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15년 9월 8일 화요일 (맑고 산 위에는 바람 강함)
산행코스: 화방재 ~ 장군봉(태백산) ~ 부쇠봉 ~ 깃대배기봉 ~ 차돌배기 ~ 석문동
산행거리: 대간 12.46km + 접속 4.5km = 16.96km
산행시간: 10:55 ~ 17:50
등산지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간 길이었다.
조그만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면 좋았을 텐데.
나도 언제든 실수할 수 있고 약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목청 높일 일도 아닌데.
우리를 넉넉히 품어 주는 산처럼 우리도 그렇게 서로를 품어 줄 수는 없는지.
오늘 산행은 대장님과 일부 회원들과의 갈등으로 얼룩졌던 2주 전 대간 코스로 마침 그때 태풍 고니가 온다고 해서 산행이 취소되었던 구간이다.
돌아온 사람들도 있지만 어쨌든 팀에 균열이 생긴 것은 분명한 것 같아 마음이 안 좋다.
그 상처가 산에서 치유될 수 있을까?
산이 모두의 마음을 위로해주길 기대하며 화방재에서 산행을 시작하였다.
화방재
청명한 가을 날씨이다.
정말 하늘이 파랗고 바람은 벌써 서늘하다.
2013년 6월에 철쭉을 본다고 왔을 때는 날이 흐려서 조망이 좋질 않았는데 오늘은 원 없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화방재에서 600m만 올라가면 사길령이다.
사길령으로 가는 길은 초반의 짧은 오르막을 빼면 편안한 길이다.
사길령
사길령에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매표소가 있다.
사길령까지 가는 길이 너무 편안해서 좋아했는데 사길령에서 산령각까지 500m는 빡센 오르막이다.
산령각은 문이 닫혀 있었지만 잠겨있지는 않아서 안을 구경할 수 있었다.
산령각
산령각에서 정상까지는 3.6km이다.
이후 유일사 매표소 갈림길까지 완만한 오르막이다가 다시 빡센 오르막이 나타난다.
그 힘든 오르막 양옆으로 투구 모양의 투구꽃과 오리 모양의 진범이 피어 있었다.
투구꽃
진범
이 투구꽃과 진범은 오늘 원 없이 보았는데 고도가 높아질수록 색깔이 더 진해졌다.
유일사 능선 갈림길을 지나서 올라가다가 참당귀도 보았다.
참당귀
그동안 개당귀는 많이 보았지만 참당귀는 오늘 처음 본다.
인간 세상에서건 자연에서건 독해야 잘 사는가 싶어 씁쓸했다.
조금 더 올라가면 유일사 쉼터가 나온다.
예전에도 이 쉼터가 있었던가?
지붕을 뚫어 나무가 올라가도록 만든 자연친화적 쉼터이다.
이제 천제단까지 1.7km 남았다.
다시 급경사가 시작되는데 투구꽃과 진범의 색깔이 한층 짙어졌다.
투구꽃
진범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매발톱나무와 희귀 수종이라는 나래회나무도 많이 보였다.
매발톱나무
나래회나무
그리고 그 유명산 태백산 주목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는 주목.
그 긴 세월의 인내가 어떨지 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렇게 오래 살아가려면 체념과 포기는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사실 지나 놓고 보면 정말로 중요했던 문제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토록 자존심 상할 일도 아니었던 것 같고.
나이 들어 좋은 점은 좀 넓게, 좀 멀리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주목들은 '살아보니 별게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이해는 안 되더라도 '그럴 수 있지.'하고 넘어가면 또 그뿐인 것을.
크게 마음 상할 일도 아니다.
망경사 갈림길을 지나니 시원하게 조망이 트인다.
멀리 매봉산 풍력발전기 단지도 보이고.
본격적으로 주목 군락지가 나타난다.
나무가 사라진 곳에는 이질풀과 고려엉겅퀴, 개쑥부쟁이가 자리를 들어차고 있었다.
이질풀
고려엉겅퀴
개쑥부쟁이
장군봉에 오르니 바람이 장난 아니다.
추워서 재킷을 꺼내 입었다.
장군봉에는 장군단이라는 천제단이 있다.
장군봉 정상
장군단
이렇게 찍으니 마치 Chichen Itza에 있는 마야 유적지 같다.
