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15년 5월 12일 화요일 (흐린 후 맑음 + 태풍)
산행코스: 댓재 ~ 두타산 ~ 박달령 ~ 청옥산 ~ 연칠성령 ~ 고적대 ~ 갈미봉 ~ 이기령 ~ 이기동
산행거리: 대간 19.6km + 접속 1.7km = 21.3km
산행시간: 06:25 ~ 16:20
등산지도:
지난번에 백복령에서 이기령까지 가서 탈출했기 때문에 오늘은 댓재에서 이기령까지 가야 한다.
22km가량 가야 하는데 과연 내가 갈 수 있을까?
18km도 녹초가 되어 간신히 내려갔는데 22km를 갈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되어 고민을 많이 했지만 함께 하는 산우님들 덕에 용기를 내어 도전해보기로 하였다.
지난번 무박 산행은 잠을 자지 못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전날 미리 내려가서 자고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하도록 하였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저녁 6:20 버스를 타고 동해에 내려가서 잤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지난번 이기동에서 동해로 갈 때 불렀던 택시 기사님을 다시 불러 댓재까지 갔다.
(기사님에 관해서는 13차를 참고할 것)
가는 길에 기사님이 소개해주는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댓재에 도착하니 6시 20분이었다.
댓재
태풍 <노을>이 지나간다는데 산행 시작하기 전에 비가 그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했더니 댓재까지 가는 동안 조금씩 내리던 비가 댓재에 도착해서는 그쳤다.
하지만 바람은 무지막지 강했다.
2013년 8월에 왔을 때도 태풍이 지나가느라 바람이 엄청 강했었는데 댓재에 올 때마다 태풍을 만나네.
그때 내 모자를 벗겨갔던 바람은 오늘도 여지없이 모자를 벗겨간다.
날아가는 모자를 잡으러 달려가는데 등 뒤에서 부는 바람 때문에 나도 날아가는 것 같았다.
빠르게 도망치던 모자는 그때와 똑같은 풀밭 위에 내려앉았다.
다시 모자를 쓰고 그 위에 후드를 써서 단단히 여미고 산행을 시작하였다.
두타산까지 6.1km, 3시간이면 되지 않을까?
햇댓등까지 올라가는 길은 그다지 힘들지 않다.
길 가에 연분홍색 철쭉이 피어 기분이 up 된다.
햇댓등에서 왼쪽으로 꺾여 내려갔다.
햇댓등
내려가는 길이 다소 급경사라 어김없이 미끄러졌다.
배낭 때문에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지만.
등로를 따라 계속 피어있는 철쭉으로 인해 진짜 낭만적일 수 있는 산길인데 잠꾸러기 숲을 흔들어 깨우는 요란한 바람 소리 때문에 영 분위기를 잡을 수가 없다.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윙 윙 무섭게 불어댄다.
하지만 숲은 하나도 안 무서운지 꿈쩍도 하지 않고, 그럴수록 바람은 더 소리를 질러댄다.
이윽고 조망이 터지기 시작한다.
저 멀리 동해 바다로부터 산들이 파도가 되어 몰려오는 것 같다.
그 모습에 숨이 멎을 것 같다.
앞으로는 위풍당당하게 서서 파도를 막고 있는 대간 길이 보인다.
잿빛 구름을 뚫고 나온 햇살은 희망을 전해주는 것 같다.
왠지 오늘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통골재를 지나고 나서부터는 야생화 밭이다.
얼레지, 홀아비바람꽃, 피나물, 벌깨덩굴, 연령초, 현호색, 노랑제비꽃, 개별꽃, 그 외 내가 알지 못하는 야생화들로 천상화원을 이루고 있었다.
통골재
얼레지
홀아비바람꽃
피나물
벌깨덩굴
연령초
산괴불주머니
그런데 이곳 야생화들 정말 크다.
야생화들의 거인국 같다.
어떤 피나물은 너무 커서 마치 작은 튤립 같을 정도였다.
얼레지도 얼마나 큰지 할미꽃 같다.
이어 두타산 정상으로 가기 전 1km 정도의 긴 급경사 오르막이 시작된다.
두어 번 쉬면서 올라가는데 힘들기는 해도 태풍 때문에 덥지는 않다.
급경사 오르막이 끝나고 나서는 잠시 평탄한 길이 나오다가 다시 중간급 정도의 오르막이 나오고 두타산 정상에 도착하였다.
더욱 거세어진 바람은 계속해서 외쳐댄다
내려가! 내려가! 내려가!
두타산 정상
전에 왔을 때는 이곳에서 두타산성을 지나 무릉 계곡으로 내려갔다.
오늘은 대간 길을 따라 청옥산으로 간다.
30m 거리에 두타 샘물이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덥지 않아 가져온 물도 남을 것 같다.
두타산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은 올라온 길만큼 급경사 내리막이다.
앞에는 가야 할 덕스러운 청옥산이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깊은 무릉 계곡이 내려다보인다.
박달령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도 무릉 계곡으로 내려갈 수 있다.
전에 박달령까지 왔던 사람들은 여기에서 내려가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고 한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오늘 하산한 후 들어보니 다시 이 길로 내려가고 싶지 않아 오늘은 두타산 정상에서 막바로 무릉 계곡으로 내려간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박달령
신기하게 박달령에서부터는 그동안 미친 듯이 불어대던 바람이 사라졌다.
