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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2014.11.11 백두대간 3차: 조침령 ~ 왕승골 ~ 갈천리

산행일시: 2014년 11월 11일 화요일 (맑음)
산행코스: 조침령터널 관리사무소 ~ 조침령 ~ 쇠나드리 고개 ~ 왕승골 갈림길 ~ 왕승골 ~ 갈천리
산행거리: 대간 12.7km + 접속 6km = 18.7km
산행시간: 10:50 ~ 17:20
등산지도:

 

요사이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조심해야지' 했는데 결국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콧물이 나오고 머리가 띵~~.

아침에 전복죽 만들어놓은 것이 있어서 먹고 나가려는데 영 입에 안 당긴다.

두, 세 숟가락 먹다 내려놓았다.

사당에 가서 버스를 탔는데 속이 답답하고 불편하다.

먹은 게 얹혔나?

출발부터 불안하더니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내내 힘들다.

약을 먹었는데도 속은 체한 것처럼 답답하고 머리는 아프고 게다가 안 하던 멀미까지 해서 울렁거린다.

잠을 잘 수도 없고 정말 미칠 지경이다.

휴게소에서 까스명수를 사서 마셨다.

산우들이 먹으라고 주는 커피도, 호두과자도, 군고구마도, 과일도 먹을 수가 없다.

지금 아프면 안 되는데. ㅠㅠ

아프더라도 내려온 다음에 아프게 해 주세요.

 

원래 대간 3차는 미시령에서 한계령까지 1박으로 가는 코스였다.

그런데 지금이 산불방지 기간이라 감시가 더 심한 데다 수능 전이라 숙박지를 구하기도 힘들다고 하여 그 구간은 내년으로 미루었다.

또 한계령에서 조침령까지 가는 코스도 산방 기간 이후로 미루고 오늘은 조침령에서 왕승골까지 가기로 하였다.

원래 계획대로 이번 주에 1박으로 가면 난 참석이 불가능한지라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상황이 바뀌어 참석할 수 있게 되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이왕 하는 거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싶은 내 마음을 아셨나 보다. ^^

재작년 아침가리골을 가면서 내린천을 처음 보았는데 그때 맑고 멋진 계곡에 감탄을 연발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좋은 곳 있었나 놀랐다.

그런데 오늘 보는 내린천은 그때와 많이 다르다.

수량이 줄어서 유약해 보이고.

아마 내 상태가 안 좋아서 더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꼬불꼬불 내린천을 따라가는 길이 왜 이리 긴지.

속에서 돌풍이 부는 것 같다.

급기야 맨 앞 대장님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저 어서 빨리 땅을 밟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힘들게 도착한 조침령 터널 관리사무소 앞에서 세 번째 대간 길을 떠났다.

가벼운 임도를 걷다 보니 좀 나아지는 것 같다.

어차피 되돌아올 길이지만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조침령 표지석까지 갔다.

 

조침령

큰 표지석, 작은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고 구룡령 쪽으로 향하였다.

처음에는 예쁜 데크 길.

 

그다음에는 편안한 산죽 길.

 

이게 웬 떡이야?

'몸이 안 좋아 걱정했는데 오늘은 정말 룰루랄라 하며 산행할 수 있겠구나.'라고 착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르막이 시작된다.

이 정도쯤이야.

올라갔다 내려갔다 편한 길로 걷다가 다시 올라갔다 내려갔다 편할 길로 걷다가...

꽤 가파른 경사를 보이기도 하지만 봉우리 자체가 높지 않기 때문에 잠깐 힘들고 말면 된다.

그런데 이게 끝없이 계속되는 거다.

열린생각님 블로그에 보니까 19개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고 하는데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정말 수십 개는 넘은 것 같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것 같고.

게다가 속이 안 좋아 점심까지 라면 한 젓가락으로 때우고 말았더니 체력이 방전이 되었다.

정신은 멍~ 하지 기운은 없지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지.

내가 오늘 여기를 내려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후미 대장님인 보병궁 대장님이 뭔 약인지 기운 내라고 약을 주셨는데 물어보지도 않고 덥석 받아먹었다.

그만큼 힘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오늘 75세 되신 분이 합류하셨는데 그분 때문에 오늘은 내가 꼴찌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걸 기뻐해야 하는 건가?

