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14년 10월 30일 목요일 (맑음)
산행코스: 선학정 ~ 청량사 ~ 뒤실고개 ~ 장인봉(정상) ~ 뒤실고개 ~ 자소봉 ~ 김생굴 ~ 입석 ~ 청량교
산행거리: 10.8km
산행시간: 10:30 ~ 16:10
등산지도:
12개의 봉우리와 12개의 동굴이 있다는 청량산으로 향하였다.
이틀 전 대간 2차 산행을 하고 나서 온 몸이 쑤시고 아프다.
분명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놈의 욕심이...
일단 가보는 데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날은 화창하고 따뜻했다.
과연 단풍 명소답게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 많은 게 싫어서 평일에 다니는데 유명한 산들은 단풍철이나 봄꽃이 필 때는 여지없이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우리 산악회에서만도 버스가 3대나 왔으니...
오늘은 호젓한 산행은 포기해야겠구나 생각하며 산행을 시작하였다.
원래는 선학정에서 병풍바위 쪽으로 하여 두들마를 거쳐 의상봉으로 올라가는 코스였는데 무작정 사람들을 쫓아가다 보니 청량사로 올라가게 되었다.
청량사까지 가는 길은 시멘트 포장이 되어있는 급경사로였다.
선학정
산 중턱에 위치한 청량사는 팔공산 선본사와 분위기가 흡사하였다.
청량사
절 위에 있는 탑 앞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절을 하고 있었다.
올 3월 팔공산 갓바위에 갔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절을 하고 있었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저 사람들을 뭘 기원하고 있을까?
건강? 행복? 성공? 재물? 승진?
저마다 각기 다른 소원을 가지고 나왔겠지만 그 마음은 한 가지겠지.
나도 예전에는 이 세상에서의 부귀영화와 무병장수를 위해 기도를 많이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라는 찬송가 가사처럼 이미 주신 축복에 감사하며 살려고 한다.
그리고 내게 허락하신 고통조차도 축복인 것을 깨달으려 한다.
필립 얀시가 말하길, 가장 무서운 병 중 하나가 고통을 느낄 수 없는 문둥병이란다.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고 하는데 고통이 없다면 행복도 못 느끼겠지.
사람은 쉽게 무감각해지기 때문에 계속되는 행복은 행복으로 느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니 고통은 우리에게 행복을 일깨워주는 촉진제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솔직히 여전히 고통은 싫지만 고통조차도 겸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의 자세를 가지려고 노력한다.
지나온 내 삶을 돌아보더라도 성공보다는 고통 속에서 더 많이 성장했던 것 같다.
고통의 끝에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서있을 것을 믿는다.
청량사를 지나자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되었다.
경사는 가팔랐지만 등로는 계단으로 잘 정비되어있었다.
계단이 싫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오히려 경사진 흙길보다 계단이 좋다.
2년 전에 중국 황산에 갔었는데 정상인 연화봉에 올라가 때 거짓말 보태서 계단을 수천 개는 올라간 거 같다.
그때는 죽을 거 같고 절로 욕이 나왔지만 그 후 계단이 무섭지가 않다.
오히려 숫자를 외우며 올라가는 계단이 훨씬 수월하니 그 또한 내게 좋은 훈련이 되었던 것 같다.
오르막 끝에는 뒤실고개가 있었다.
뒤실고개 이정표
그제야 잘못 올라온 것을 알았다.
계획이 틀어지면 패닉 상태가 되는 나는 순간 당황하였다.
그때 뒤따라 고개로 올라온 임병수운님과 k현민님이 말씀하시길, 이리로 올라가는 게 아닌 걸 알았지만 내가 혼자 산행하게 될까 봐 뒤따라 왔다고 하신다.
순간 너무 미안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 때문에 잘못된 코스인 줄 알고도 이쪽으로 오셨다니 어떡하나?
병풍바위 쪽으로 갔더라면 충분히 경일봉까지 갈 수 있으셨을 텐데 나 때문에 산행을 망치게 될까 봐 마음이 무거웠다.
