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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2014.11.05 (밀양) 가지산(1,241m), 상운산(1,114m)

산행일시: 2014년 11월 5일 수요일 (맑음)
산행코스: 석남터널 ~ 중봉 ~ 가지산 ~ 쌀바위 ~ 상운산 ~ 귀바위 ~ 석남사 ~ 주차장
산행거리: 약 11km
산행시간: 11:30 ~ 16:15
등산지도: 

 

9월 말부터 계속 1주일에 두 번씩 산행을 했더니 내게는 무리였던 것 같다.

월요일에 석모도 해명산과 낙가산을 갔다 오는데 별로 높지 않고 쉬운 산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많이 힘들었다.

화요일에 좀 쉬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또 일이 있어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보니 드디어 저녁때 코피가 터졌다.

가지산 산행을 취소할까 생각했지만 지금 취소하면 회비가 이월도 안 되는 터라 일단은 길을 떠나보기로 하였다.

사당에서 석남터널까지 4시간 30분 걸렸다.

다른 때 같았으면 지루해서 몸이 꼬이고 그랬을 텐데 오늘은 그마저도 고맙다.

정신없이 졸다 일어나 휴게소에서 밥 한 숟가락을 뜨고 또다시 버스에 올라 비몽사몽 헤매다 석남터널에 도착하였다.

대장님은 가지산 정상에 갔다가 석남골로 내려가는 제일 짧은 코스로 가신다고 한다.

그 외 두 코스를 더 제시하셨는데 하나는 쌀바위까지 갔다가 계곡 길로 내려가는 코스, 또 다른 하나는 상운산까지 갔다가 능선 길로 내려가는 코스이다.

오늘은 나도 마음 비우고 대장님 따라 제일 짧은 코스로 갔다 와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석남터널 옆에서 올라가는 길은 중급 정도의 짧은 오르막이다.

날씨가 춥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바람도 안 불고 햇볕도 따뜻하여 이게 봄인지 늦가을인지 모르겠다.

하늘은 그야말로 구름 한 점 없고.

정말 날씨 죽~인다.

10분 정도 오르자 이정표가 나타나고 편안한 둘레길로 연결된다.

멀리 쌀바위도 보이고 영남알프스군도 보인다.

 

쌀바위 

오늘은 이런 길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계단이 나타났다.

이제 이 계단만 올라가면 오늘 고생 끝.

 

그런데 계단이 무려 600개나 되었다.ㅠㅠ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고.

계단엔 자신 있는 나이지만 이건 정말 아니지 싶었을 때 계단이 끝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급경사 오르막과 암릉 구간.

오르막이 그리 길지 않았기 때문에 과히 힘들지 않게 오를 수도 있었지만 이미 600여 개의 계단을 오르느라 진을 다 빠진 상태에서는 10m도 올라가기가 힘들었다.

다행히 암릉 구간은 맨질맨질한 바위가 아니고 계단식으로 발 디딜 곳이 있어서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드디어 정상.

아니, 중봉이네. ㅠㅠ

정상인 줄 알고 좋아라 사진을 찍으려는데 정상석이 안 보인다.

정상은 이곳에서 500m 쯤 더 가야 한단다.

정상까지는 다시 약간 내려갔다 올라가야 한다.

정상 도착 시간은 1시.

석남터널에서 한 시간 반이면 오를 수 있다.

거리는 3.5km.

정상은 바위 지대이다.

정상석이 두 개인데 아마 작은 것이 예전 것이고 큰 것이 새로 세운 것 같다.

 

가지산 정상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쌀바위 방향으로 향하였다.

이후 이어지는 길은 능선 길이라 그다지 힘들지 않다.

그러다 보니 슬슬 욕심이 생긴다.

석남골로 내려가? 좀 더 가봐?

결국 쌀바위까지 가기로 하였다.

가는 길에 그 유명한 가지산 백구를 만났다.

 

혼자 산책을 나왔는지 서두르는 기색 없이 가다 멈춰 섰다 한다.

멍멍아, 나랑 같이 가자.

심심해.

하지만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제 갈 길로 간다. 

오늘은 참 오랜만에 호젓하게 산행을 해본다.

밀양 얼음골이라더니 길에 얇게 살얼음이 얼어있었다.

