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15년 6월 16일 화요일 (맑음)
산행코스: 한계령 ~ 끝청 ~ 중청봉 ~ 대청봉(설악산) ~ 소청 삼거리 ~ 소청 대피소
산행거리: 대간 9.38km + 접속 0.4km = 9.78km
산행시간: 10:50 ~ 18:10
등산지도:
I missed the Daegan hiking trip last Monday due to the ridiculous nonsense.
I'd been looking forward to this hiking trip for a long time.
It means a lot to me, and so I was extremely disheartened.
I was too distressed to sit back.
So I made a plan to go all by myself.
But...
우여곡절 끝에 지난주에 못 간 대간 산행을 땜빵하기 위하여 아침 8:30 동서울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한계령으로 갔다.
가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였다.
이런저런 생각에 뒤숭숭한 마음으로 한계령에 도착하였다.
한계령
한계령에는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꽤 많았다.
등산을 온 사람, 관광을 온 사람.
나만 빼고 저 사람들은 다 즐겁겠지? ㅠㅠ
서북능선에 이르는 108 계단을 올려다보노라니 마음이 착잡하였다.
혼자 왔어야 하는데.
말하지 말고 몰래 혼자 올걸.
그래, 이건 나에게 주는 기회였다.
하지만 결국 trio가 같이 오게 되었고, 미안함과 섭섭함, 나의 옹졸함에 대한 자괴감, 결국 또 신세를 지게 된 것에 대한 구겨진 자존심 등이 뒤섞여 심란하였다.
복잡하게 밀려드는 생각들을 떨쳐버리고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끝에는 설악루가 있고 오른쪽으로 위령비와 통제소가 있었다.
통제소를 지나서 한계령 삼거리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모처럼 무거운 배낭에 어깨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그동안 좋은 산우님들 덕분에 거저먹기로 산행을 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짐은 다른 분들이 들어주시고 나는 거의 빈 배낭만 메고 산행을 했었으니.
왼쪽으로는 귀때기청봉에 이르는 서북능선이 보인다.
저기도 함께 가기로 했었는데 갈 수 있을까?
등로 양 옆으로는 만개한 금마타리가 지천이다.
금마타리
요강나물은 그새 꽃이 지고 열매를 맺었다.
요강나물 열매
꽃이 피고 지고, 열매가 맺히고 떨어지고.
결국 우리 모두 그렇게 삶의 끝을 향해 가고 있는데 사랑하기에도 짧은 시간 아닌가?
난 왜 좀 더 너그럽지 못할까?
산에 다니며 깨달으면 뭐하나, 적용을 못하는데. ㅠㅠ
그러지 않아도 더운 날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오르느라 힘든 길을 마음까지 무겁게 오르니 그야말로 사서 고생이다.
1시간 30분 정도 말도 없이 걷기만 하여 한계령 삼거리에 도착하였다.
공단 직원이 예약자 명단을 들고 일일이 대피소 예약 여부를 확인하고 있었다.
12시가 넘어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싶었지만 그늘이 있는 곳은 이미 다른 팀들이 차지하고 있어 배가 고픈 걸 참고 조금 더 가서 먹기로 하였다.
이제부터는 서북능선을 타고 가기 때문에 아주 힘든 오르막은 없다.
잠시 좋은 길이 나타나는데 그 길 한가운데 서로 기대어선 나무가 있었다.
서로를 향해 자라다가 결국 한 나무의 가지가 부러지고 다른 나무의 그늘에 가려 죽은 것 같다.
인간관계도 이와 마찬가지로 너무 가까워도 안 되고 너무 멀어도 안 되는 것 같다.
한숨을 쉬다 정향나무 향기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정향나무
지금 설악산은 정향나무가 한창이라 그 향기가 산행하는 내내 코끝을 쫓아다녔다.
나도 내 이름처럼 향기를 내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향기는커녕 악취를 풍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ㅠㅠ
점심을 먹으려 앉으니 내 뚱한 마음을 풀어주려는 듯 다람쥐 한 마리가 나타나 재롱을 떤다.
나 아직 마음 풀고 싶지 않아. ㅠㅠ
동서울 터미널에서 사 온 김밥으로 얼른 점심을 해결하고 대청봉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오른쪽으로는 멀리 점봉산과 망대암산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수렴동 계곡과 용아장성이 보인다.
곧이어 중청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중청
오늘은 소청 대피소까지만 가면 되니까 시간에 쫓길 필요가 없다.
몸도 마음도 무겁겠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였다.
그늘에 앉아 쉬려니 이번에는 새가 날아와 재롱을 떤다.
너희 왜 이래?
나 아직 조금 더 삐쳐있어야 하거든!
에이, 어차피 풀 거 그냥 빨리 풀고 산행을 즐겨야겠다.
끝청에는 표지석이 없이 귀때기청봉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적힌 안내판만 있다.
끝청 정상
그동안 화창하던 날씨가 오색 쪽에서 구름이 몰려오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가리봉과 주걱봉을 삼켜버린다.
서북능선을 경계로 양쪽이 확연하게 갈리는 날씨가 신비롭기까지 하다.
오른쪽으로는 날씨가 화창하여 용아장성과 멀리 향로봉, 그 너머 금강산까지도 보인다.
