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15년 3월 10일 화요일 (맑음 + 바람 강함)
산행코스: 닭목령 ~ 화랑봉 ~ 석두봉 ~ 삽당령
산행거리: 대간 13.9km + 접속 0km = 13.9km
산행시간: 09:45 ~ 15:10
등산지도:
봄이 왔는가 싶더니 갑자기 기온이 급강하하고 바람까지 강하다.
고루포기산에서 못 만난 바람을 오늘 만나게 될까?
불어봤자 봄바람인데 얼마나 불겠어?
그래도 풍속 9m라는 예보가 있으니 내의며 고소모며 마스크며 방풍 준비를 단단히 하고 길을 떠났다.
닭목령에 내리니 생각보다 바람이 강하지 않다.
전날 분 강풍 때문에 구름과 먼지가 멀리 날아가 버려서 하늘이 맑고 깨끗하다.
닭목령
멀리 보이는 산은 골짜기마다 아직도 눈이 쌓여있는데 고랭지 밭은 벌써 파릇파릇하다.
꽃샘바람이 아무리 강해도 오는 봄을 막지는 못하리.
닭목령에서 화란봉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초반에는 조금 가파르게 올라가는데 땅이 바싹 말라서 앞사람을 쫓아 올라가자니 흙먼지가 풀풀 날린다.
흙먼지를 피하고자 조금 무리를 해서 앞으로 치고 나갔다.
이런 계단을 오르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등로가 순해진다.
닭목령에서 삽당령까지는 쉼터가 잘 되어 있다.
쉼터마다 통나무 의자들이 쉬었다 가라고 손짓을 한다.
화란봉에는 두 개의 정상석이 있다.
화란봉 정상
먼저 올라간 산우들이 사진을 찍느라 정상석 주위가 붐볐다.
인증사진은 나중에 찍기로 하고 2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화란봉 하늘전망대로 향하였다.
대장님께서 그리로 가면 안 된다고 뒤에서 소리를 지르신다.
"갔다 올 거예요!"
전망대가 있는 줄을 모르는지 아무도 그쪽으로 가질 않는다.
미리 검색을 하고 온 나는 오늘 전망대를 독차지하며 멋진 조망을 맘껏 즐겼다는 것. ^^
하늘전망대는 정말 하늘에 붕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주위가 막힘없이 동해까지 시원하게 뚫려있다.
사진을 찍어 올리면 앞에 보이는 산들이 어떤 산인지 알려주는 앱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다들 이 멋진 모습을 놓치고 급하게 그냥 가다니...
여기가 오늘의 하이라이트인데.
이 글을 보는 K현민 님은 몹시 속상하겠다. ㅋㅋ
이 자리를 빌려 전망대를 알려주신 블친 열린생각 님께 감사드린다.
다시 화란봉으로 돌아가 인증 사진을 찍고 삼거리로 되돌아가서 삽당령으로 진행하였다.
화란봉에서 석두봉까지는 세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하는데 첫 번째 봉우리를 넘고 제8쉼터에서 점심을 먹었다.
걸을 때는 별로 추운 줄도 몰랐고 바람이 부는 줄도 몰랐는데 점심을 먹으려고 앉아있으니 으슬으슬 추워진다.
라면을 끓여먹었는데 나중에는 냉동실에 넣었다 꺼낸 것처럼 라면발이 차디차게 얼 정도였다.
손이 시려서 벙어리장갑을 끼고 먹으려니 젓가락질이 안 된다.
비닐막도 있었는데 따뜻한 양지에서 비닐막을 치고 먹을걸. ㅜㅜ
커피도 못 마신 채 급하게 식사를 마치고 일어섰다.
제8쉼터를 지나면 산죽길이 시작된다.
제6쉼터까지는 사방을 둘러 눈이 닿는 곳마다 온통 산죽 천지이다.
바람은 점점 강하게 불어 코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춥고 장갑 속의 손가락이 꽁꽁 얼어있지만 이 사진을 보면 누가 그런 걸 상상할 수 있겠는가?
따사로운 봄날처럼 보이지 않는가?
제6쉼터 이후 사라졌던 산죽은 제5쉼터부터 다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였다.
