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14년 10월 16일 목요일 (점차 맑아짐)
장소: 주문진항, 오대산 소금강
원래는 진고개에서 노인봉으로 갔다가 소금강으로 내려오는 산행이었다.
그런데 진고개에서 노인봉까지는 대간 때 간다고 해서 소금강만 둘러보기로 하였다.
비 소식이 있어서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니 구름 사이로 해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 오늘도 좋은 날씨를 허락해주세요.
이윽고 도착한 진고개는 잔뜩 흐른 날씨에 바람이 많이 불어 초겨울을 연상케 했다.
다른 회원들은 이곳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하고 수은 언니와 난 날머리인 소금강 주차장으로 갔다.
버스에서 내려 계곡으로 가려는데 기사님 왈, "아, 난 주문진이나 갔다 올까?"
그 말에 수은 언니가 꽂혔고 나도 엮였다.
그래서 우린 계획에 없는 주문진항으로 갔다.
산행이 아니라 바다행으로 뒤바뀐 것이다.
원래 난 계획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데, 계획이 무산되면 멘붕 상태가 되는데. ㅠㅠ
갑자기 바뀌어버린 일정에 마음이 불편하였다.
난 오늘 소금강에 가야 하는데...
원래 계획대로 소금강으로 가자고 할까?
싫으면 혼자서라도 가겠다고 할까?
잠깐 동안이지만 심각하게 갈등을 한 후 내 계획을 포기하기로 하였다.
왜?
계획을 잘 세우고 또 계획대로 실천하는 것은 나의 장점이긴 한데 동시에 단점이 되기도 한다.
계획이 틀어지면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좌절하며 계획대로 안 되면 스스로를, 또 주위 사람들을 닦달하는 것이다.
계획적인 성격이 지금까지 나에게 플러스 요인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좀 편안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내 계획을 내려놓고 예상치 못했던 일에 도전해보기로 하였다.
40분 정도 걸려 주문진항에 도착하였을 때 하늘이 완전히 파랗게 개어있었다.
따스한 햇살과 기분 좋은 바람까지 정말 완벽한 날씨였다.
수은 언니, 기사님과 뭘 먹을까 고민하며 생선을 구경하였다.
그러다 홍게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홍게 1 무더기에 만원이래요!"
얼마나 매혹적인 문구인가?
하지만 실상을 달랐다.
맨 왼쪽에 있는 작은 게들을 물론 만원인데 우린 셋 다 맨 오른쪽에 있는 가장 큰 게들에게만 눈이 갔다.
그건 5만 원을 달라고 하였다.
우리가 주저하자 원래 8마리인데 두 마리를 더 주겠다고 하였다.
10 마리를 세 사람이 다 먹을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되었지만 수은 언니가 먹을 때 실컷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낙찰을 보았다.
내가 게 사진을 찍는 동안 수은 언니와 기사님은 식당으로 게를 들고 갔다.
게를 삶는 것이 아니라 증기로 찌는 것이어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기다리는 게 무료해서 싸가지고 간 도시락을 꺼내먹었다.
이윽고 푸짐한 게가 나왔다.
그런데 열 마리가 아니라 아홉 마리였다.
식당에서는 자기네는 가져온 대로 쪄준 거라며 기분 나빠하고.
성격 같아서는 게를 판 아주머니를 데려와서 삼자대면을 하고 싶었지만 그 또한 참았다.
어차피 아홉 마리도 우리 셋이 먹기에는 많을 뿐더러 잘, 잘못은 하나님이 판단하실 것이므로.
살이 통통히 오른 게는 정말 달고 맛있었다.
셋 다 말없이 폭풍 흡입을 하였는데 나는 다리 하나 가지고 낑낑대는 동안 수은 언니와 기사님은 한 마리를 먹는 것이었다.
보다 못한 기사님이 게 살 발리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발려주는 것만 먹다 보니 할 줄 알아야 말이지. ㅎㅎㅎ
그것도 연습이 필요한지 쉽지만은 않았는데 어쨌든 부스러기를 만들지는 않고 먹을 수 있었다.
한 마리 반을 먹고 나니 도저히 더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나머지 일곱 마리 반은 수은 언니와 기사님이 나눠드셨다.
결론적으로 우리 셋이 그 아홉 마리를 다 먹었다!!!
아홉 마리를!!!
게를 먹고 손을 씻으러 갔는데 비누가 없어서 그냥 물로만 씻었더니 냄새가 계속 났다.
수은 언니가 치약으로 닦으면 더 좋다고 해서 다시 화장실로 가 치약으로 손을 닦았는데 와! 정말 냄새가 싹 가시는 것이었다.
게다가 치약 냄새까지 나서 더 개운했다.
역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해. ㅋㅋ
배불리 먹고 소금강 주차장으로 돌아가니 2시였다.
서둘러 계곡을 올라갔다.
십자소와 연화담을 거처 식당암으로 갔다.
식당암
며칠 전 온 비로 계곡에 물이 많아서 더 보기 좋았다.
구룡 폭포에 도착하니 시원한 물줄기가 우리를 반겼다.
구룡폭포는 상단과 하단으로 된 2단 폭포였다.
구룡폭포 상단
구룡폭포 하단
계속해서 만물상으로 가려는데 2시 이후에는 입산 금지라고 하였다.
아쉬움을 머금고 구룡 폭포에서 놀고 있자니 진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한 회원들이 내려왔다.
회원들과 계곡을 되돌아 내려가며 금강사를 구경하였다.
내려가서는 소금강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었다.
올라갈 때 찍으려고 했었는데 단체로 온 사람들이 자리를 안 비켜주는 바람에 그냥 올라갔었다.
사진 찍고 나서는 빨리빨리 방을 빼줍시다!!
잘 먹고 잘 보고 정말 좋은 하루였다.
소금강 계곡은 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서 날아갈 수 있었다.
주차장에서 구룡폭포까지 왕복 두 시간이면 사진 찍고 놀면서 갔다 올 수 있다.
다음에는 엄마를 모시고 와야겠다.
주문진항에 가서 회도 사 드리고 아름다운 계곡도 보여드려야겠다.
계획대로 해서 좋은 때도 있지만 이렇게 계획에 없던 일을 해서 더 좋을 때도 있다.
앞으로는 내 생각을 내려놓는 연습을 더 많이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