그때는 3월인데도 숨이 막히도록 더웠는데 오늘 이곳은 9월 초인데도 시원하다 못해 춥다.
장군봉에서는 멀리 문수봉도 보인다.
오른쪽 산 아래에는 공군사격훈련장도 보인다.
장군봉에서 태백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너무 평화로워 보인다.
맑은 하늘 아래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들, 그리고 빙 둘러 펼쳐진 산들 하며, 이곳이 천국인양 싶다.
태백산 정상에 도착하여 대형 정상석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 모든 감정의 찌꺼기들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태백산 정상
정상에는 천왕단이라는 천제단이 있었다.
천왕단
태백산 천제단은 그 규모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클 뿐만 아니라 민족사의 시초 설화에도 등장한다고 하는데 지금도 매년 10월 3일 개천절에는 이곳에서 천제 또는 천왕제라고 하는 제의를 행한다고 한다.
오늘도 사람들이 앉아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
천왕단을 떠날 무렵 비행 연습을 하는지 굉음을 내며 전투기들이 연달아 창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아까 본 그 훈련장으로 향하는 비행기들인 것 같다.
하단을 향해 가는 길에는 한층 색깔이 짙어진 투구꽃과 진하다 못해 검은색처럼 보이는 진범들이 피어 있었다.
왜 올라 갈수록 꽃 색깔이 짙어질까?
햇빛을 많이 받아서 그런 걸까?
투구꽃
진범
하단은 반쯤 유실되어 있었다.
하단
이곳에서 바람을 피하여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전에도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그때는 너구리가 먹을 것을 달라고 풀숲에 앉아 기다리다가 우리가 떠나가니 쫄래쫄래 따라왔더랬다.
(2013년 태백산에서 만났던 너구리)
알고 보니 이 놈이 상습범이라 등산객들마다 쫓아다니는 것 같았다.
혹시라도 너구리가 또 나올까 기대해봤지만 이사를 갔는지, 사람들에게 혼쭐이 나서 다시는 안 나오는지 끝내 볼 수가 없었다.
점심 식사 후 편안한 오솔길을 따라가다가,
부쇠봉 갈림길에서 부쇠봉에 들르기 위해 문수봉 쪽으로 갔다.
이곳에서 백두대간 쪽으로 가게 되면 첫 번째 이정표가 나오는 곳에서 다시 부쇠봉 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문수봉 쪽으로 가게 되면 조금 가다 오른쪽으로 잠깐만 가면 된다고 한다.
대장님께서 사람들이 이곳에서 알바를 많이 하니 조심하라고 그렇게 주의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오른쪽으로 가는 길을 지나치는 바람에 약간 알바를 하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주의를 주신 대장님도 알바를 하였다고 한다. ㅋㅋㅋ)
산악회 리본이 달려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되는데 그 리본을 보고도 왠지 더 가야 할 것 같아서 그냥 직진을 한 것이다.
계속 가다 보니 내리막길이 나오는데 이러다가는 문수봉에 도착할 것 같았다.
그래서 같이 가던 산우님을 불러 세워 지도를 확인하고 되돌아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부쇠봉에 들렀다가 문수봉으로 가는 사람들이 내려가는 길이 분명 있을 것 같았다.
왼쪽을 유심히 보면서 가다 보니 과연 희미한 길이 있었고 그 길로 가니 헬기장이 나왔다.
헬기장에는 과남풀 꽃들이 무리 지어 피어 있었다.
지난달 화악산에서 보고 다시 만나게 된 꽃이다.
과남풀
이 헬기장 지나쳐 계속 직진하니 몇 미터 가지 않아서 금방 부쇠봉이 나타났다.
부쇠봉 정상
지도에는 부소봉이라고 나와 있는데 정상석에는 부쇠봉이라고 적혀 있다.
어쨌거나 이 부쇠봉은 강원도와 경상도를 가르는 지점이라고 한다.
부쇠봉에서 조금 더 직진하여 가면 전망대가 나오고,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사거리가 나온다.
아까 문수봉 쪽으로 가면서 지나쳤던 오른쪽 길로 가게 되면 만나는 사거리이다.
참고로 부쇠봉 갈림길에서 문수봉 쪽으로 가다가 <좋은사람들> 리본이 붙어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가야 이곳으로 오게 된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200m만 가면 부쇠봉이다.