중청봉에 도착.
중청봉은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조금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었다.
저 간첩 아니에요.
중청봉 정상
곧이어 중청 대피소와 대청봉이 보인다.
중청 대피소에 배낭을 놓고 대청봉에 갔다 와도 될는지 고민하고 있는데 벤치에 앉아 쉬고 계시던 어떤 아저씨께서 놓고 갔다 오라고 하신다.
그리고 옆에 있는 친구 분이 하는 말,
"에잇, 이놈의 배낭, 누가 들고 내려가 줬으면 좋겠네."
그 말에 빵~~ 터져버렸다.
정말 그러네.
이 무거운 배낭, 누가 좀 들고 내려가 줬으면 좋겠네.ㅋㅋㅋ
대청봉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만주송이풀이 만개하였다.
만주송이풀
그리고 전에 금대봉에서 보았던 범의꼬리도 여기저기 많이 피어 있었다.
드디어 학수고대하던 대청봉에 도착하였다.
대청봉 정상
예전에 대청봉에 왔을 때가 생각난다.
산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왕초보 시절, 오색에서 초주검이 되어 올라왔던 모습이.
그때도 마음이 참 힘들었는데.
언제 또 대청봉에 올 수 있으려나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또 왔네.
다음에는 기쁜 마음으로 오게 되기를.
석양에 울산바위가 황금으로 빛난다.
대간 2차 대간령에서 화암사로 내려가던 날 석양에 장엄하게 빛나던 울산바위가 생각난다.
숨 막히도록 황홀했던 그 모습이.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내 옆을 지켜주시는 대장님과 산우님들의 모습이.
좋은 분들을 만나 함께 산행할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큰 복이다.
지금까지 내가 대간을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그분들의 덕인 것을.
이런 좋은 분들에게 무얼 더 바란단 말인가?
대청봉에서 바라본 중청과 중청 대피소
다시 중청 대피소로 내려가 배낭을 짊어지고 길을 떠났다.
소청 삼거리에서 소청 대피소 쪽으로 내려간다.
소청 삼거리
공룡능선과 마등령, 울산바위가 보인다.
공룡, 너 내일 보자.~
그리고 왼쪽으로 용아장성과 봉정암이 보인다.
아, 난 용아장성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용아장성이 저런 거였어?
저기 가야겠다.
나도 저기 가야겠다.
6시 10분 소청 대피소에 도착하였다.
소청 대피소
몇 년 전에 리모델링했다는 소청 대피소는 정말 훌륭하였다.
일단 view가 너무 좋다!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이 내려다보이고 마등령과 울산바위, 그리고 저 멀리 향로봉과 금강산까지 내설악과 북설악이 두루 보이는 것이 7성급 호텔 부럽지 않다.
어찌 호텔에 비교할 수 있을까?
게다가 시설도 좋다.
일단 깨끗하고 따뜻하다.
탈의실도 있고, 화장실이 얼마나 깨끗한지 정말 감동받았다.
단돈 8,000원에 어디서 이런 천상 호텔에 투숙할 수가 있겠는가?
여기 꼭 다시 와야지.
다음에는 수렴동 계곡으로 올라가 소청 대피소에서 하루 자고 천불동 계곡으로 내려가 보고 싶다.
저녁을 먹고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서쪽에 뜬 구름 때문에 일몰은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해가 지자 한기가 몰려왔다.
재킷을 입고 가져온 담요를 둘러쓰고 나가 별 구경을 하였다.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던 별은 9시 소등 이후 하늘에서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별 볼 일 없던 내가 오늘 실컷 별을 봤다.
운 좋게 별똥별도 봤다!!
너무 빨리 떨어져서 소원을 빌 겨를도 없었지만 더 이상 무슨 소원이 있겠는가?
It's more than enough!
카메라가 좋았다면 그 멋진 밤하늘을 찍을 수 있었을 텐데.
대신 내 가슴속에 찍어놓았다.
영원히 바래지 않을 사진으로 남아 다오.
소청 대피소는 3층으로 되어있으며, 각 층에는 2층 침대가 있다.
오늘은 방문객이 많지 않아 1층과 2층까지만 open 해놓았다.
내 자리는 2층의 2층이었다.
1인당 2장씩 준다는 모포를 3장 빌려 두 개는 깔고 하나는 덮고 잤다.
혹시 몰라 귀마개를 가져왔지만 불편해서 결국 빼버렸다.
귀마개보다는 차라리 이어폰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코 고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대피소 안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가끔 잠꼬대로 소리 지르는 아저씨가 있어 놀라긴 했지만.
또 추울까 걱정해서 담요까지 가져왔지만 오히려 약간 더웠다.
하지만 낯선 환경에, 그리고 모포를 2장 깔았음에도 몸이 배겨서 자꾸 뒤척이느라 잠을 거의 못 잤다.
눈을 감고 오늘 하루를 되돌아봤다.
또 돌려보고, 또 돌려보고.
언제 날이 밝으려나...
하나님,
저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내일 운해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공룡능선을 반 정도 넘었을 때는 구름 속에 갇혀보고 싶어요.
설악동으로 내려갈 때는 날이 개어서 화채능선과 천불동 계곡을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 2012년 9월 11일 설악산 산행기 blog.daum.net/misscat/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