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19년 7월 25일 목요일 (맑은 후 저녁부터 폭우)
장소: 훈누 캠프 ~ 테를지 국립공원(Gorhi-Terelj National Park) 내 플로라의 초원
어제 저녁부터 바람이 세차게 불어 밤에 추울까봐 걱정을 했는데 난로도 켜주고 침대마다 전기요가 있어 따뜻하게 잤다.
자다가 게르 천장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잠이 깼다.
어제 산 너머에서 미친 듯이 번쩍이던 번개가 끝내 비를 몰고 여기까지 왔나 보다.
빗소리를 듣다 다시 잠이 들었고 게르 천장 틈으로 쏟아지는 햇살에 잠이 깼다.
아침 6시였다.
게르 밖으로 나가보니 하늘이 너무 예쁘다.
아침은 뷔페식으로 밥, 볶음밥, 죽, 국, 빵, 샐러드, 소시지, 삶은 계란 등이 나왔다.
아침 식사 후 시청각실에 모여 오늘 일정에 대한 훈누 캠프 사장님의 설명을 들었다.
오늘은 테를지 국립공원 내 플로라의 초원을 Car Pack Trekking 하는 날이다.
Car Pack Trekking이란 야영에 필요한 장비들을 러시아제 푸르공이라는 승합차에 싣고 진행하는 트레킹이다.
왜 버스를 이용하지 않는가 의아할 수 있지만 오늘 우리가 트레킹 하는 곳은 테를지 국립공원 중에서 자연보호 구역으로 유목민 게르들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지역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길도 없단다.
17km 정도 걷는다는데 작은 애가 잘 따라와 줄지 걱정이 된다.
다행인 것은 트레킹 도중 힘들면 푸르공을 타고 이동할 수 있다고 하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7명씩 푸르공을 타고 플로라의 초원으로 향했다.
푸르공
비포장도로라고 하기도 뭐하고, 하여튼 초원 위를 덜컹거리며 달려가는데 보이는 풍경이란 푸른 초원이랑 그 위에서 노니는 양, 염소, 말, 그리고 점점이 있는 게르들 뿐이다.
얼마 전에 비가 많이 와서 여기저기 물길이 생겼다.
이 푸르공이라는 차가 겉보기에는 후졌는데 천하무적이다.
거침없이 물길을 따라 달려간다.
세상에 멋진 수륙양용 차이다.
완전 사파리 투어네. ^^
물길을 달려가는 푸르공 동영상
1시간쯤 달려가다가 유목민 게르를 방문하였다.
차에서 내리니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이기만 하던 풀밭은 온통 똥밭이었다.
소, 말, 양, 염소 등 방목하는 동물들의 배설물이다.
유목민 가정에서는 우유로 만든 과자 두 종류와 유제품을 주었다.
고맙지만 양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난 못 먹겠네. ㅜㅜ
예전에는 이것, 저것 잘 먹었던 것 같은데 점점 더 못 먹겠다.
아니, 예전에도 못 먹었나?
유목민 게르
유목민 가족
유목민 게르를 떠나 30분 정도 더 가다가 어워가 있는 곳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어워는 우리나라의 성황당 같은 것이다.
우유를 뿌리면서 어워 주위를 세 바퀴 돌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나?
난 이미 다 이루어져서 더 이상 빌 소원이 없는데.
진짜로 너무나 감사한 하루하루라 더 이상 바란다면 욕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워
30분가량 더 가서 점심을 먹었다.
밥이랑 미역국, 닭고기, 김치, 야채 요리, 과일 등 나름 신경 써서 런치박스를 준비하였다.
모든 음식에서 양 냄새가 나는 것은 내 느낌뿐일까?
점심 식사 후 야생화가 만발한 플로라의 초원을 트레킹 하기 시작하였다.
멀리서 보면 온갖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초원인데 내려서 보면 완전 똥밭에 똥파리 투성이다.
이게 몽골의 멋이지. ㅠㅠ
버스긍 다리를 지나 조금 더 가자 강과 시내가 합류하는 지점이 나타났다.
사장님께서 내를 건너야 할 때 신으라고 슬리퍼를 나눠주셨는데 이곳은 도저히 걸어서는 건널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차를 타고 건너기로 했다.
