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백두대간

2015.04.14 백두대간 12차: 삽당령 ~ 두리봉 ~ 석병산 ~ 백복령

산행일시: 2015년 4월 14일 화요일 (눈)
산행코스: 삽당령 ~ 두리봉 ~ 석병산 ~ 고병이재 ~ 생계령 ~ 백복령
산행거리: 대간 18.2km + 접속 0km = 18.2km
산행시간: 11:00 ~ 19:00
등산지도:

 

 

지난 3일 대금산에서 넘어진 후 후유증이 크다.

처음에는 약간 쓸리기만 한 줄 알았는데 하루 자고 나니 멍이 들고, 이틀 자고 나니 무릎이 아프고, 또 이틀 자고 나니 허벅지가 아프고, 이제는 허리까지 아프다.

어제는 참다 참다 침을 맞고 왔다.

뼈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왜 통증이 점점 위로 올라오며 더 아파질까? ㅠㅠ

머리는 쉬라고 하는데 가슴은 가라고 한다.

이럴 때 누구 말을 들어야 하는지 알지만 항상 옳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지난번에 대간 산행을 못하고 지나갔기 때문에 3주 만에 하게 된 대간 산행이 몹시도 기다려진다.

그런데 비 소식이 들린다.

대장님 말씀이 진정한 산악인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는 거란다.

하지만 비는 안 왔으면 좋겠는데.

'하나님, 제발 비만 오지 않게 해 주세요.'

또 넘어지면 안 되는데.

지금도 엄청 아픈데. ㅠㅠ

횡성 휴게소에 도착하니 눈이 내린다.

엥? 이거 뭐임?

조금 더 가니 비로 변한다.

설마 대간 길에 눈이 오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들머리에 도착하니 눈이 내린다.

펑. 펑.

비만 안 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눈이 내리네.

 

삽당령

와! 멋있다!

그런데 아이젠을 안 가져왔는데 어쩌지?

여기까지 와서 어쩌긴 뭘 어째?

그냥 가야지.

그래, 죽으면 죽으리라!

네가 무슨 에스더인 줄 아느냐?

믿음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아니지. ㅎ

어쨌든 우비를 입고 스패츠를 하고 산행을 시작하였다.

 

잠시 편안한 길을 가다가,

 

가파른 급경사 계단이 나온다.

 

토양유실을 방지하기 위해 통나무를 설치해놓았는데 통나무 사이마다 흙이 깊게 파여 올라가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게다가 통나무 간격도 좁고 가팔라서 잘못하다가는 발목 부러지기 십상이겠다.

길지 않은 구간이지만 힘들게 올라간 계단 끝에는 보상이라도 하듯 편안한 등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나니아의 설국이었다!

 

온통 푸르렀을 산죽은 하얀 솜옷을 입은 채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소복이 눈이 쌓인 생강나무 꽃은 그야말로 설화였다.

 

그리고 이렇게 멋진 상고대까지!

 

와아! 탄성이 절로 나온다.

4월 중순에 이렇게 멋진 심설 산행을 하리라고는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설경에 취해 가다 보니 두루뭉술한 두리봉에 도착하였다.

 

두리봉 정상

두리봉에는 나무 벤치와 테이블이 있어 식사하기 딱 좋다.

이런 곳을 그냥 지나친다면 그건 예의가 아니지.

우리도 평상에서 비닐을 치고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그새 눈이 그쳤다.

두리봉에서 석병산까지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이다.

 

석병산 정상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이곳에서의 조망인데 운무에 갇혀 아무것도 안 보인다.

2% 부족한 데서 만족하기로 했지?

오늘 이렇게 멋진 설경을 봤는데 더 이상을 바란다면 욕심이지.

 

석병산 정상 하단부에는 둥그렇게 뚫린 일월문이 있다.

 

                  석병산 일월문

이 일월문 때문에 석병산을 일월봉이라고도 한다.

이 구멍을 통해 일자바위도 보이고 밤에는 달도 보인다는데 오늘은 운무만 자욱하다.

다시 삼거리로 돌아가 헬기장을 향해 떠났다.

헬기장을 지나면서부터는 야생화 천국이다.

야생화들이 눈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우리를 반긴다.

여기는 얼레지 천국.

 

얼레지

고병이재를 지나고 나면 금괭이눈 천국이다.

 

금괭이눈

조금 더 가니 산괴불주머니 천국이고.

 

산괴불주머니

군데군데 나타나는 노랑양지꽃이랑 꿩의바람꽃은 덤이다.

눈 속에서 온갖 야생화들을 보다니 오늘 정말 횡재했다.

석병산 이후 네 번 정도 봉우리를 오르고 나면 급경사 내리막이 나온다.

 

정말 이런 내리막길은 마의 코스이다. ㅠㅠ

또 미끄러져 넘어질까 봐 얼마나 긴장을 하고 내려갔는지 어깨랑, 허리랑 스틱을 잡은 엄지손가락이 아프다.

다리야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길고 긴 내리막을 지나고 나면 유순한 등로가 기다리고 있다.

이 쪽으로는 눈이 별로 안 왔는지 군데군데 잔설만 있었다.

 

인생의 내리막길이 아무리 길더라도 낙심하지 말자.

언젠가는 좋은 길도 나타날 것이며, 그렇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힘든 길을 걸었다 편한 길을 걸었다 하는 것이 인생이니까.

그리고 내게 주어진 길을 다 걷고 나면 나를 부르시겠지.

서대굴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는데 <강릉 서대굴>에 관한 안내판을 지나고 나면 생계령이다.

 

생계령

이때쯤 슬슬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앞으로 5.4km를 더 가야 하는데...

이제부터는 길이 좋다고 하니 기운을 내서 가보자.

생계령을 지나면 자병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병산

원래는 저 산도 가야 하는데 시멘트 회사에서 채석을 하느라 산 정상이 없어졌다고 한다.

오늘도 땅을 파는 소리가 들리고 차가 오가는 것이 보인다.

왜 하필 대간 줄기의 산을 파헤치느냐고요!

돈의 위력이 날로 커져가는 세상에서 진실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지 말고 살자.

생계령에서 백복령까지는 거의 평지와 같은 길이거나 내리막길일 줄 알았다.

그런데 한 번 오르고, 두 번 오르고, 세 번 오르고, 그다음부터는 안 세었다.

아니, 셀 기운조차 없었다.

방금 전 인생의 오르내림에 대해 생각한 것이 다 어디로 날아갔는지 여길 내가 왜 왔나 온통 회의뿐이었다.

자병산이 깎여서 못 가게 된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대장님이 넉넉히 7시간 30분 준다고 하셨는데 도대체 그게 뭐가 넉넉하다는 거야?

그러게 처음부터 내가 8시간 달라고 하였는데 짠돌이 대장님 정말 싫다!

힘이 드니까 쓸데없이 대장님 원망을 했다가 나중에는 그마저도 없어져 버린다.

그저 버스가 나타날 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철탑을 지나고 어스름하여질 무렵 백복령에 도착하였다.

 

백복령

아, 다음 구간을 어떻게 가나?

백복령을 떠나기도 전에 다음 구간이 걱정된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