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15년 5월 1일 금요일 (맑음)
산행코스: 수남 주차장 ~ 초암산 ~ 철쭉봉 ~ 광대코재 ~ 무남이재 ~ 수남 주차장
산행거리: 10.6km
산행시간: 13:00 ~ 16:35
등산지도:
내가 full-time 근로자가 아니다 보니 오늘이 근로자의 날이라는 것을 깜박했다.
아침부터 길이 얼마나 막히는지 오늘 중에 초암산에 도착할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될 정도였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휴게소를 몇 개 지나치고 10시 30분이나 되어서야 가까스로 휴게소에 정차할 수 있었다.
이후 허리도 아프고, 엉덩이도 아파서 짜증이 폭발할 무렵 수남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주차장에는 꽤 차량이 많았지만 우리가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사람들과 부대끼며 산행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화장실에서 왼쪽으로 가면 등로가 있다.
초입부터 철쭉이 피어있었다.
그런데 벌써 시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어제 일림산에 갔다 오신 분이 60%가량 피었다고 하시던데 여긴 이번 주말 지나면 지기 시작할 것 같다.
처음에는 산책로처럼 좋던 길이 진원 박 씨 묘를 지나고 나서부터는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급경사를 오르느라 힘든데 날씨마저 너무 덥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후끈하다.
수남 주차장에서 정상까지는 2~3km 정도라 과히 멀지 않지만 날씨가 덥다 보니 지친다.
도대체 철쭉은 왜 이렇게 더울 때 피는 거야?
바람 좀 불지, 바람도 안 불고.
철쭉 보기 전에 내가 죽겠다.
구시렁구시렁.
조금 올라가다 팔토시를 벗어버리고, 조금 올라가다 바지를 걷어 올리고, 한 손에 스틱을 모아 잡고 한 손으로는 부채질을 하며 급경사 길을 올라갔다.
인중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어라? 나도 땀이 나네?
차라리 추운 날씨가 낫지 더울 때에는 산행하기가 정말 힘들다.
전망대를 지나니 바람이 시원하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지만 너무나도 간간히 불어와 더위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너무 더워서 철쭉이고 뭐고 다 싫다는 생각이 들 무렵 정상에 도착하였다.
덥고 힘들어서 천천히 올라갔는데도 한 시간 만에 도착하였다.
초암산 정상부
와! 너무 멋있다.
순간 더위고 뭐고 다 날아갔다,
사방이 온통 만개한 철쭉이다.
바위가 있는 정상을 지나,
초암산 정상
조금 더 직진하면 철쭉 제단이 있는 헬기장이 나온다.
정상 철쭉 군락지에서는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는데 어느 분이 딸기 아이스크림을 사주셔서 맛있게 먹었다.
누구신지 복 받으실 거예요.^^
다시 수남 삼거리로 돌아가 광대코재 쪽으로 갔다.
이후로도 등로는 계속 철쭉 길이다.
지나온 초암산 정상 쪽을 뒤돌아봐도 철쭉 천지고,
앞으로 가야 할 철쭉봉 쪽을 봐도 철쭉 천지다.
535.1봉에는 벤치가 있어 편히 앉아서 초암산 정상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밤골재 삼거리에서부터는 급경사 오르막이다.
밤골재 이정표
에고, 힘들어 ㅠㅠ
금방 또 불평이 나온다.
밴댕이 소갈머리처럼 환경에 따라 감정이 요동치는 내 모습이 꼭 요나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방금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더니 급경사 오르막에 그 감사가 어디로 도망갔는지, 쯧쯧.
도대체 언제 철이 들래?
낑낑 대며 올라가니 철쭉봉이다.
철쭉봉 정상
휘어진 나뭇가지 사이로 멀리 지나온 초암산 정상이 보였다.
3, 40분 사이에 벌써 이렇게 멀리 왔나 싶다.
견디어낸다는 것이 무섭긴 무섭다.
그 순간은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순간순간을 어떻게든 버텨내다 보면 어느새 봉우리에 올라가 있으니.
힘들게 올라갔기 때문에 봉우리에 올랐을 때 더 기쁜 것이리라.
그러니 고난은 축복으로 가는 여정이라 생각하자.
철쭉봉에서 광대코재 쪽을 바라보니 여기도 온통 철쭉 천지다.
내려가다 철쭉봉을 뒤돌아봐도 온통 철쭉 천지고,
지난주에는 진달래를 원 없이 보았는데 오늘은 철쭉을 원 없이 본다.