 

아무리 응달이라도 이런 따뜻한 날씨에 얼음이 녹지 않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머지않아 아이젠이 필요하겠구나.

한 해도 끝나갈 테고.

이렇게 또 1년이 지나간다.

어렸을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때는 어서 빨리 서른이 되기를 기다렸다.

서른이면 뭔가 되어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서른이 되었을 때 난 몹시 당황하였다.

오랫동안 꿈꾸던 목표를 이루고 나니 기쁨은 잠시, 허탈감이 밀려왔다.

겨우 이걸 위해 그 오랜 세월 애써왔던가?

그야말로 so what? 이었다.

목표를 이루고 난 다음의 허탈감이 너무 커서 그다음 목표를 정할 수가 없었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항상 1등을 해야 하는 분이셨다.

그래서 느긋한 아빠를 못마땅해 하셨는데 아빠는 오히려 "무엇 하러 1등을 하려고 기를 쓰느냐? 늦게 가건 빨리 가건 다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는데"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나도 엄마와 같은 생각이라 아빠가 이해되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인생에는 길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항상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온 나에게 이제부터는 카르페 디엠!

산에 다니면서 깨닫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정신없이 정상 찍고 하산하였다.

그러고 나면 산에서 뭘 봤는지 기억이 없었다.

일찍 내려가 봤자 출발 시간까지 버스 기다리는 일뿐인데...

내가 산행 실력이 늘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이제는 느긋하게 순간순간을 즐기며 산행을 하려고 한다.

정 늦을 거 같으면 버스 떠나라고 하고 나 혼자 시외버스를 타고 가던지 자고 가겠다는 배짱도 생겼고.

이 생각 저 생각하며 쌀바위에 도착하였다.

 

쌀바위 

고성 화암사에도 쌀바위(수바위)가 있던데 이곳에도 쌀바위가 있다.

전설은 비슷비슷하고.

화암사 수바위보다는 이곳 쌀바위가 더 크고 웅장한 것 같다.

쌀바위 옆에는 쌀바위 대피소가 있고 먹거리를 팔고 있었다.

또한 이곳까지 임도가 있어서 차로 이동이 가능하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전망 데크와 이정표가 있는 곳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상운산으로 올라가게 되는데 상운산은 이정표에 표시가 되어있지 않다.

이정표 바로 뒤에 리본이 많이 달려있는 곳으로 올라가면 된다.

 

잠시 고민을 하다 '에라, 이곳까지 왔는데 상운산도 가봐야지' 하며 상운산으로 향하였다.

상운산은  전형적인 육산이다.

10여분 올라가면 정상에 도착한다.

 

상운산 정상

(상운산 정상을 생각 없이 지나치는 바람에 사진을 못 찍어 퍼온 사진으로 대신한다.)

귀바위를 거쳐 내려가면 다시 임도와 만나는 지점이 나타나는데 그곳에서 시멘트 길을 따라 꼬불꼬불 돌아내려 갈 수도 있고 산길로 가로질러 내려가 수도 있다.

물론 난 산길로 내려가다.

꽤 가파른 내리막이 계속된다.

바싹 마른 낙엽이 미끄러웠다.

조심조심 내려가다 보면 석남사에서 이어지는 등로와 만난다.

이제 단풍이 끝이겠구나 싶었는데 석남사 계곡에는 아직 단풍이 예쁘게 웃고 있었다.

 

5시 출발이라 시간 여유가 있어 주차장에 있는 음식점에서 해물파전을 먹었다.

아침에는 너무 힘들어서 오늘 산행을 무사히 할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되었는데 산행을 하다 보니 회복이 된 것 같다.

참 희한하게도 집에 있을 때는 여기저기 아프고 힘이 없다.

그런데 산에 오면 기운이 난다.

남이 보면, 그리고 내가 생각해도 꾀병 같은데 실제로 그러니 나도 이유를 모르겠다.

혹자는 산 공기가 좋아서 그런다고도 하고 산에 오면 심신이 안정이 되어서 그런다고도 하는데 어쨌든 산에 오면 몸이 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이래서 사람들이 무릎 연골이 다 나가서 철심을 박고도 또 산에 오르게 되나 보다.

하지만 이제는 단풍도 얼추 졌으니 1주일에 한 번만 산행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