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14일 진부령에서 시작하여 2016년 12월 13일까지 2년 2개월 동안 대장정의 백두대간 산행을 끝마쳤다.
누구 말대로 오기로 버텨온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대간이 끝나자마자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감기에 걸려서 눈물, 콧물에 정신이 없다.
산행 실력도 안 되고 체력도 안 되는 내가 끝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날 불쌍히(?) 여겨 도와주신 분들과 쓸데없이 강한(?) 의지 덕분이었으리라.
대장님께서는 이제는 실력이 평준화되었다고 하시지만 난 나 지신을 안다.
남들이 무박으로 갈 때 난 당일로 두 번을 갔고, 1박 2일로 갈 때 난 2박 3일로 갔다.
그래서 대간 17기가 59차로 끝냈지만 난 3번을 더해 62차로 끝냈다.
산행한 날수로는 66일이다.
910km(대간 713.2km + 접속 196.8km)를 걸어왔건만 여전히 내 산행 실력은 초보이고 내 체력은 별반 나아진 것이 없다.
몸무게를 늘리고 훈련을 계속하면 된다지만 원체 먹는 거에 관심이 없는 내가 산행하기 위해 억지로 먹는 것도 고역이었다.
억지로 먹다 보니 위에 탈이 나고 결국에는 도로 아미타불이 되곤 하였다.
조금 느는가 했던 몸무게는 대간이 끝날 무렵 다시 42kg 원상태로 돌아갔다.
이달 초에 한 건강검진에서도 근육량과 기초대사량이 처음 대간을 시작할 때와 별반 차이가 없게 나타났다.
2년 동안 1주일에 2번 이상씩 꾸준히 산행을 했건만 먹는 게 부실해서 그런지 체력이 크게 좋아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올 봄부터 몸에 자꾸 이상 신호가 오더니 여름에 2박 3일 지리산 산행을 하고 나서는 한 달가량 몹시 아팠다.
물론 낮잠을 안자도 될 정도로 체력이 향상되기는 하였지만 체력적으로 크게 얻은 건 없다.
그렇다면 정신적으로 얻은 것은?
끝까지 해냈다는 끈기와 의지?
교만한 말 같지만 그건 내 주특기이니 대간 산행으로 얻은 결과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대간 산행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인가?
먼저 어디건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험한 산길을 가면서, 아름다운 능선 길을 가면서 곳곳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
힘든 삶에 위로를 주셨고, 지친 삶에 용기와 소망을 주셨다.
하지만 다정한 하나님이시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대간을 통해 그 동안 계속 피해왔던 훈련을 받았다.
바로 싫은 사람 참아내는 것이다.
좋고 싫은 것이 분명한 나는 싫으면 더 이상 상대를 안 해왔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를 계속 훈련시키려 하셨다.
이 사람이 싫어 피하면 저 사람을 만나게 되고, 저 사람이 싫어 피하면 또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고.
대간 산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쓸데없는 오해를 받으며 이런 수준의 사람들과 산행을 같이 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피한다고 될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마음에 안 들고 싫은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니까.
결국은 내가 넘어야 할 산이고, 건너야 할 강이었으며, 지나야 할 광야였다.
대간은 예민하고 모난 내 성격을 다듬고 순종의 길을 배우는 훈련의 장이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싫은 건 참기 힘들다.
하지만 예전처럼 바로 싫은 기색을 드러내지는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싫은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그런 것이 위선이라고 생각했지만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는 로마서 12장 17절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죄 된 본성을 거슬러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위선>이 아니라 <선>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마지막 날 기분 좋아야 할 쫑파티에서 조차도 불편한 말을 들었지만 이제는 웃어넘길 수 있다.
예전 같았으면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할 정도로 면박을 주고 쏘아붙였겠지만 이제는 그런 말을 하는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내가 대간 산행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이다.
그리고 또 하나, 사람은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거나 신세 지는 걸 무척 싫어하는 성격인데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에도 인색하곤 하였다.
받기도 싫어하고 주기도 싫어하였다.
그런데 대간 산행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 나 혼자는 절대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도움을 받게 되면서 사람들은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치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나를 도와주신 임병수운 님과 k현민 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두 분이 없었더라면 대간을 끝마치지 못했을 것이다.
같이 후미로 가며 용기를 주고 언제나 나를 응원해줬던 대정지기님과 이정 언니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항상 후미로 들어오는 나를 말없이 기다려주었던 모든 산우님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misscat만 오면 다 왔다"는 말은 이제 진리처럼 되었다.
또 "misscat도 가는데 내가 못 가냐?" 하는 말도 속담처럼 되어버렸다.
이랬다저랬다 하며 분란을 만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끝까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산돌이 대장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나를 불편해했을 몇몇 사람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그들로 인해 온전한 훈련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원래 고생했던 기억이 나중에는 더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 법이니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지금의 이 시간들이 그립고 함께 했던 사람들이 그리울 것이다.
이제 대간은 끝나지만 내 인생의 대간은 계속될 것이다.
부디 산에서 배운 교훈들을 잊지 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