철쭉은 만개했건만 아직 잎사귀를 내지 못한 나무들도 있었다.
철쭉이 너무 많아서 다른 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데 간간히 있는 각시붓꽃이 유난히 눈길을 잡아끈다.
각시붓꽃
한동안 꽃에 취해 걸어가다 올라온 것만큼의 급경사 내리막을 만났다.
내리막을 내려가니 옆에 임도가 보인다.
가을국화 대장님께서는 임도로 가시겠다고 하신다.
욕심 많은 나는 대장님과 헤어져 광대코재를 향해 다시 오르막을 올라갔다.
덥다, 더워.
나도 그냥 임도로 내려갈 걸.
또다시 마음이 뒤집힌다.
올라가다 뒤돌아보니 산 사면에 녹차 밭이 보였다.
아, 여기가 보성이지?
이윽고 광대코재에 도착하였다.
광대코재 이정표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 내리막이다.
이전에 걸어온 길과는 달리 잔 돌들이 깔려있어 미끄러웠다.
난 이런 길에 정말 취약한데. ㅠㅠ
이런 길을 만나면 겁부터 난다.
게다가 오늘은 동행하는 산우들도 없다 보니 더 겁이 난다.
긴장해서 몸에 힘이 들어가고 허벅지가 떨리는 것이 느껴진다.
몇 번을 넘어질 뻔하며 내려가다가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마음을 가다듬었다.
난 할 수 있어, 난 오늘 안 넘어지고 내려갈 수 있어.
찬송가를 부르며 내려갔다.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우린 걷게 되리.
찬송가에 맞춰 천천히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무남이재이다.
무남이재
나 안 넘어졌다. ^^
여기서부터 수남 주차장까지는 도로를 따라간다.
조금 내려가다 보니 윤제림이라는 간판이 나온다.
나는 나무에 관해서는 까막눈이라 잘 모르겠지만 숲이 아름답고 주변을 예쁘게 가꾸어 놓았다.
윤제림 간판이 있는 곳에서 길이 둘로 갈라진다.
하나는 아래 사진에 있는 저수지 왼쪽의 목책이 있는 윤제림 쪽 흙길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오른쪽에 있는 아스팔트 차도이다.
앞에 가는 산우들은 왼쪽 흙길로 가는데 나는 오른쪽 아스팔트 길을 택하였다.
햇빛을 정면으로 안고 뜨거운 아스팔트 길을 걸어가려니 또다시 불평이 나온다.
게다가 길기는 얼마나 긴지.
그런데도 내가 윤제림 쪽 흙길로 가지 않고 아스팔트 길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
어차피 수남 주차장까지 가려면 어디선가는 차도로 나가야 할 거 같고, 아스팔트 길로 가다 보면 혹시 차를 얻어 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내 생각이 적중하였다.
How smart I am? ㅋㅋㅋ
아스팔트 차도를 10분쯤 걸어 내려가다 보니 반대편에서 오던 차가 멈추고 길을 묻는다.
초암산 진달래를 보려면 어디로 올라가야 하느냐고.
되돌아가서 수남 주차장에서 정상 쪽으로 올라가야 진달래 군락지가 있다고 하였더니 같이 내려가자며 타라고 한다.
야호! 감사합니다!
조금 가다 앞서 가고 있는 산우를 한 분 태우고, 또 조금 더 가다 임도로 먼저 내려가셨던 가을국화 대장님을 태운 후 1시간 이상 걸어가야 할 아스팔트 길을 신나게 차를 타고 내려가니 예정 시간보다 1시간이나 먼저 도착했다. ^^
초암산은 정상에서 광대코재에 이르기까지 5km 이상의 등로가 계속 철쭉 길이라 앞으로 철쭉 명소로 더 유명해질 것 같다.
광대코재에서 내려왔지만 계속 이어지는 봉우리들에도 진달래가 밀집해있는 걸로 보아 발길 닿는 곳까지 쭉 철쭉 길일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황매산이나 바래봉보다 초암산이 철쭉 산행지로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철쭉들이 도열한 좁은 산길을 걸어가는 맛이 끝내준다.
오늘은 몇 번이나 불평과 감사를 오간 하루였다.
올라가고 내려갈 때는 죽을 거 같았지만 만개한 철쭉을 볼 때는 에덴동산에 있는 것 같고.
하지만 앞으로는 불평이 나오려 할 때 한 템포만 늦춰보자.
그러면 내가 불평을 하기 전에 감사를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