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브래디 미카코
<공감을 넘어선 상상력 '엠퍼시'의 발견>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엠퍼시(empathy)를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감정적으로 공감하는 것이 심퍼시(sympathy)라면 인지적으로 상상해보는 것이 엠퍼시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엠퍼시는 "나와 의견이나 생각이 다른 누군가의 입장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상상해보는 지적 작업"이며 심퍼시와는 다르게 습득하는 능력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타인을 이해하려 하기 때문에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나의 한계를 넘어서기가 힘들 수 있다.
타인이 남에게 바라는 것과 내가 남에게 바라는 것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단순한 감정적 공감이 아닌 인지적 엠퍼시는 고도의 상상력과 지적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며 꾸준한 학습이 요구되는 후천적 기술이다.
한편 타인을 생각하는 일은 나 자신을 생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타적인 것과 이기적인 것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고립되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타인을 배려하고 보살피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든 곧 나의 유익을 위한 것이 된다.
이것은 내가 줄기차게 주장하던 바인데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 반가웠다.
개인의 유익과 사회의 유익을 위해 엠퍼시가 이렇듯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이 엠퍼시에 약한 이유는 엠퍼시를 작동시키는 정신적 부담을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고 한다.
엠퍼시가 훈련되어야 하는 기술이라면 당연히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그러한 노력을 싫어하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니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선천적인 심퍼시는 부족하지만 후천적인 엠퍼시는 잘하는 것 같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냉정한 것 같으면서도 정이 많다고 평가하나 보다. ㅎ
한편 엠퍼시에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을 수 있다는데 저자는 엠퍼시의 부정적인 측면을 상쇄할 대안으로 "각종 지배를 거부하며 타인의 처지를 상상하는 능력"으로서의 엠퍼시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엠퍼시를 그는 "아나키적 엠퍼시"라고 부르며 엠퍼시와 아나키즘은 같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그가 아나키스트임이 분명하기 때문임으로 이해하고 넘어가자.
이것도 엠퍼시겠지? ㅎ
저자는 엠퍼시의 문제를 단순히 심리학적인 영역에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역사, 정치, 경제, 사회, 철학, 교육, 젠더와 페미니즘, 외모지상주의, 코로나 사태로 인한 세대 간 격돌 등으로 확장하여 설명하고 있다.
풍부한 참고문헌과 사례로 한 편의 짜임새 있는 논문을 읽는 것 같은 즐거움을 주었다.
요새 우리 아파트 단지에 재건축이 진행되면서 조합원들 간에 분열과 대립이 심하다.
자기 감정이나 타인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판단력을 유지한 채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는 엠퍼시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기는 것을 그만두고 듣는 것을 시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