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17년 12월 1일 금요일
장소: CGV
어제 공연 리허설을 하느라 오후 내내 서있었더니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
등산을 대여섯 시간 하거나 강의를 네, 다섯 시간 해도 괜찮지만 가만히 서있는 건 진짜 힘들다.
이번 주에 한 번도 산행을 못해서 오늘 아침 일찍 남한산을 가려다 힘들다는 핑계로 '에라, 그냥 일주일 푹 쉬자.' 하고 산행을 포기하였다.
대신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보러 갔다.
Agatha Christie의 작품 자체가 흥미진진할 뿐만 아니라 1974년 영화도 아주 재미있게 본 터라 리메이크 작품은 어떨지 궁금하였다.
1974년 영화 포스터
난 간이 작아서 무서운 소설이나 영화는 미리 결말을 알고 본다.
그래야 덜 무서우니까.
어떤 사람들은 결말을 알면 재미가 없다고 하는데 난 그래도 충분히 재미있다.
결론보다는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 자체에 관심이 더 있으니까.
아마 그건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중시하는 내 삶의 방식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어쨌건 이 작품은 이미 결론뿐만 아니라 과정까지도 알고 보는 건데 그래도 정말 재미있게 보았다.
쟁쟁한 배우들의 멋진 연기를 보는 것도 좋았고, 영화의 내용과는 달리 아름답고 서정적인 화면을 보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주인공은 누가 뭐라 해도 탐정 에르퀼 포아로이다.
사실 소설 속의 포와로는 1974년도 Albert Finney가 더 잘 어울리지만 거구이면서도 보다 감성적인 2017년도 Kenneth Branagh도 나름 괜찮았다.
콧수염은 좀 부담스러웠지만.
1974년도 Hercule Poirot, Albert Finney
2017년도 Hercule Poirot, Kenneth Branagh
사람들이 라쳇을 죽이는 장면은 <친절한 금자 씨>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사람 죽이는 장면을 보면서 눈물이 난 건 처음이지 싶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슬퍼서.
"영혼의 균열이 난 사람만이 살인을 할 수 있다."는 포와로의 말처럼 그들의 상처가 보이는 것 같았다.
영화를 잘 만든 걸까? 내가 감정이입을 잘하는 걸까? ^^
하지만 Agatha Christie는 진정한 회복이 복수가 아니라 용서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뭐, 어쨌든 이건 추리소설이니까.
마지막 Brod 역의 그림 같은 풍경과 멋진 주제가가 끝까지 즐거움을 선사한 영화였다.
p.s. 포와로가 이집트로 떠나는 걸 보니 후속작으로 <나일 강의 죽음>이 나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