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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2015.06.17 백두대간 16차(2): 소청 대피소 ~ 소청 삼거리 ~ 공룡능선 ~ 마등령 ~ 설악동

산행일시: 2015년 6월 17일 수요일 (맑은 후 흐려짐)
산행코스: 소청 대피소 ~ 소청 삼거리 ~ 희운각 대피소 ~ 무너미고개 ~ 공룡능선 ~ 마등령 ~ 설악동
산행거리: 대간 5.99km + 접속 6.9km = 12.89km
산행시간: 4:50  ~ 16:40
등산지도:

 

밤새 한숨도 못 잤다.

아니, 잤나?

모르겠다.

어쨌든 코 고는 소리, 잠꼬대하는 소리를 들으며 언제 날이 새나 기다리다가 옆 사람이 일어나 짐을 챙기는 통에 나도 그냥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다.

대부분 아직도 자고 있어서 조용조용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광경.

 

우와! 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구름바다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밀려드는 구름 속에 설악이 섬처럼 떠있다.

이걸 보려고 지난주에 못 오게 된 것일까?

사진에서나 보던 그런 광경을 직접 보게 되다니!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목이 멘다.

시원한 새벽 공기 속에 밀려드는 구름 파도에 모든 잡념이 씻겨나가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이걸 볼 자격이나 되는지 모르겠다.

왜 난 항상 어린애처럼 근시안적으로 구는 걸까?

내 생각, 내 계획과 맞지 않는다고 투정이나 부리고.

지난주에 와서 희운각 대피소에서 잤더라면 이 모든 멋진 모습들을 못 봤을 텐데.

이렇게 흠이 많고 못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공룡을 만나러 간다.

함박꽃과 정향나무의 인사를 받으며 소청 삼거리에 이르는 돌길을 걸어 올라갔다.

 

희운각 대피소로 내려가는 동안 운해 속에서 해가 떠오른다.

왠지 애국가를 불러야 할 분위기이다.

 

말이 필요 없다.

내겐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기쁨, 평화가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희운각 대피소까지 가는 길은 멀지 않지만 너덜길이기 때문에 속도가 나질 않는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어도 무박 산행할 때처럼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아마 누워서 쉬었기 때문인가 보다.

아니면 잠깐이라도 잤나?

어쨌든 조심조심 내려가니 계단이 기다리고 있고 그 끝에 희운각 대피소가 보였다.

 

희운각 대피소 옆에 있는 계곡은 물이 한 방울도 없이 바싹 말라 있었다.

 

그 모습에 내 가슴도 타들어가는 것 같다.

빨리 비가 와야 할 텐데.

어제 소청 대피소에서 만난 어느 분이 하시는 말씀이 원래 대간 길은 내를 건너면 안 되기 때문에 대청봉에서 <죽음의 계곡>이란 곳을 따라 희운각 대피소로 내려가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곳에서 조난 사고도 있었고 길이 워낙 위험하기 때문에 금지해놓아 할 수 없이 이 계곡을 건너가는 것이라고.

 

희운각 대피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

나도 희운각 대피소에서 아침을 먹을 계획이었으나 앉을자리도 없고 취사를 하지 않을 것이기에 조금 더 가서 먹기로 하였다.

희운각 대피소를 지나 전망대로 가다 보니 대청봉에서 희운각 대피소로 내려오는 <죽음의 계곡>이 보였다.

 

상당히 가파르네요.

희운각 전망대는 올라가지 못하도록 밧줄이 쳐있었다.

전망대 옆 화채능선 아래 계곡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구름이 올라오는 모습이 가히 환상적이다.

 

 

 

무너미고개에서 공룡능선 쪽으로 갔다.

순하게 내려가는가 싶더니 가파른 암벽이 나타났다.

 

어쩌나? 난 이런 거 좋아하는데. ^^

열심히 바위를 기어 올라가니 신선대다.

아직 잠이 덜 깼는지 공룡 한 마리가 운해 속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공룡능선

이곳에서 아침을 먹으며 여기저기 셔터를 눌러댔다.

어디를 찍어도 감탄사가 나온다.

뒤따라 신선대에 올라온 분들도 하나같이 탄성을 지른다.

사진기로 찍고, 휴대폰으로 찍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은데 이 감흥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대로 눌러앉아 해가 지는 것까지 보고 싶지만 그래도 공룡 등을 한 번 타보긴 해야겠지.

어느 블로그에 보니까 다섯 번쯤 오르내리면 공룡능선이 끝난다고 했는데 작은 오르내림까지 합하면 열 번 가량 되는 것 같다.

신선대로 올라가는 길이 제일 힘들고 그다음 대여섯 번 정도는 그다지 힘들지 않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 정도가 힘들다.

열린생각 님이 말하길, 공룡능선까지 가는 길이 힘들어서 그렇지 공룡능선 자체는 별로 힘들지 않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런 거 같다.

누구 말대로 관악산 6봉보다 더 쉬운 것 같다.

시간도 많겠다 올라가 볼 수 있는 있는 봉우리들은 모두 올라가 보았다.

 

(두 번째 봉우리에 올라가서 본 모습)

(두 번째 봉우리의 기암들)

(쓰러진 나무가 통천문을 만든 오르막)

뒤돌아본 신선대 

(세 번째 봉우리에 올라가서 본 모습)

(거북이 한 마리)

솜다리

공룡능선을 반쯤 넘었지 싶은데 구름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이래도 멋있고 저래도 멋있고.

