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16년 10월 28일 금요일 (흐림)
장소: 병마용갱, 화청궁, 가무대당원
오늘은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을 먹고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태희네 김밥>에서 점심을 사 먹었다.
<태희네 김밥>은 김밥뿐만 아니라 떡볶이, 라면, 볶음밥, 김치찌개 등을 팔았다.
돌솥비빔밥 위에도 삼겹살이 올라가 있는 걸 보면 상당히 현지화된 음식처럼 보였다.
난 장어치즈김밥을 먹었는데 딱 한국에서 먹는 것 같은 김밥이었다.
오늘은 현지 여행사를 통해 병마용갱과 화청지를 보러 갔다.
내몽고에서 왔다는 중국인 가이드는 생김새와는 달리 영어를 상당히 잘하였다.
시안에서 45분 정도 차를 타고 병마용갱으로 갔다.
정확한 용어는 <진시황병마용박물관>이다. (입장료: 성인 150위안) (www.bmy.com.cn)
진시황병마용박물관(Emperor Qinshihuang's Mausoleum Site Museum)
<삼국지>를 통하여 우리에게 친숙한 진시황은 13살의 나이에 즉위하여 26년 만인 39세에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왕이다.
그는 불로장생을 꿈꾸었다고 하는데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임을 알고 있었는지 즉위 초부터 진시황릉을 짓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중국 통일 이후 70여 만 명이 동원되어 37년에 걸쳐 완성된 진시황릉과 병마용갱은 만리장성, 자금성과 더불어 중국 최고의 역사 유적지일 뿐만 아니라 세계 8대 불가사의로 꼽히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동서 485m, 남북 515m, 높이 약 76m의 진시황릉은 무덤이라기보다는 산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큰 무덤이다.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만드는 등 천상과 지상을 모방한 지하 궁전을 만들고, 도굴자가 접근하면 화살이 자동 발사하는 시설을 갖추는 등 무덤을 설계할 때 도굴 등을 막기 위한 여러 가지 함정들을 설치해놓았기 때문에 아직도 내부에는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진시황릉은 지나가면서 차창 밖으로만 구경을 하고 진시황릉에서 1km 떨어져 있는 병마용갱을 보러 갔다.
병마용은 사후 무덤을 지키게 하기 위해 실물 크기의 병사, 병기, 말, 전차 등을 흙으로 빚은 것인데 제각기 다른 자세와 표정, 복장, 머리 모양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1974년에 중국의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하였으며 현재까지 4개의 갱이 발견되었지만 학자들은 더 많은 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입구에서 15분쯤 걸어 들어가면 세 개의 갱이 나온다.
먼저 길이 230m, 넓이 62m로 관람 가능한 세 개의 갱 중 가장 큰 1호 갱으로 들어갔다.
1호 갱에는 6,000개 이상의 병사와 말이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들어가는 순간 그 압도적인 규모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말도 많이 들었고 사진으로도 보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구경을 하려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뤄 사진 찍기가 힘들었다.
병사와 병기, 말, 전차가 있다고 했는데 병사와 말만 볼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병사와 말은 진흙으로 만들었고 전차는 나무로 만들었는데 나무로 만든 전차가 썩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무기와 같이 만들어진 병기들은 다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는데 청동으로 만들고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크롬으로 처리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기술은 미국에서도 1950년대에나 가능하게 된 것으로 이미 중국에서는 진시황 때 그런 기술을 사용하였다고 중국인 가이드가 자랑스레 말하였다.
양 옆에 있는 병사들은 벽을 보고 있지만 그 외 다른 병사들은 모두 동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진시황릉이 서쪽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1호 갱은 아직 다 발굴된 것이 아니라 뒤쪽에서는 고고학자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흙 속에 묻힌 병마용 조각들을 꺼내어 퍼즐 맞추듯 이어붙이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그다음 3호 갱을 보러 갔다.
3호 갱에는 높은 계급의 병마용들이 있었는데 역시 조각난 것들을 찾아내어 붙여놓았다.
3호 갱에는 돈을 내고 모조 병마용 사이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있었다.
