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Stephen Kern
<Eyes of Love: The Gaze in English and French Paintings and Novels 1840~1900>라는 다소 긴 제목의 이 책은 인상주의 미술과 19세기 문학에서 묘사된 남녀의 눈을 도상학적으로 연구함으로써 당시의 남녀관계와 사회적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9세기 여성들은 남녀관계에서 흔히 생각하듯 수동적이고 나약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많은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시각 자체가 남성적 지배와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남성들의 시각 중심주의가 여성을 대상화, 특히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이 "보이기 위한 존재"라는 개념은 남성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여성들은 남성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남성들을 의식하지 않으며 남성들에게 보여주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 책에서도 말하듯 여성은 (남성에게) 보이기 위한 존재였던 적이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여성들이 화장을 하거나 옷을 차려입는 것은 남성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이거나 오히려 다른 여성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일 때가 더 많다.
저자는 반대로 오히려 남성이 보이기 위한 존재이며, 여성은 결정권을 지닌 관찰자라고 말한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이 말이 전적으로 사실이다.
또한 저자는 남성이 여성을 보는 시선은 성적인 의도로 일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난 남자가 아니니까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이 말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하지만 사회 전반에 걸쳐서 여성이 다분히 성적 대상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반면 남성에 비해 여성은 훨씬 사랑에 있어서 지적이고 도덕적이라고 한다.
도덕의 기반은 자연(본성)을 거부하는 능력이다.
남성은 자연적 열정(욕망)을 따르도록 권유하고, 여성은 도덕적 규범을 따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문학과 그림에서 여자의 눈은 정서적 혼란과 도덕적 규범에 관한 갈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여성마저 유혹에 항거할 수 없다면 그 누구도 하지 못한다."는 말로써 여성의 도덕적 우월성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파노프스키는 도상학 연구를 3단계로 구분하였다.
화가가 얼마나 사실적으로 그렸는가에 따라 제1단계의 연구가 신빙성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대상이 가지고 있는 관습적인 내용을 분석하는 제2단계와 상징적 가치를 파악하여 본래의 의미 또는 숨은 내용을 파악하는 제3단계는 사회 전반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이해를 필요로 한다.
이것만 해도 쉽지 않은 일인데 내가 도상학 연구를 할 때 고민했던 부분은 한 사람의 또는 일부의 작품을 가지고 연구한 결과를 과연 일반화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다행히 이 책은 충분히 많은 수의 작품들을 분석하였으며 그림과 문학으로 크로스체크를 하고 있기에 객관성을 부여하는 것이 크게 문제될 것 같지는 않다.
"남성은 공적 영역의 도덕을 관장했고 여성은 사적 영역의 도덕을 관장"함으로써 사랑의 도덕에 있어서 여성이 우위에 있었다는 것은 여성이 도덕적으로 우월해서라기 보다는 남성보다 책임져야 할 것이 더 많았기 때문은 아닐까?
아무리 양성 평등을 외쳐도 생물학적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는 한 여성은 방어하는 입장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씁쓸하기는 하지만 그러한 현실을 “도덕적 우월성”으로 미화하여 말해주는 저자가 고맙기도 하다.
적어도 그런 사람은 여성을 대상화하지는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