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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2015.02.10 백두대간 9차: 대관령 ~ 선자령 ~ 곤신봉 ~ 바람의 언덕 ~ 삼양목장

산행일시: 2015년 2월 10일 화요일 (맑음)
산행코스: 대관령 ~ 선자령 ~ 곤신봉 ~ 바람의 언덕 ~ 삼양목장 쉼터
산행거리: 대간 10.4km + 접속 3.9km = 14.3km
산행시간: 10:15 ~ 14:25
등산지도:

 

오늘은 산행하러 갔다가 바람 맞고 왔다.

그런데 이런 바람은 언제 맞아도 좋을 것 같다. ^^

선자령 바람을 원 없이 맞고 온 날이다.

지난번 대간 8차 때는 예보와 달리 진고개에서 <바람의 언덕>까지 가는 동안 바람이 하나도 없었다.

바람이 불지 않아 춥지는 않았지만 내심 잔뜩 기대를 하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갔었는데 바람이 없으니 뭔가 빠진 것 같이 허전하였다.

8차 때는 눈을 맞으며 산행을 했으니 9차 때는 바람을 맞으며 산행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래도 '선자령' 하면 바람 아닌가?

대관령 휴게소에 내리니 벌써 바람이 장난 아니다.

'이거 오늘은 제대로 바람 산행을 하겠구나'.

우측 통신중계소 쪽으로 올라갔다.

 

통신중계소가 있는 곳까지는 차가 다니기 때문에 대로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갈 수 있는 코스이다.

 

길은 편안하지만 겨울에 바람이 심하게 불 때는 생명을 앗아가는 위험한 코스이기도 하다.

2013년 이맘때 선자령에 왔었다.

그때도 바람이 엄청 불었다.

아니, 앞으로 진행을 할 수 없을 만큼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여간해서는 포기하지 않는 내가 아쉽게도 선자령을 500m 남겨두고 산행을 포기한 채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날 선자령에 왔던 두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바로 우리가 들것을 만들어 싣고 내려왔다.

중간에 119 대원들이 왔지만 이미 목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핫팩을 붙여주려다 얼음처럼 차디찬 피부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어디서 벗겨졌는지 신발과 양말이 벗겨진 채 꽁꽁 얼어있던 발도.

정신 차리시라고, 곧 119가 온다고 소리치던 목소리들.

계속해서 119에 전화하여 빨리 올 것을 재촉하던 목소리들.

나뭇가지를 꺾고 등산 재킷을 끼어 들것을 만든 후 남자 여섯 명이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비틀거리며 들고 가던 모습들.

여자들이 뒤에서 남자들의 배낭을 들고 가던 모습들.

그리고 어서 내려가라고 포효하던 바람.

그날 산은 마치 인간의 접근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히말라야를 정복했느니, 알프스를 정복했느니 하지만 산이 허락해준 만큼만 인간이 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산행을 시작한 지 6개월 된 초보에게 처음부터 단단히 자연 앞에서 겸손해야 함을 가르쳐준 날이었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 오늘은 산행을 허락해주기를 기도했는데 고맙게도 바람이 강하지만 모두가 감동받을 만큼만 불어주었다.

항공무선표지소 입구에서 왼쪽 숲길로 들어선다.

 

오늘은 다행히 눈이 많지 않아 바람이 강해도 걸을만하다.

그런데도 부실한 misscat은 넘어졌다. ㅠㅠ

처음 바람에 비틀거릴 때는 뒤에서 오던 산우님이 붙잡아주셨는데 뒤이어 불어온 강풍을 가슴에 안고 보기 좋게 뒤로 넘어졌다.

어휴, 창피해.

그래서 이후부터는 아예 양 옆에서 산우님들이 내 배낭끈을 붙잡고 걸어가셨다.

그래도 바람에 비틀거리며 못 걸어가자 나중에는 팔짱을 끼고 가셨고.

 

대관령 휴게소에서 5km 지점.

드디어 선자령에 도착하였다.

 

선자령

곤신봉을 향해 가는 길에는 지난번에는 잠자고 있던 풍력발전기들이 신나게 돌아가고 있었다.

 

바람 때문에 왼쪽 뺨이 얼얼하지만 비틀거리며 걸어도 기분이 좋다.

곤신봉 근처에서 비닐막을 치고 점심을 먹었다.

세찬 바람에 비닐막이 출렁출렁 춤을 춘다.

아우성치는 바람 소리에, 머리 위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는 비닐막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 와중에 커피까지 마시고 길을 떠났다.

 

                 곤신봉 정상

<바람의 언덕>에서 삼양목장 입구로 내려가는 길은 바람이 더욱 세차다.

눈을 쓸어버린 바람이 바닥의 흙까지 몰아쳐서 마스크를 했는데도 입안으로 돌멩이들이 들어온다.

아이고, 이 길을 4.8km나 가야 한단 말이야?

바로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사업처가 이곳인 우진 님께서 짠~~ 하고 차를 타고 나타나신 것이다.

지난번에도 몇 번을 차로 오가며 눈길을 헤치고 오느라 지친 산우들을 버스가 있는 곳까지 태워주셨는데 오늘도 또다시 오셔서 삼양목장 쉼터까지 태워주셨다.

고마우신 우진 님.

 

그뿐만이 아니다.

삼양목장 쉼터에 컵라면과 커피까지 준비해주셨다.

세상에나!!!

감사, 감사합니다. ^^

따뜻한 라면과 커피를 마시고 여유롭게 버스가 있는 곳까지 걸어 내려갔다.

지난번에 보지 못했던 양들도 보았다.

 

메에에~~, 고생하셨수다.

호탕하게 웃는 바람 소리를 실컷 들은 날,

바람에 한껏 취한 날이었다.


* 2013년 1월 24일 선자령 산행기 blog.daum.net/misscat/378 

 

2013.01.24 (평창) 선자령(1,157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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