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14녀 11월 18일 화요일 (맑음)
산행코스: 문재 ~ 당재 ~ 작은 당재 ~ 백덕산 ~ 용바위 ~ 관음사
산행거리: 약 10km
산행시간: 09:40 ~ 15:40
등산지도:
지난 화요일 감기가 걸렸는데도 대간 산행을 하고 났더니 더 센 감기가 왔다.
목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파 침을 삼킬 수도 없고 콧물은 쉴 새 없이 줄줄 흘렀다.
병원에서 항생제를 처방해줬는데 항생제 부작용이 있어서 속이 아프고 메슥거린다.
산행을 취소할까 했지만 문재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200m 정도만 올라가면 된다고 하고 함께 산행하기로 한 분들도 있어 강행하기로 하였다.
문재
과연 문재에서 시작한 산행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오르막 내리막이 몇 번 나왔지만 심한 깔딱 고개는 없었던 것 같다.
다 죽어가던 몸은 오히려 산행을 하면서 살아나는 것도 같았다.
산 위에는 살짝 눈이 쌓여있었고 작은 상고대도 볼 수 있었다.
혹시 몰라 아이젠을 가져오긴 했지만 그냥 버틸만했다.
지난 일요일 산행을 하신 분이 바람이 강해서 체감온도가 영하 15도는 되는 것 같다고 하셔서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오늘은 바람이 불지 않아 산행하기 좋은 날이었다.
작은 당재에 있는 이정표는 누군가 장난으로 비네소골을 비너스골로 바꿔놓았다.
귀여운 장난에 미소가 지어졌다.
작은 당재
듣던 대로 백덕산에는 기묘한 나무들이 많이 있었다.
백덕산의 명물이라는 N자(W자?) 모양 나무에서 인증 샷을 날리고.
그런데...
지난주 마음이 많이 심란했기 때문에 오늘 산이 내게 들려줄 말에 기대를 많이 하고 왔었다.
하지만 오늘 산은 침묵하기로 작정한 거 같다.
아무리 귀 기울여도 아무런 말이 없다.
어떠한 격려도, 위로도, 질책조차도 없다.
혼자 산행해도 외롭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는데 오늘은 함께 산행하는 분들이 있어도 무척 외로웠다.
내게 뭔가 말을 해줘.
내가 오늘 얼마나 힘든 가운데 간절한 마음으로 왔는지 알잖아.
하지만 산은 굳게 입을 다문 채 아무런 말도 없었다.
이윽고 도착한 정상.
사방으로 트인 조망에 답답한 마음이 그나마 어느 정도 뚫리는 것 같았다.
백덕산 정상
관음사로 내려가는 길은 무척 가팔랐다.
도중에 용바위, 낙타바위가 나타난다.
용바위는 아무리 봐도 어떤 용의 모습인지 잘 모르겠다.
단지 저기 기어 올라가 사진 찍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뿐.
용바위
낙타바위는 정말 낙타 머리처럼 생겼다.
낙타바위
참 기묘하게도 만드시고 또 사람들도 이름을 갖다 붙이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더 밑으로 내려가니 시루떡처럼 생긴 소원바위가 있었다.
임병수운님은 그 귀한 소원을 내 감기가 빨리 낫게 해 달라는 걸로 빌었다.
얼마나 고맙던지.
사실 오늘 함산한 산우님들은 2주 후에 다시 백덕산 산행이 계획되어있다.
그분들은 오늘 굳이 백덕산에 올 필요가 없는데도 나를 위해서 오신 거였다.
함께 산행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 나라면 둘 중 하나는 취소했을 것 같은데.
게다가 지난 화요일 하산 중 낙엽 소리를 녹음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그걸 기억하고는 오늘 낙엽 밟는 소리를 녹음해주셨다.
참으로 고맙고,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아마 오늘 산은 내게 직접 이야기하기보다 동행한 산우님들을 통해 이야기하기 위해 침묵했었나 보다.
앞으로 나도 효율성을 따지기보다는 좀 더 베풀면서, 조금 손해 보듯이 살아야겠다.
대장님께서 산행 시간을 넉넉히 6시간 주셨는데 이상하게도 항상 시간이 빠듯하다.
넉넉하게 주시면 주시는 대로 우리도 널널하게 산행을 하니.ㅋㅋ
그나저나 이 감기가 빨리 나아야 할 텐데.
나를 위해 귀한 소원을 빌어준 산우님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강하게 느끼며 산행을 마무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