지금까지 거침없이 달려온 푸르공이긴 하지만 물살이 세고 깊어 보여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다른 차들이 건너는 것을 보고 맨 마지막으로 차를 탔다.
그런데 왜 불길한 생각은 이리도 잘 맞는지. ㅜㅜ
하필이면 내가 탄 마지막 차가 시내를 건너는 도중 시동이 꺼져버렸다.
금세 차 안으로 물이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워매, 어째!!
결국 다른 차가 와서 끌고 가서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버스긍 다리
합수점
(내가 탄 마지막 파란 푸르공)
(시동이 꺼진 파란 푸르공을 끌고 가는 모습)
걸어도, 걸어도 끝없이 푸른 초원이다.
야생화가 만발한 초원을 걷는 건 너무 좋은데 방목하는 동물들 똥 때문인지 파리 천국이다. ㅠㅠ
그것도 작은 날파리가 아니라 커다란 쇠파리들이다.
게다가 얘네들이 죽어보질 않아서 그런지 사람 무서운 줄을 모른다.
쫓아도, 쫓아도 죽자고 좋다며 달려든다.
가다가 몇 번 시내를 건너기도 하는데 이 물 모임?
무슨 빙하수인가?
너무 차갑다 못해 아파서 비명을 지르며 건너갔다.
(초원에서 자전거를 타시는 캠프 사장님)
10km 정도 걸어가고 난 후 나머지는 푸르공을 타고 갔다.
야영지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스텝들이 텐트를 치고 있었다.
1인 1 텐트에 매트와 침낭이 준비되어 있었다.
제육볶음(?)과 꽁치김치찌개로 저녁을 먹고 있는데 어제 저녁처럼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하더니 멀리에서 번갯불이 번뜩인다.
설마 오늘 밤에도 비가 오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식사가 끝나기도 전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차를 타고 시냇가로 가서 간단히 세수를 하였다.
그 차디찬 물에 머리를 감는 여인네들도 있더라!
어떻게 저렇게 건강할까?
처음에는 텐트를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를 듣는 것도 신기하고 낭만적이었는데 천둥, 번개에 비는 점점 더 세차게 오기 시작하였다.
혼자 자기 무섭기도 하고 작은 애가 걱정되기도 하여 작은 애와 한 텐트에서 자기로 했다.
설마 밤새 이러는 것은 아니겠지?
(멀리서 번개가 치는 모습)
시간이 지날수록 천둥, 번개, 비바람은 점점 더 거세어졌다.
세상이 무너지듯 난리를 치는 폭우 속에서 대장님과 캠프 사장님은 연신 텐트 사이를 오가며 괜찮은지 물어보고 회원들을 안심시키셨다.
3시간 동안 난리를 치다가 11시 30분이 지나서야 겨우 폭풍우가 수그러들었다.
멀리 물러갔는지 천둥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계속해서 번쩍이는 번갯불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매트를 두 개 깔았는데도 바닥이 딱딱하고 차가워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또 천둥, 번개가 치며 비가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였다.
천둥, 번개가 얼마나 요란한지 오늘 밤을 무사히 지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심한 천둥, 번개는, 그리고 이렇게 오랫동안 치는 천둥, 번개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빗소리는 우박 소리 같아서 텐트가 찢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는데 실제로 텐트 안으로 부슬비가 내렸다.
그래서 텐트 안에서 우산을 쓰고 있다가 새가슴 misscat은 혹시 벼락을 맞을까 봐 겁이 나 우산을 접고 우비를 덮어썼다.
이거 완전 비상 상태인데 이러고 밤을 지내도 되는 건가? ㅜㅜ
하나님, 제발 천둥, 번개가 멈추고 비가 그치게 해 주세요.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 동영상
비박의 모든 낭만이 다 사라지네.
비박은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난 역시 공주인가 봐. ㅜㅜ
비가 오지 않았더라도 도저히 불편해서 캠핑은 못하겠다.
씻는 것도 그렇고, 캠프 사장님께서 이동식 양변기를 가져와 설치해주셨지만 화장실도 그렇고, 잠자리도 그렇고.
폭우에 텐트가 찢어질까봐, 텐트가 날아 갈까봐, 벼락을 맞을까봐, 비가 더 심하게 샐까봐 불안에 떨며 한 시간 반쯤 지나자 다행히 비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침낭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더 이상 천둥, 번개가 없기를 기도하다가 잠이 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