이정표가 있는 고개에 올라 쉬어 가기로 하였다.

앉아서 체리를 먹으려니 사방에서 다람쥐들이 몰려온다.

 

언제부터 설악산이 다람쥐 동산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전혀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이 먹을 걸 주는 줄 알고 기다린다.

성질 급한 놈은 빨리 달라고 등에도 기어오르고 다리에도 기어오른다.

 

한참 다람쥐들과 놀다 가려는데 바위에 붙은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강남대 산악회에서 영원한 산사람이 된 선배를 기리는 위패였다.

너무 산이 좋아 이른 나이에 길을 떠났나 보다.

 

(그다음 봉우리에 올라가서 본 모습)

한동안 공룡 치고는 얌전한 놈이다 싶더니 본색을 드러낸다.

허리를 쭉 폈다가,

 

온 몸을 곧추세운다.

 

이곳에 사람들이 흔적을 많이 남겼다.

돌탑은 기본이고.

나도 돌탑 하나 쌓아놓고 왔다.

 

재미있지만 이런 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싶기도 하지만.

한숨 돌리고 보니 플룻 나무도 있고.

 

맞은편에는 예쁜 꽃이 피어 있다.

 

난 같은데 무슨 꽃일까?

아시는 분?

마지막으로 나한대를 향하여 간다.

 

나한대를 기어 올라가 점심을 먹었다.

 

나한대에서 마등령 삼거리까지는 금방이다.

마등령 삼거리에 도착하여 공룡과 작별 인사를 하였다.

나에게는 참으로 착한 공룡이었다.

이제 더 이상 공룡능선을 오지 못하게 된다고 해도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을 것 같다.

보고 싶은 거 다 봤고, 올라가고 싶은 곳 다 올라가 봤다.

 

진짜 마등령 삼거리는 비선대 쪽으로 조금 더 가야 하지만 편의상 이곳을 마등령 삼거리라 하는 것 같다.

마등령으로 가는 길을 막아놓은 이곳이 진짜 마등령 삼거리가 아닐는지?

 

다음에는 여길 가야 한다.

마등령 ~ 미시령.

하산은 백담사나 설악동으로 할 수 있는데 오늘은 설악동으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설악동까지 7km 정도.

마등령 삼거리를 지나 조금 가면 긴 계단이 나온다.

 

그리고는 계속 너덜길이다.

어떤 블로그에 보니까 욕이란 욕은 다 하며 내려갔다고 하던데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관악산 향교 능선 정도?

가다 보니 죽어야 할 나무가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이런 나무들을 볼 때마다 존경스럽다.

삶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해선 안 된다는 것을 배운다.

사자바위를 지나 계속 내려간다.

 

                      사자바위

급할 거 없으니 놀다 가다, 쉬다 가다를 반복한다.

앉아서 암벽 등반하는 사람들도 한참 구경을 하고.

 

나도 저런 거 해볼 날이 있을까?

한 번 해봐야 할 텐데.

멋진 바위들을 구경하며 천천히 내려가다 보니 금강굴 갈림길에 도착하였다.

 

금강굴까지 200m네?

까짓 거 갔다 오지.

그런데 그 200m가 그냥 200m가 아니었다. ㅠㅠ

100개의 철계단을 지날 때까지만 해도 즐거웠다.

 

그다음 돌계단과 또다시 철계단을 합해 160개 정도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이 돌계단이 얼마나 가파른지 양쪽으로 난간을 잡고 매달리다시피 하여 올라가야 한다.

어휴, 여기에서 진짜 욕 나올 뻔했다.

이걸 그냥 200m라고 하면 안 되지!

어쨌든 낑낑대며 올라가니 경치는 끝내준다.

천불동 계곡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그 또한 바싹 말라서 안쓰럽기는 하지만.

 

금강굴 안에 약수가 있어 한 모금 마셨다.

 

옆에 달려있는 거울을 보니, 아이고, 계단 올라오느라 힘들어서 얼굴이 때꾼하다.

금강굴을 구경하고 그 욕 나오는 계단을 다시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보니 여기서도 암벽등반을 하고 있었다.

 

나 그냥 저거는 포기해야 할 거 같다.

천불동 계곡으로 가는 삼거리를 지나 비선대를 올려다보고 설악동으로 내려갔다.

 

                              비선대

수량이 적지만 그래도 계곡에 맑은 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밧줄이 없는 곳에서 잠깐....

 

1박 2일 동안 고생한 내 발.

정말 애썼다.

신흥사를 지나 매표소 쪽으로 가니 배낭 무게를 잴 수 있는 저울이 있었다.

 

내 배낭 4kg.

그러니까 첫째 날은 적어도 6kg 이상의 배낭을 메고 다녔다는 말이다!!

갑자기 어깨가 욱신거린다.

설악동 소공원 주차장으로 가서 산행을 종료하였다.

 

7번 버스를 타고 속초 고속버스터미널로 가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남들은 무박으로 하루에 끝낼 수 있는 거리의 산행을 1박 2일 걸려 갔다 왔다.

내 기도 세 가지 모두 들어주셨다.

운해도 봤고,

공룡능선에서 구름 속에도 갇혀봤고.

천불동 계곡도 보았다.

Thank you, God!

 

Good job, misscat!

You took much pain coming all the way here.

I knew you did it.

But you know, you haven't changed a bit.

You still have your temper.

Nevertheless, love yourself as you are.

Because mistakes are part of dues one pays for a full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