경일봉까지 안 가도 된다고, 그냥 인증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시지만 영 마음이 불편하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난 아직도 남에게 폐 끼치는 게 싫다.
남에게 폐 안 끼친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겠지만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싫다.
세상은 내가 도움을 받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때도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피해를 받기도 하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데 난 아직도 까칠한가 보다.
머리로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여전히 감정적으로는 불편하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많이 둥글어졌고 앞으로는 더 좋아질 것이다.
그리하여 주류에서 이탈한 세 명이 함께 의상봉으로 향하였다.
청량산은 워낙 유명한 산이라서 그런지 산 위에도 등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
좀 힘든 곳에는 여지없이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철 계단, 나무 계단, 데크 계단, 고무 계단.
다들 힘들어하며 계단을 오르는데 난 신이 나서 올라갔다.ㅋㅋ
의상봉으로 가는 도중 그 유명한 청량산 하늘다리를 만났다.
청량산 하늘다리
하늘다리가 몇 군데 있는데 청량산 하늘다리가 제일 긴 것 같다.
내가 소심하기는 하지만 의외로 이런 것은 무서움을 안 타서 신나게 흔들흔들 건너갔다.
의상봉에 도착하여 사진을 찍고 되돌아 내려가 자란봉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다.
혼자 왔더라면 쓸쓸하게 혼자 밥을 먹어야 했을 텐데 두 분의 산우님들이 동행해주시니 감사하다.
장인봉/의상봉(청량산) 정상
맛있게 커피까지 타 마신 후 가는 데까지 가보기로 하고 다시 뒤실고개로 돌아가 경일봉 방향으로 길을 떠났다.
(뒤실고개에서 연적봉으로 가는 철 계단)
연적봉, 탁필봉을 거쳐 자소봉까지 가는 길은 평탄하고 아름다운 길이었다.
연적봉 정상
탁필봉
자소봉/보살봉
자소봉에 도착하니 2시였다.
4시까지 하산하라고 하였기 때문에 경일봉을 포기하고 아름다운 가을 숲을 만끽하며 김생굴로 갔다.
김생굴
김생굴 앞에서 보이는 청량사는 잡지나 신문에 나오는 모습 그대로였다.
풍수지리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저런 게 명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입석까지 내려가면서 다시 한 번 가을을 만끽하였다.
산 위에는 이미 단풍이 거의 다 지고 없었는데 산 중턱 아래로는 아직 단풍이 예쁘게 물들어 있었다.
청량산 단풍은 맑고 투명했다.
그리고 빨간색보다는 노란색 단풍이 더 많았다.
k현민님 말로는 봄에는 빨간색이었다가 여름에는 초록색으로 변했다가 다시 노랗게 변하는 단풍이란다.
노란 단풍이 밤하늘의 별처럼 보였다.
맑고 깨끗한 단풍 색깔에 마음까지 청량해지는 느낌이었다.
내려가는 길에 청량정사를 지나게 된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중 하나라는 곳이지만 시간이 촉박하여 들르지 못하였다. ㅠㅠ
청량정사와 산꾼의 집
정말 산을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산을 다니다 보면 '내 생애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다시 올 수 있을까요?' 하는 유행가 가사가 생각난다.
한편으론 내가 자연에 너무 빠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된다.
뭐든 과유불급이니까.
입석으로 내려가니 그곳에 있기로 한 버스가 없었다.
저 아래 청량교 건너 주차장에 있단다.
그래서 청량교까지 걸어갔다.
2km 이상 걸어가는 길이 예쁜 단풍 때문에 지루하지 않았다.
입석
청량폭포
시간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에 빨리 걸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 아름다운 단풍 길을 서둘러 걸어가야 한다는 게 속상했다.
아마 올 가을 단풍은 이것으로 마지막이 아닐까?
내년에 또 만나자.
내년에는 너도, 나도 더 예쁜 모습으로 만나자꾸나.
청량교를 건너 주차장으로 가니 맞은편에 멋진 모습의 학소대가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학소대
<오늘의 교훈>
다른 사람들의 배려와 도움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자.
그리고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