리본은 달려있었지만 일반적인 등산로는 아니었다.
아마 누군가 나처럼 모르고 그 길로 들어섰다가 리본을 달아놓고 간 것 같다,
등산로도 없는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자 바위가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 바위를 넘어가면 우회로와 만나게 되어있었다.
그런데 그 바위를 넘어가기가 수월해보이지 않았다.
물론 릿지를 하시는 분들이라면 가능하겠지만 나처럼 평생 왕초보에게는 아니 되올 말씀이시다.
그래서 바위 밑에 있는 개구멍으로 기어 나왔다.

 

사진에 보이는 나무 밑은 낭떠러지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라는.
금수산 삼거리를 지나가다 보니 어느 회사에서 단체로 등산을 온 젊은이들을 만났다.
평일에 단체로 등산도 오고 정말 좋은 회사야.^^
그 시절 난 뭘 했지?
30세까지는 학위라는 목표를 향해 뒤도 안 돌아보고 옆도 안 돌아보고 앞만 보며 달려간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고리타분한 범생이는 아니었다.
한때는 댄싱 퀸이라 불리기도 하지 않았던가? ㅋㅋ
내 젊은 시절을 되돌아보면 참 잘 살았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 순간도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격려해주고 싶다.
하루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살려고 한다.
그래서 언제라도 과거를 되돌아보았을 때 후회하는 날들이 없도록.
드디어 정상에 도착하였다.

 

금수산 정상

여태껏 막혀있던 조망이 정상에서 시원하게 뚫렸다.
온 길을 되돌아내려 가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으나 내가 누구인가?
지나온 길은 뒤돌아보지 않는 사람 아닌가? ㅋㅋ
그래서 망덕봉으로 가서 하산하기로 하였다.
정상을 조금 지나 햇볕 따스한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개인 산행이라 버스 시간에 맞출 필요가 없으니 오랜만에 느긋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라면 끓여먹고 수다 떠느라 족히 한 시간은 지난 것 같다.
다시 배낭을 메고 길을 떠났다.
망덕봉까지는 기분 좋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산 위에는 벌써 낙엽이 수북한데 '이 가을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순간이 너무 귀중해서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숲이 보여주는 모든 것들, 바람이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들을 다 가슴속에 간직하고 싶었다.
이윽고 도착한 망덕봉은 조망 없는 언덕이다.

 

망덕봉 정상

다시 100m 되돌아가 상천휴게소 방향을 하산하였다.
계단과 가파른 내리막을 따라가다 보니 오른쪽으로 기암 절벽과 청풍호가 어우러진 멋진 풍광이 펼쳐졌다.
족두리바위와 독수리바위도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족두리바위와 독수리바위

그다음 암릉 구간이 시작되었다.
지난 5월에 왔을 때는 바위를 기어오르느라 엄청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내려갈 때는 다리가 안 닿더라도 뛰어내릴 수 있기 때문에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지금까지 키가 작아서 후회스러운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등산을 시작한 이후 비로소 키가 작은 게 안타까울 때가 있다.
바위를 탈 때 다리가 안 닿을 경우 정말 속상하다.
어머니, 절 왜 이렇게 낳으셨나요.ㅠㅠ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도와주시게 하시니 세상은 살 만하지 아니한가?
다시금 시원한 물소리가 들렸다.
3단으로 된 30m 높이의 용담폭포이다.

 

용담폭포

상부에는 있는 두 개의 소에 올라가 본 사람들이 있을까?
거기서 알탕 하면 정말 선녀가 된 기분일 것 같은데.
지금도 비가 안 오면 이 폭포에서 마을 사람들이 기우제를 지낸다고 한다.
돼지를 잡아 피를 뿌리고 마을에서 제일 예쁜 아줌마가 흰 한복을 입고 폭포에 들어가 목욕을 하며 제사를 지낸다나?
예전에는 젊은 처녀가 했겠지만 지금은 농촌에 젊은 사람들이 없어서 마을에서 제일 젊다고 하는 50대 아줌마가 물에 들어간다는데 그 아줌마는 무슨 죄야?
50대면 사위, 며느리 볼 나이인데 비가 안 온다고 찬 물속에 들어가 제사를 드려야 한다니!
어쨌든 아직도 그런 기우제를 지낸다는 것이 신기하다.
폭포 물이 흘러내린 계곡에서 족탕을 하며 오늘 산행을 마무리하였다.
물론 나는 발가락만 살짝 담갔다가 뺐다.
여름에 물이 이렇게 시원하게 흘러내렸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도 가을 금수산, 넌 날 실망시키지 않았어.
Thank you for the gorgeous landscape!

 

오늘 산행시간은 6시간 40분이 걸렸지만 워낙 많이 쉬고 천천히 산행을 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5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다.
버스 시간에 급급하지 않으니 여유 있게 산행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길 막히는 고속도로에서의 운전이라는 대가는 치러야 했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폭포 밑에까지 걸어가 볼걸 그랬다.
그랬으면 30m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위용을 실감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이제 정말 나도 늙었나 보다.
예전에는 반짝반짝했는데 요새는 깜박깜박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