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14년 12월 9일 화요일 (맑음)
산행코스: 조침령터널 관리사무소 ~ 조침령 ~ 북암령 ~ 단목령 ~ 오색 삼거리 ~ 오색약수터 주차장
산행거리: 대간 14km + 접속 4.5km = 18.5km
산행시간: 10:40 ~ 17:20
등산지도:
오늘은 조침령에서 오색 삼거리로 북진을 한다.
대장님이 되도록 편하게 산행을 하게 해 주시려고 북진했다, 남진했다 머리를 많이 쓰신다.
일반적으로 남진의 경우 한계령에서 조침령까지 한 번에 가지만 우리는 반으로 잘랐다.
그래도 내겐 힘든 코스다.
거의 19km나 되다니!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다고 하니 용기를 내어 가보기로 한다.
조침령까지 가는 길을 정말 싫다.
길이 꼬불꼬불한 데다 운전기사님이 너무 wild 하게 운전을 하시는 바람에 모두들 멀리가 난다고 아우성이었다.
나도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프다.
한동안은 이쪽으로 오게 될 것 같지 않다.
조침령터널 관리사무소 앞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하였다.
조침령
조침령 표지석 앞까지 가니 지킴이들이 차를 타고 뒤따라왔다.
누군가 신고를 한 것 같다.
다들 모른 척 부지런히 올라가고 대장님과 몇몇 분이 뒤에 남았다.
나중에 하시는 말씀이 어디 가느냐고 해서 북암령까지 갔다 온다고 하니 잘 다녀오시라고 했단다.^^
아마 그분들도 우리가 대간하는 줄을 짐작하셨겠지만 봐주신 것 같다.
무조건 입산금지라 하지 말고 차라리 예약제로 하던지 하면 좋을 텐데.
평생 범생이로 살아온 사람이 불법을 저지르려니 마음이 편치 않다. ㅠㅠ
기온은 낮지만 바람이 불지 않고 날이 맑아 정말 산행하기 좋은 날이다.
북암령까지는 줄곧 오른쪽으로 동해를 끼고 산행하게 된다.
겨울이라 잎사귀를 떨어낸 나무들 덕분에 동해가 시원하게 보인다.
올망졸망한 봉우리들을 여러 개 넘지만 둘레길 마냥 편안한 숲길이 이어진다.
북암령 가까이 가게 되면 멀리 왼쪽으로 설악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후 한동안 내리막이 이어진다.
이렇게 계속 내려가면 어떡하나?
분명 이 긴 내리막 끝에는 힘든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북암령
북암령에서 점심을 먹고 서둘러 다시 떠났다.
오늘은 기필코 시간 안에 도착하자고 결심해본다.
꼴찌를 면해보고자 서둘러 산행을 시작했지만 30여분이 지나니 또다시 맨 뒤로 처졌다.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제대로 씹지도 못한 채 점심을 급하게 먹고 일어났다.
내려왔던 만큼 북암령에서 힘들게 치고 올라가야 한다.
이제는 설악이 오른쪽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아까보다는 훨씬 가깝게 보인다.
대청도 보이고 중청도 보이고.
대청은 머리에 하얗게 눈을 이고 있다.
설악산 서북능선
단목령 가기 전 계곡을 만난다.
대간에서 계곡을 만나면 길을 잘못 든 것이라고 하는데 딱 한 군데 예외가 있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조침령 가기 전 이곳이다.
날이 추워 물이 하얗게 얼어 있었다.
이윽고 단목령에 도착하였다.
오늘은 화요일이라 지킴이들이 없다고 한다.
이곳에서 출입금지 푯말이 있는 차단기를 넘어가야 한다.
나중에 들으니 이곳에서 몇 분이 진동 삼거리 쪽으로 잘못 갔다가 되돌아왔다고 한다.
단목령
단목령에서 또다시 급경사 오르막을 치고 올라간다.
아이고 힘들어, 아이고 하나님.
곡소리를 내며 겨우 겨우 올라갔다.
내가 마치 고물 자동차가 된 기분이다.
오르막에서는 힘이 없어 낑낑거리며 간신히 올라가고, 내리막에서는 가속도가 붙어 빠르게 내려가고.
체력이 떨어져 가는 게 느껴진다.
나 혼자 가는 거라면 버스 먼저 떠나라고 하고 천천히 가겠지만 같이 가는 산우님들이 있으니 그럴 수도 없고.
고맙게도 나를 기다려주는 통에 편히 쉬지도 못하고 마지못해 꾸역꾸역 걸어간다.
그나마 500m 간격으로 서있는 이정목에서 힘을 얻는다.
이제 6km만 가면 돼, 이제 5.5km만 가면 돼.
어떻게든 오색 삼거리까지만 가보자고 생각하며 I can do it! 을 읊조리며 걸었다.
그런데 이곳에 참 기기묘묘한 나무들이 많이 있다.
하나하나 다 찍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서 그냥 눈인사만 하고 갔다.
쭉쭉 뻗은 나무들도 멋있지만 뒤틀린 나무들이 더 아름답다.
우리 인생도 그렇겠지?
순탄하게 살아온 삶이 좋을 수도 있지만 굴곡진 삶이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것처럼.
내 경우만 해도 어려웠던 시절이 나중에 훨씬 더 귀중하게 쓰이는 것을 보게 된다.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아픈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고,
내가 실패하지 않았다면 실패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고,
내가 오해받지 않았다면 억울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뒤틀린 나무들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처럼 내 삶도 그러한 어려움들로 인해 더욱 풍요로워지고 아름다워지리라 생각한다.
힘들게, 힘들게 오색 삼거리에 도착하였다.
뽀미초롱 언니가 같이 사진을 찍자는데 웃을 힘도 없다.
하지만 이제 3km만 내려가면 된다.
아직 한 시간 반이 남았으니 잘하면 오늘은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기운을 내어 길을 떠났다.
오색 삼거리에서 오색으로 내려가는 길은 두 가지 이유에서 정말 죽여준다.
첫째, 그 3km가 계속해서 급경사 내리막이다.
잠시만 한눈을 팔면 금방이라도 사고가 날 것 같아 초긴장을 하고 내려갔다.
둘째, 내려가는 길에 내내 보여주는 설악의 모습이 절경이다!
그 모습에 오늘 고생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이런 멋진 경치를 보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고생은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역시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고 세상에 공짜는 없나 보다.
No pains, no gains!
도대체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급경사 내리막이 순해지고 왼쪽으로 계곡이 보이며 곧이어 마을이 나타났다.
다행히 헤드랜턴을 사용하지 않고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갈 수 있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5시 20분!
와, 정말 장하다.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는데 나 자신이 대견하다.
남들은 웃겠지만 나에게는 진짜 인간극장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이다.
오늘 또 한 고개를 넘었다.
다리는 혹사당하고 눈은 호사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