억지로 주시는 약이랑 콜라랑 초코바를 먹었더니 좀 힘이 나는 것도 같다.

여름엔 야생화가 많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낙엽만 쌓여있고 별로 사진 찍을 풍경도 없어서 줄기차게 앞만 보고 걷다 처음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아! 여기 sky walk네!

하늘 위를 걷고 있었다.

아스라이 보이는 저 밑의 도로는 마치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가지만 남은 나무들 때문에 시야도 트여 맞은편 능선이 시원하게 보였다.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흐리던 날씨도 맑아졌다???

분명 그동안 흐렸었던 것 같은데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처음부터 맑았다고 한다.

정말 이상하네.

내 마음이 흐려서 맑은 날씨도 흐려 보였나?

이윽고 도착한 왕승골 갈림길.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구나.

그런데 그 내려가는 길이 참 거시기하다.

경사가 가파르다는 것은 이미 다른 분들의 블로그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아예 길이 없다고 해야 한다.

 

경사도 경사지만 낙엽이 수북이 쌓여 어디가 길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온 신경을 곤두세워 스틱으로 두드려 가며 조심조심 내려가는데 한 순간 이 길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처럼 낙엽이 아름답게 깔린 곳을 본 적이 있나?

이처럼 낙엽 밟는 소리가 아름답게 들리는 곳이 있었나?

이 낙엽 속에서 뒹굴어보면 어떨까?

낙엽 찜질을 해보면 어떨까?

여길 포대자루 한 장 깔고 앉아 미끄러져 내려가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러자 그곳이 완전히 딴 세상으로 변했다.

짜증나는 급경사 길이 아니라 이 가을이 지나고 나면 내가 그리워하게 될 아름다운 길로.

하나님은 상황을 바꿔주시거나 고통을 면제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눈을 바꿔주시고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신다.

내가 지식적으로만 알던 말씀들이 산을 다니면서 체험적으로 다가오니 이 또한 감사하다.

5시까지 하산하라고 하셨는데 20분이나 지나서야 버스에 도착하였다.

나만 늦은 게 아니라서 다행이긴 했지만.

맨 뒤의 75세 할아버지께선 1시간 10분이 지나서 도착하셨다.

그래도 불평 없이 기다릴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후미가 어두운 산길을 무사히 내려올 수 있도록 기도하였다.

몸이 안 좋아 걱정을 많이 한 산행인데, 오늘은 도저히 못 따라갈 것 같다는 생각에 두려웠던 산행인데 오늘도 무사히 내려왔다.

산을 다니면서 깨닫게 된 또 한 가지.

아무리 먼 길도 한 발 한 발 걷다 보면 끝나게 된다는 것이다.

저 봉우리를 언제 올라가나? 이 산을 언제 내려가나? 싶지만 한 발 한 발 걷다 보면 결국 어느 순간 산행이 끝난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걷는 것이다.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냅시다"라는 말처럼.

돌이켜보면 나에게도 힘든 시간들이 있었다.

죽을 것 같고, 차라리 죽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 한 발 걸어갔을 때 어느덧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왔던 경험들이 있지 않은가?

힘들 때는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고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힘들더라도 그 자리에 주저앉지 말고 천천히 한 발 한 발 걸어가다 보면 힘든 오르막도 끝나고 가파른 내리막도 끝나고 아름다운 숲길도 만나게 된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내가 좋아하는 전도서 7장의 말씀이다.

축복과 고통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내 태도가 중요한 것임을 기억하자.

그리고 나에게 주어지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함을 기억하자.

범사에 감사함을 배우게 하신 하루였다.


집에 와서도 계속해서 낙엽 밟히는 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난 그 소리가 그렇게 아름답고 인상적으로 들리던데 다른 사람들은 별 감흥이 없었나 보다.

하나님은 참 공평하시다.

남들보다 나쁜 귀를 주셨지만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게 하시고 들어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하시니.


<의문>

왕승골에서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 고개를 돌아 내려가다 보니 "여기는 해발 1000m입니다"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오늘 지나온 능선 중에 955봉이 있었는데 어떻게 여기가 해발 1000m일까?

버스를 타고 다시 산을 올라간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