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16년 2월 16일 화요일 (흐리고 눈)
산행코스: 박마을 ~ 부리기재 ~ 대미산 ~ 새목재 ~ 차갓재 ~ 안생달
산행거리: 대간 12.7km + 접속 2.5km = 15.2km
산행시간: 10:00 ~ 15:30
산행트랙:
등산지도:
더웠다 추웠다 날씨가 정신이 없는 가운데 또다시 추위가 찾아왔다.
사실 겨울 날씨로는 그다지 추운 날이 아니지만 따뜻하다가 갑자기 추워지면 체감온도가 더 낮아진다.
중무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들머리인 박마을로 향하는 산악회 버스 안에서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옆에 앉은 흰마루 님과 오룩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글쎄 그분이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다!!!!!
지난 1여 년간 같이 산행을 하며 이야기도 하고 그랬는데 어떻게 여태 선생님이란 것을 모르고 있었지?
다들 나보고 어떻게 담임선생님을 몰라볼 수 있느냐고 하는데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이곳에서 선생님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새치 염색을 안 하시고 흰머리로 다니시는 바람에 더 못 알아보았다.
내게는 30대 선생님 모습만 기억에 남아 있으니까.
결정적으로 선생님 목소리가 너무 많이 변하였다.
예전에는 허스키 보이스가 아니었는데...
어쨌든 선생님이나 나나 너무 놀랍고 반가웠다.
그러고 보니 걸음걸이나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도 안 변하신 거 같다.
언제나 조용조용 말씀하시고 화내는 일도 없으셨는데.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선생님 말씀을 따르도록 하는 능력이 있으셨는데.
내 이름을 듣자 선생님께서도 금방 나를 기억하셔서 고마웠다.
74세라고 하시는데 아직도 건강하셔서 산행을 하시는 모습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산에서는 어찌나 빨리 가시는지 쫓아갈 수가 없을 정도이다.
내가 "흰마루 님은 신선처럼 날아다니시네요."하고 말씀드리곤 했었는데.
앞으로도 오랫동안 건강하게 산행하실 수 있기를 기도한다.
선생님과 함께 박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하였다.
박마을에서 올라가는 길은 2.5km 정도 되는데 초반에는 완만한 오르막, 후반에는 급경사 오르막이다.
묘지 군락을 지나고 나면 이제까지 걷기 좋은 숲길은 가파른 오르막으로 변한다.
하지만 오늘은 안생달마을에 5시 이후에 내려가야 한다고 해서 시간도 넉넉한 데다 부리기재까지만 오르고 나면 힘든 구간이 없다고 하여 마음이 느긋하다.
게다가 나만큼 느림보인 별콩 님마저 함산하여 함께 세월아, 네월아 하며 올라갔다.
박마을을 떠난 지 1시간 30분쯤 후에 부리기재에 도착하였다.
부리기재
이곳에서 대미산까지가 1.2km 라니 30분이면 충분히 가겠다.
게다가 능선 길이라 힘들 것도 없을 것 같다.
간간히 바람에 흩날리던 눈발이 점점 굵어지더니 제법 눈꽃이 만들어진다.
처음으로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가야 할 능선이 보였다.
곧이어 어렵지 않게 대미산에 도착하였다.
대미산 정상
대미산을 지나자 눈발이 더 굵어진다.
생각지도 않았던 눈 산행을 하게 되네.
눈물샘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게 지나치고 문수봉 갈림길에서 점심을 먹었다.
눈이 세차게 내려 금방 쌓이는 통에 부랴부랴 점심을 먹고 일어났다.
새목재까지 내려가서는 가볍게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오늘 후미로 가시는 대장님께서 말씀하시길, 차갓재에서 부리기재로 가면 계속 오르막이고 부리기재에서 박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급경사이기 때문에 힘들어서 자기는 반대 방향으로 리딩을 하는 거라고 한다.
지난주 20기는 차갓재에서 부리기재로 갔다가 다들 groggy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며 자신의 탁월한 선택(?)을 연신 자랑하신다.
그 말을 거짓말 보태서 백 번은 들은 것 같다.
대장님의 그런 자랑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거슬릴지 모르지만 난 엄마의 생색내기에 단련(?)되어 있어서 그런지 맞장구 쳐주며 웃어넘길 수 있다. ㅋㅋㅋ
"그러게 모든 것이 대장님의 은덕이라니까요."
나이 먹어서, 산에 다녀서 좋은 점은 점점 둥글어진다는 것이다.
중학교 동창들이 고등학교 동창들이고 대학교 동창들이다 보니, 그리고 졸업하고 나서도 별 변함없는 생활을 하다 보니 인간관계의 폭이 넓지 못했는데 산에 다니면서 정말 각양각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그러면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행복한 환경에서 살아왔는가 깨닫게 되고,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지는 것 같다.
예전에는 나도 한 까칠해서 가리는 게 많았는데 다양한 사람들과 접하면서 그래도 요새는 많이 둥글어졌다.
봐도 못 본 척하고, 말하고 싶어도 참을 수 있고, 꼴 보기 싫은 것도 웃어넘길 수 있고.
아직도 멀었다고?
그렇겠지.
하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것은 희망적이지 않은가?
misscat, 잘하고 있는 거야. ㅎㅎ
새목재는 아무런 표시가 없어서 정확하게 어디인지 알 수 없었지만 가다 보면 안부가 나오는데 아마도 그곳인 것 같다.
그곳에는 덩굴들이 많이 있었는데 다래 덩굴이라고 한다.
새끼손가락만큼 가는 덩굴부터 허벅지만큼 굵은 덩굴까지 온갖 덩굴들이 나무들을 칭칭 감고 있었다.
다른 나무를 감을 수 없으면 심지어 자기네들끼리 감던지 혼자 배배 꼬여 올라가고 있었다.
"야, 너그들, 숨 좀 쉬게 놔줘라."
저 나무들이 얼마나 답답할까 보기만 해도 숨통이 조여지는 것 같았다.
사람이나 나무나 옭아매서는 안 될 것 같다.
이건 선생님께서 찍으신 사진 중에 퍼온 것인데 어디에 이런 것이 있었나? 난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이곳에는 백두대간 중간지점 표지석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지난번에 본 차갓재에 있고, 또 하나는 새목재에서 차갓재 사이에 있다.
두 표지석 사이가 약 2km 정도 차이가 날 것 같은데 어디가 중간 지점이건 난 상관없다.
전신주를 지나고,
송전탑을 지나면,
차갓재에 도착한다.
차갓재
이곳에서 다 함께 모여 대장님의 지시를 기다리다가 안생달마을로 하산하였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와인피플에서 머루주와 오미자주를 시음하기도 하고 구매하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버스에 올랐다.
금방 그칠 줄 알았던 눈은 하루 종일 내리며 겨우내 아쉬웠던 눈 산행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었다.
무엇보다 정말 오랜만에 은사를 만나서 더 의미가 있었던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