석두봉 직전까지는 부드러운 산책로와 같은 산길이다.
"여기 길 좋네." 하는 순간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석두봉은 쌍봉인데 춥기도 하고 올라가 봐야 조망도 별로 좋을 거 같지 않아 오른쪽 봉우리는 그냥 지나치고 왼쪽 봉우리로 올라갔다.
석두봉 정상
조망은 석두봉보다 화란봉 전망대가 훨~~씬 좋다.
혹시 이 구간을 지나가실 분들이 계시다면 반드시, 꼭! 화란봉 전망대를 다녀가시길 강추한다.
석두봉 정상석을 지나면 바로 급경사 내리막이다.
다행히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안전하고 쉽게 내려갈 수 있었다.
(계단을 내려와 올려다본 모습)
대장님께서 석두봉 이후는 평지 길이나 다름없다고 하셨는데 다시 한 번 대장님 말씀을 100%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잘한 오르내림이 계속된다.
난 이런 길이 싫다. ㅠㅠ
한 번에 빡세게 치고 오르는 것보다 더 힘이 든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정말 사람 진 빠지게 만든다.
삽당령에 가까이 갈수록 바람은 점점 더 강하게 불었다.
예전에 고루포기산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엄청난 울부짖음은 아니지만 파도가 치는 듯 한 혹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낮게 으르렁거리는 듯 한 바람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바람이 강한 곳에서는 몸이 휘청거리기도 하였다.
더 추울 때도 산행을 했건만 오늘이 이번 겨울 중 제일 추운 거 같다.
선글라스에 김이 서려 마스크를 벗고 산행을 했더니 정말 코가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독바위봉에는 멋진 벤치가 놓여있었다.
독바위봉 정상
누가 여기까지 온다고 이런 벤치를 설치해놓았을까?
잠시 앉아 지친 다리를 쉬게 한 후 삽당령으로 고! 고!
독바위봉에서 1km 정도 가면 산불방화선이 나타난다.
차마 베어버리기 아까웠는지 군데군데 그대로 놔둔 소나무들이 있고, 벼락을 이겨낸 낙락장송처럼 보이는 소나무도 있다.
예쁜 잣나무 채종원 앞에는 사랑나무가 있다.
한 밑동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가 붙었다가 다시 떨어져서 서로 의지하며 비스듬히 함께 자란 모습이 참으로 다정하다.
사랑나무
"따로 또 같이"라는 말이 생각나게 하는 나무이다.
모든 인간관계는 바로 이 "따로 또 같이"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다.
서로의 개성과 인격을 존중해주되 타협할 줄 알고 협력할 줄 아는 것.
너와 내가 시소의 양 끝에 앉아 적절하게 균형을 맞출 때 원만한 관계가 형성될 것 같다.
자연이 주는 오늘의 가르침이다.
이후 승기봉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봉우리에 이르고 삽당령까지 1.7km 남았다.
승기봉에서 400m 더 진행하면 임도를 만나고 임도를 가로질러 대간 길이 연결된다.
하지만 임도를 따라 가도 삽당령에 이를 수 있다.
편안하고 긴 임도를 가든지 짧은 산길을 가든지 선택은 자유.
물론 우리는 산길로 갔는데 보통 때 같으면 많이 힘든 산길이 아닐 테지만 질척해져 미끄러운 산길은 여간 고역스럽지 않았다.
다리가 아파오며 그만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삽당령에 도착했다.
삽당령
오기 전에 대화실산이 있다고 해서 들르고 싶었지만 이정표도 없는 데다 다리가 아파 그냥 지나쳤다.
대장님 말씀으로는 정상이 유실되었고 정상석도 없다고 한다.
삽당령에 있는 종합안내판에는 닭목령에서 삽당령까지가 14.5km라고 나와 있는데 GPS로는 13.88km가 나온다.
음, 석두봉을 하나만 올라서 그런가?
춥고, 다리 아프고...
초반에 힘을 너무 빼서 그런지, 지난 금요일에 와룡산 너덜지대를 내려온 후유증인지, 어제 하체 강화 운동을 해서 그런지 내겐 몽가북계보다 더 힘든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