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13년 1월 24일 목요일 (맑음)
산행코스: 대관령 마을휴게소 ~ KT 중개소 ~ 전망대 ~ 대관령 마을 휴게소
등산지도:
오늘 선자령에 갔다가 눈 앞에서 죽음을 목격하고 왔다.
일이 있어 늦게 출발하느라 1시가 넘어서야 대관령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기온은 영상이었으나 <바람의 언덕>이라는 카페 이름에 걸맞게 거센 바람이 몰아쳐서 체감 기온은 상당히 낮았다.
단단히 무장을 하고 산행을 시작했지만 강한 바람에 눈이 쓸려서 등로를 찾을 수가 없었다.
바람은 점점 더 강해져 한 발자국 옮길 때마다 옆으로 쓰러질 정도였다.
이러다 어느 하세월에 정상까지 갈 수 있을런지 걱정이 되었다.
(바람 때문에 서 있기가 힘들다.)
올라가며 만나는 산객들마다 바람이 너무 강해서 정상까지 가지 못하고 돌아가는 길이라며 그냥 되돌아가라고 하였다.
그래도 쓸데없는 오기를 부리며 올라갔는데 결국 정상을 500m 정도 앞두고는 눈물을 머금고 뒤돌아서야 했다.
바람이 너무 강하게 몰아쳐서 걸어가기는 커녕 서 있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무섭게 몰아치는 바람은 '너희 인간의 연약함을 알라.'고 고함치는 것 같았다.
결국 아쉬운 마음으로 내려가는데 몇몇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산행 오신 분들이 쉬고 있나 보다 생각했는데 가까이 가보니 누군가가 누워있었고 주위 사람들이 그 사람을 열심히 주무르며 CPR을 하고 있었다.
등산로에 쓰러져있는 사람을 업고 내려가다 기운이 빠져 내려놓고 119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하였다.
내가 별 도움을 줄 수는 없을 것 같았지만 발걸음이 떼어지질 않아 가지고 간 핫팩을 붙여주고 함께 구조대원을 기다렸다.
쓰러진 분은 할머니였는데 그 분은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몸이 차디차게 식어있었지만 아직 맥박은 뛰고 있었다.
초조한 마음에 119에 다시 신고를 하였지만 아래쪽에도 조난 신고가 들어와 그 사람들을 구하러 갔다며 기다리는 대답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멀쩡하던 다른 사람들도 체온이 내려가면서 다들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마냥 기다릴 것이 아니라 들것을 만들어 옮기자는 의견이 나왔고, 나뭇가지를 잘라다 등산 재킷을 끼워서 임시로 들것을 만들었다.
들것에 그 분을 싣고 남자들이 강한 바람과 맞서 싸우며 힘들게 눈길을 걸어갔다.
혼자서도 걸어가기 힘든 강풍과 눈 속에서 들것까지 들고 가느라 5분 정도 가다가는 쉬고, 또 5분 정도 가다가는 쉬기를 반복하였다.
20여 분을 내려간 후 드디어 구조대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분은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나중에 신문 기사를 보니 경기도 모 산악회를 따라오신 70대 부부로 우리가 발견한 부인은 숨졌고 남편은 실종되었다고 한다.
조금만 일찍 구조대를 만날 수 있었더라면.
같이 간 산우들이 그분을 모시고 내려갔더라면.
산 아래에서는 날이 따뜻해 방풍 재킷을 벗어놓고 올라가셨다고 하는데 방풍 재킷을 입고 갔더라면.
인생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을 하였더라면"을 되뇌며 살까?
대자연과 창조주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겸손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깨달은 시간이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p.s. 사고 당시 선자령 정상 부근의 기온은 영하 3~4도였으나 강한 바람이 불어 체감온도는 10도 이하였다고 한다.
고어텍스 재킷의 효과를 실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