3호 갱 옆에 있는 숍에서는 다양한 크기의 모조 병마용들을 팔았는데, 가이드가 일반 병사와 장교, 장군의 차이를 설명해주었다.
왼쪽부터 장교, 병사, 장군
그다음 들어간 2호 갱은 거의 발굴되지 않은 채로 있었다.
2호 갱에 전시된 병사는 온전한 형태로 발굴된 유일한 병마용이라고 한다.
원래 병마용은 색칠도 되어있었지만 발굴되는 순간 공기와 접촉하면서부터 빠르게 퇴색하였다고 한다.
병마용전시박물관 앞에는 많은 노점상들이 있었다.
이 지역에서는 석류와 감이 많이 생산되는지 길거리에 쭉 늘어선 노점상들마다 석류와 감을 팔았다.
석류 껍질이 빨간색이 아니라 노란색이라 덜 익은 것처럼 보이지만 잘라놓은 것을 보니 속은 빨갛게 익어 있었다.
맛이 어떤지 궁금하여 10위안을 내고 즉석에서 짜주는 석류 주스를 사서 마셔보았다.
새콤한 맛보다는 단 맛이 강했다.
감도 살구 정도 크기의 작은 감이었다.
맛이 어떤지 사고 싶었지만 낱개로는 팔지도 않고 내일 떠날 것이기 때문에 많이 살 수가 없어 포기했다.
그다음 중국에서 현존하는 당나라 시대 최대 규모의 왕실인 화청궁으로 갔다. (www.hqc.cn)
중국 서주 말기에 주유왕에 의해 세워진 온천 행궁인 화청궁은 고대부터 수려한 풍경과 질 좋은 지하 온천수 때문에 역대 제왕들의 관심을 받아왔던 장소라고 한다.
특히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와 함께 겨울을 지내던 곳으로 유명한데, 현종은 양귀비를 위해 화려한 누각들을 지었다고 한다.
입구에는 당 현종과 양귀비 분수대가 있었다.
안에는 여러 개의 누각들과 온천탕들, 그리고 양귀비 동상이 있었다.
화청궁(Hua Qing Palace)
(양귀비를 위해 옥으로 만들었다는 온천탕)
(당 현종을 위해 옥으로 만든 온천탕)
온천 원탕에서 흘러나온 물이 각 온천탕으로 들어가게끔 설계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이 온천 원탕이다.)
이곳에는 왕족들뿐만 아니라 귀족들과 이곳에서 일하는 하인들을 위한 온천탕도 있었다.
양귀비 동상 뒤에 있는 온천 분수대에서는 39도 정도의 따뜻한 물이 나오고 있었다.
양귀비 동상
또한 이곳에서는 3월부터 10월 사이 매일 밤 8시 30분에 화청지 연못을 무대로 <장한가무쇼>라는 화려한 가무쇼가 진행된다.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백거이의 시 <장한가>를 바탕으로 장예모 감독이 만들었다는 쇼이다.
공연을 보고 싶었지만 공연이 끝난 후 개인적으로 돌아가야 하는 데다 날씨가 너무 추워 관람을 포기해야 했다. ㅠㅠ
(대나무에 쓴 장한가)
대신 시안으로 돌아가 다른 가무쇼를 보기로 하였다.
비림박물관 근처에 있는 가무대당원에서 하는 당나라 가무쇼였는데, 저녁 식사로 여러 가지 만두를 먹으며 쇼를 보았다. (www.tang-dynastyshow.com)
쇼는 화려했지만 음악이나 의상이 저게 정말 당나라 때 것일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상당히 현대적인 냄새가 많이 났고 심지어 서양 조성 음악 같은 부분도 있었다.
가무대당원(Shaanxi Grand Opera House)
쇼를 보고 나오니 9시 30분이 넘었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려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빈 택시를 잡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걸어서 가기로 하였다.
3km 정도니까 40분이면 갈 수 있으리라.
시안 밤거리는 상당히 안전한 것 같았다.
방향 감각이 없는 옆지기 때문에 약간 알바를 하였지만 길 찾는 것이라면 제게 맡겨주세요. ㅋㅋ
"Follow me."를 외치며 무사히 호텔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