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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2014.11.25 백두대간 4차: 구룡령 ~ 갈전곡봉 ~ 왕승골 ~ 갈천리

산행일시: 2014년 11월 25일 화요일 (비)
산행코스: 구룡령 ~ 갈전곡봉 ~ 왕승골 갈림길 ~ 왕승골 ~ 갈천리
산행거리: 대간 8.5km + 접속 2.9km = 11.4km
산행시간: 10:20 ~ 15:40
등산지도:

 

이번에는 구룡령에서 왕승골로 간다.

원래 남진으로 하면 지난번에 끝난 왕승골 갈림길에서 구룡령으로 가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갈천리에서 갈전곡봉까지 계속 가파른 경사 길을 치고 올라야 하기 때문에 부실한 회원을 배려한 대장님께서 이번 구간을 북진으로 변경하셨다.

그 부실한 회원이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겠다. ㅋㅋㅋ

차를 타고 가며 대장님께서 "비가 와야 하는데..." 하신다.

지금이 산불방지 기간이라 지킴이들이 있을 거라며, 하지만 비가 오면 지키지 않을 거라 하신다.

만약 지킴이들이 있으면 미인계를 쓰던지(?) 갈천리로 가서 빡센 산행을 해야 한다고 하신다.

미인계로 쓸 만한 인물은 없는 것 같고 할 수 없이 갈천리로 가야 하나?

산행하면서 비가 오기를 바랐던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어쨌든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었는지 구룡령 고갯길을 올라가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오후에는 날씨가 갠다고 했는데 비는 점점 더 심해지고.

비가 온다고 모두들 환호(?)하는 가운데 구룡령에 도착하였다.

지킴이들은 없었다!

우비를 챙겨 입고 구룡령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은 후 계단을 올라갔다.

 

구룡령

가파른 계단이 잠시 나타나더니 곧바로 편안한 능선 길로 연결된다. 

다음에는 이곳에서 진고개까지 무박으로 22km를 가야 한다고 하신다.

우짜노. ㅠㅠ

난 무박 산행을 할 자신도 없고, 22km를 갈 자신도 없는데...

구룡령 옛길 정상을 지나 꾸준히 올라간다.

고도가 높아지자 비는 싸라기눈으로 변하였다.

 

주위는 진한 운무로 사방이 막힌 듯 한데 귓가를 때리는 싸리눈 소리가 마치 빗방울 전주곡처럼 경쾌하게 들린다.

gloomy weather에 bright music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렇게 운무가 자욱한 산행은 처음이다.

 

어떤 분은 귀신이 나올 것 같다고 하시는데 난 오히려 아늑한 느낌이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부드럽게 날 안아주는 느낌?

내가 우울질이라 그런지 이런 날이 친근하게 느껴지는데 내가 이상한 건가?

이런 산길은 혼자 걷고 싶은데 다른 팀에서의 사고도 있었고 해서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불만이랄까?

혼자 걷고 싶어서 늘 "먼저 가세요,  전 혼자 갈게요." 라고 했었는데 이번 사고가 있고 나서는 경고(?)를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절대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겠다고, 꼭 같이 뭉쳐 다니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왠지 좋은 시절 다 끝난 느낌이다.ㅠㅠ

그래도 목숨과 바꿀 수는 없으니까.

 

갈전곡봉 정상

갈전곡봉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k현민님이 비닐막을 가져오셔서 덕분에 비를 피해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여러 분의 귀하신 헌물(?)로 거하게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떠났다.

이후로는 잠깐 다시 올랐다가 거의 내리막이다.

낙엽이 깔린 길이 눈과 비에 젖어서 매우 미끄러웠다.

왕승골 갈림길 이후로는 지난번에 고생했던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지난번에는 낙엽 때문에 길이 안 보였었는데 그래도 이번에는 비가 와서 사람들이 지나간 족적이 보인다.

미끄럽기는 매한가지고.

지난번에 내가 낙엽 소리를 녹음하고 싶다고 한 것을 기억한 임병수운님이 그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가시며 낙엽 밟는 소리를 녹음해주신다.

지난주 백덕산 낙엽 소리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훨씬 차분하고 정겨운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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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MB

나중에 내가 산행할 수 없을 정도로 늙거나 약해졌을 때 이 소리를 들으면 눈물이 날 것 같다.

내게 이처럼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감사해서, 그리고 좋은 산우님들과 함께 했었다는 것이 감사해서.

이번에는 약속 시간보다 10분 늦게 하산하였다.

점심을 지지고 볶으며 먹느라 시간이 좀 지체된 것 같다.

다음에는 늦으면 안 된다는 대장님의 경고를 들으며 산행을 마무리 지었다.

오후에 갠다던 날씨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지난주 백덕산에서 침묵하던 산에 비하면 오늘은 말이 없어도 다정한 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