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15년 2월 24일 화요일 (맑음)
산행코스: 대관령 ~ 능경봉 ~ 고루포기산 ~ 닭목령
산행거리: 대간 13.8km + 접속 0km = 13.8km
산행시간: 10:00 ~ 15:20
등산지도:
2013년 12월에 고루포기산에 갔었다.
미친 듯이 울부짖는 바람소리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는데 오늘도 그 울부짖음을 들을 수 있을까?
대관령에 내려서니 바람이 강하다.
그 바람소리를 다시 들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레었다.
대관령 고속도로준공기념비 앞에서 사진을 찍고 이정표가 가리키는 능경 ~ 고루포기 등산로로 들어섰다.
대관령
700m 정도 가면 산불감시초소가 나오는데 이곳까지는 임도이다.
여기에서 직진하다 왼쪽으로 올라가면 제왕산이고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능경봉이다.
눈이 많지는 않지만 얼었다 녹았다 하여 빙판이다.
초소 앞 벤치에서 스패츠와 아이젠을 하고 능경봉 쪽으로 올라갔다.
능경봉까지 1.1km는 계속 오르막이다.
능경봉에 올라서니 비로소 조망이 트인다.
날씨는 맑으나 미세먼지 때문에 동해가 보이지는 않았다.
능경봉 정상
다른 산악회에서 오신 분들도 있어 능경봉 정상은 복잡하였다.
서둘러 사진을 찍고 고루포기산을 향하여 떠났다.
행운의 돌탑을 지나 전망대로 가기 전까지는 콧노래를 부르며 갈 수 있는 순한 길이다.
그런데 바람이 안 분다.
포효하는 바람소리를 기대하며 왔는데 바람이 안 분다. ㅠㅠ
오늘 비닐막이 없는 줄 아나보다.
또 내 몸 상태가 안 좋은 줄 아나보다.
아쉽지만 힐링 산행을 하는 걸로 마음을 돌렸다.
예전에 왔을 때는 못 보았던 신기한 나무들이 많이 있었다.
한 나무의 가지들이 갈라졌다 다시 붙어 있는 나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연리지는 예전에도 푯말 때문에 보았지만 다시 봐도 멋지다.
연리지
바람도 안 부는 산길을 나무 구경을 하며 편안히 결어 간다.
다시 전망대까지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멀리 선자령 풍력발전기들이 보인다.
이곳에서 다시 1km를 내려갔다 올라가면 고루포기산이다.
고루포기산에 올라가기 전 철탑이 있는 곳에서 들었던 굉음의 바람소리가 지금도 귀에 생생한데 오늘은 너무나도 유순한 날씨다.
그때 같이 갔던 친구가 그 무시무시한 바람 소리에 겁에 질려 빨리 내려가자고 재촉했었는데.
하지만 난 그 소리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마치 내가 겨울나그네가 된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바람이 앞서가는 사람의 발자국도 순식간에 쓸어버려 길을 잃고 헤매곤 했었는데 오히려 그 강한 바람이 은근히 내 도전 의지(?)를 북돋아주었다.
오늘도 한 번 붙어보자고 생각하며 왔는데 오늘은 꼬리도 안 보인다.
몸도 아프고, 인생길 산 넘어 산이라도 마음도 안 좋지만 이런 날 산에 와서 바람이랑 한판 붙어보면 스트레스가 풀릴 것도 같았는데.
"아서라. 사는 게 다 그런 거란다. 이 봉우리 넘으면 저 봉우리 나타나고. 그게 사는 낙이다. 오늘은 그냥 편안히 쉬다 가렴." 하면 내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 같다.
파란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 마음을 다잡는다.
고루포기산 정상에는 예전에 없던 정상석이 생겼다.
고루포기산 정상
전에 왔을 때는 한 손으로는 바람에 날아가는 모자를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이정표를 붙잡고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는데 오늘은 여유 있게 포즈도 잡아본다.
정상을 조금 지나 점심을 먹었다.
사람 드는 것은 몰라도 나는 것은 안다고 항상 함께 다니던 산우들 중 한 분이 안 오니 왠지 썰렁하다.
6개월 전만 해도 혼자 산행을 하는 것이 더 편하고 좋았는데...
길들여진다는 것이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
아주 오래전 <어린 왕자>를 읽으며 "길들여진다"는 말에 가슴이 찡했던 기억이 난다.
'길들인다'는 것은 내가 수많은 다른 여우와 달리 너에게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여우가 되는 것이야.
그리고 너는 이 세상에 수없이 많은 소년들과 달리 내게 오직 하나뿐인 소년이 되는 거지.
내가 길들여지고 내게 길들여지는 모든 사람들 사이에 온전히 신뢰와 사랑만이 있기를 바란다.
고루포기산을 지나면 닭목령까지 가벼운 내리막의 연속이다.
천천히 나무 구경을 하며 걸어갔다.
(하트 모양의 구멍이 있는 나무)
(가지가 휘어진 나무)
(흘림골 여궁폭포처럼 줄기가 벌어진 나무)
(산불을 이겨낸 낙락장송)
나무도 산불을 이겨내는데...
봉우리는 높을수록 멋있고 계곡은 깊을수록 멋있다.
인생도 마찬가지.
3시 20분, 닭목령에 도착하였다.
닭목령
편안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