덕분에 평온함을 느끼며 산행을 할 수 있었다.
이제 태풍이 다 지나갔나?
문바위재
문바위재를 지나고 나서부터는 다시 긴 급경사 오르막이 시작된다.
청옥산으로 가기 전에 있는 학등에서도 무릉 계곡으로 내려갈 수가 있다.
역시 길은 안 좋으리라 생각하지만 유사시 탈출로는 될 수 있겠다.
하긴 그곳으로 내려가다 더 힘들 수도 있겠지만.
학등
학등을 지나자 그동안 잠잠하던 바람이 다시 심술을 부리기 시작한다.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마!
청옥산에는 정상석이 두 개가 있다.
처음에 나타나는 정상석은 동해시에서 세운 것, 그리고 이 정상석 뒤편 리본이 많이 달려있는 길로 몇 미터만 가면 삼척시에서 세운 한자로 쓴 정상석이 있다.
청옥산 정상
이 길로 계속 가면 삼척시 중봉리가 나오는 것 같다.
청옥산 정상에도 샘터가 있다는 이정표가 있는데 사람들이 블로그에 물이 없다고 써놓은 걸로 보아 아마 수량이 매우 적은가 보다.
또한 이곳에서도 무릉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 걸로 이정표에 나와 있는데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았는지 등로가 보이질 않았다.
고장이 나서 활짝 열려있는 구호장비 보관함 문을 밧줄로 동여 묶어놓고 백두대간 등산로 표시를 따라갔다.
연칠성령으로 내려가는 길 역시 가파르다.
내려가는 길에 재미있게 생긴 나무를 만났다.
연칠성령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었다.
연칠성령
이제 고적대만 오르면 어려운 구간은 다 끝난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고적대로 올라갔다.
고적대로 올라가는 길은 급경사 너덜지대이다.
스틱을 접고 올라갔는데 올라가다 무릎을 바위에 부딪쳤다.
와우! 무지 아프다. ㅠㅠ
한동안 쉬면서 무릎을 문지르고 다시 바위를 기어 올라갔다.
만세! 고적대다!
의상대사가 수행했다는 산이 여럿 있는 걸 보면 의상대사는 여기저기에서 수행을 많이 했나 보다.
바로 이곳 고적대에서도 수행을 했단다.
아니, 혹시 의상대사가 등산을 좋아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그 옛날 굳이 이 험하고 높은 곳에 올라와 수행을 해야 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고적대
지나온 청옥산과 그 뒤로 두타산이 보인다.
고적대에서 고적대 삼거리로 내려가는 길은 진달래 터널이다.
산 위에는 아직도 진달래가 남아있는데 진달래가 만개했을 때는 정말 멋있었을 거 같다.
한쪽 면은 절벽이고 다른 한쪽 면은 연둣빛 숲으로 이루어진 능선이 어서 오라 부르는 것 같다.
바람은 여전히 가지 마! 가지 마! 가지 마! 소리치지만 이제 그 정도 협박은 웃어 지나칠 수 있다.
그래도 강한 바람에 코가 시리고 바람이 불어오는 왼쪽 뺨이 얼얼하다.
오늘 얼굴 좀 얼겠구나. ㅜㅜ
얼굴뿐 아니라 몸도 추워서 재킷을 한 번도 벗지 않고 산행을 하였다.
추워서 오히려 여분으로 가져온 재킷을 꺼내 입을 정도였다.
깎아지른 절벽들이 정말 멋있다.
가까이 가서 내려다보고 싶지만 바람이 너무 강해 겁이 난다.
그러지 않아도 휘청거리며 걸어가는데 낭떠러지 끝에서 잘못하다가는 자유 낙하할 것 같다.
드디어 고적대 삼거리에 도착하였다.
이제 오늘 힘든 구간은 다 끝났다.
고적대 삼거리 이후로는 한동안 길이 좋다.
도대체 갈미봉이 언제 나오는 건가 생각하며 걷노라니 짧은 급경사 오르막이 나오고 그 끝에 갈미봉이 있었다.
갈미봉 정상
이제는 진짜로 내리막길만 남았다.
안도가 되니까 오히려 힘이 난다.
예쁘게 돌을 깔아놓은 길을 지나 유유자적 산길을 걸어가니 나무 의자가 있고 이기령까지 1.1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에서 택시 기사님께 전화를 걸어 이기동 포장도로 끝까지 올라와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산림욕장처럼 편안한 숲길을 따라 이기령까지 내려가서 평상에 앉아 마지막으로 휴식을 취하였다.
이기령
한양길을 지나고, 첫 번째 민가를 지나고, 반달곰 산악회 농장을 지나 급경사 길을 따라 이기동으로 내려갔다.
포장도로가 시작되는 지점에 민가가 있고 그 앞에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 오늘 해냈다!
심지어 녹초가 되지도 않았다!
세상에 이런 일이!
택시를 타고 삼화사로 가니 5시도 안되었다.
상경은 6시 30분에 한다고 하셨는데 너무 일찍 내려온 거 아냐? ㅋㅋ
주차장 앞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푸근한 주인아주머니께서 이곳에서 직접 기르고 채취한 산나물로 만든 반찬들이 정말 맛있었다.
오늘은 바람 불어 좋은 날이었다.
* 2013년 8월 8일 두타산 산행기 blog.daum.net/misscat/4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