대간 길은 이곳에서 청옥산 방향으로 가야 한다.
조금 더 가면 글씨가 희미해진 나무 이정표가 나오는데 부쇠봉 갈림길에서 백두대간 방향으로 오면 만나게 되는 삼거리이다.
만약 이리로 오게 되었다면 여기에서 왼쪽으로 400m를 올라가야 부쇠봉이다.
이후의 길은 힐링 코스이다.
조망이 없는 숲길을 한참 걷다 보니 깃대배기봉 숲이라는 안내판과 나무 데크로 된 길이 나왔다.
여기는 대간꾼들 이외에는 오는 사람이 있을 거 같지가 않은데 왜 이렇게 예쁘게 데크를 만들어 놓았을까?
어쨌든 기분 좋게 데크 길을 걸어갔다.
부쇠봉에서 3km 정도 가면 첫 번째 깃대배기봉 정상석이 나오고,
깃대배기봉 정상
조금 더 가면 두 번째 깃대배기봉 정상석이 나온다.
첫 번째 나온 큰 정상석이 나중에 세운 것 같은데 첫 번째 정상석에는 높이가 1,368m로, 그리고 두 번째 정상석에는 1,370m로 표기되어 있다.
어느 게 맞는 건가?
이곳에서 직진하면 두리봉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가야 대간 길이다.
깃대배기봉에서 차돌배기까지는 3.6km이다.
계속 편안한 숲길을 걷다 보면 벤치가 있는 쉼터가 나온다.
장군봉 이후 길도 편안하고 날씨도 선선하여 덥지 않지만 오랜만에 긴 산행을 해서 그런지 힘이 들고 자꾸 다리에서 쥐가 나려 하여 이곳에 앉아서 간식을 먹으며 잠깐 휴식을 취하였다.
이후 계속 가면 각화지맥 분기점이 나온다.
이 길에는 며느리밥풀 꽃과 오리방풀 꽃이 무리 지어 피어 있었다.
며느리밥풀
오리방풀
그리고 포천 백운산과 가평 유명산에서 보았던 달걀버섯도 한 개 볼 수 있었다.
달걀버섯
차돌배기에 도착하여 이정표를 보니 이곳에서 석문까지는 2km 정도, 석문동까지는 4km 정도라고 쓰여 있다.
차돌배기
왼쪽으로 꺾여 석문으로 내려가는 길은 점점 경사도를 높아지더니 끝내 가파른 내리막이 되고 말았다.
조심조심 내려가다 꽁무니도 안 보이게 앞서 가던 중간 팀을 만나게 되었다.
힘들게 석문에 도착하였다.
석문
그런데 이곳에 있는 이정표에는 차돌배기까지가 1.5km란다.
왜 이리 이정표가 들쑥날쑥한지.
이곳에서부터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바위 너덜길이어서 방금 전에 내려온 급경사 내리막보다 더 힘든 것 같았다.
그래도 물소리를 들으며 가니 조금은 위로가 되는 것도 같기도 하고.
발의 피로를 풀고자 계곡에서 잠깐 족탕을 하고 서둘러 길을 떠났다.
하지만 이미 다리에 힘이 풀려버려서 족탕의 효과도 없는지 끝내 바위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왼쪽 정강이가 무척 아프다.
버스를 타고 다리를 보니 부어 있었고, 집에 와서 보니 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오늘의 훈장이다.
계곡 끝에는 사방댐이 있었고, 이후로는 임도라 편안하다.
고마리와 개당귀가 지천으로 피어 더욱 기분 좋게 만드는 길이었다.
고마리
석문동에 도착한 후 비포장도로가 끝나고 아스팔트 길이 시작되는 곳까지 내려가니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도 좋았고 길도 대체로 좋았고, 남들은 힐링 산행을 했다고 하는데 왜 난 이렇게 힘들지? ㅠㅠ
여러 가지 이유로 대간 산행을 계속해야 하나, 그만두어야 하나 또다시 고민하게 된다.
산은 다 잊으라 하는데 진정 깨끗이 털어버릴 수 있을까?
그 또한 욕심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과 끝까지 함께 가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일까?
* 2013년 6월 11일 태백산 산행기 blog.daum.net/misscat/4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