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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아, 설악산!

사람이 너무 정직해도 안 되는가 보다.

오늘은 한계령에서 미시령까지 1박 2일 대간 산행이 있는 날이다.

'나도 드디어 공룡능선을 넘어보는구나' 기대를 많이 하며 오늘을 기다렸다.

희운각 대피소에서 1박을 하기 때문에 각자 먹을 것을 나눠서 준비하였다.

전날 얼마나 부푼 가슴으로 배낭을 쌌던가!

대청에서 바라보는 동해를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도대체 공룡능선은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해보기만 해도 흥분이 되었다.

산장에서 별을 헤다 잠드는 생각에 행복했다.

그런데 그 행복이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로 인해 못 가게 된 것이다.

지금은 그 이유를 말하기도 싫다!

그 생각만 해도 울화통이 터져 죽을 거 같으니까. ㅠㅠ

아침에 사당역에 나가 내가 맡은 준비물을 전하고 대장님께 못 간다는 말씀을 드리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주책없이 눈물이 계속 나와 훌쩍거렸다.

집에 와서 배낭을 풀면서 꺼이꺼이 울었다.

얼마나 가고 싶어 했는데.

얼마나 기대를 많이 했는데.

대장님께 내가 졸라서 1박을 하게 된 것인데.

뒤늦게 가도 된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저 감사한 마음에 동서울 터미널로 달려가 버스를 타고 가려했지만 도착하면 입산 시간이 지나 등산을 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버스표를 환불한 후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이 어찌나 그리 먼지.

배낭은 어찌 그리 무겁던지.

사람들의 탁상행정에 화가 나고, 쓸데없이 정직하고 고지식한 나 자신에 화가 나고.

아무리 울어도 속상한 마음이 풀리지를 않지만 그래도 무슨 뜻이 있으시겠지.

내가 알지 못하는 무슨 이유가 있으시겠지.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 완전하신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니까 불평하지 말자.

그리고 아무도 원망하지 말자.

그런데 하나님, 저 정말로 가고 싶어 했던 거 아시죠?

전 언제쯤 공룡능선을 넘어볼 수 있나요?

언제쯤 황철봉 너덜바위를 기어 올라가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