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15년 11월 10일 화요일 (맑았다가 흐렸다가)
산행코스: 고치령 ~ 마당치 ~ 늦은맥이재 ~ 상월봉 ~ 국망봉 ~ 비로봉(소백산) ~ 삼가리
산행거리: 대간 13.4km + 접속 5.5km = 18.9km
산행시간: 10:20 ~ 18:00
산행트랙:
등산지도:
오늘은 산행 거리가 길기 때문에 단단히 마음을 먹고 나섰다.
시간 안에 하산해야 할 텐데.
정 안되면 먼저 올라가라 하고 혼자 자고서 와야지 별 수 있겠나.ㅠㅠ
지난번과 같이 좌석리에서 트럭을 타고 고치령으로 올라갔다.
오늘은 날씨가 맑아 그런대로 트럭을 타고 갈만하다.
고치령에 도착하여 준비를 하고 산행을 시작하였다.
고치령
1km 정도 올라갔으려나?
오르막이 끝나면 지난번과 같이 걷기 좋은 낙엽 길이다.
고치령에서 마당치까지는 2.8km이다.
마당치
조금씩 오르락내리락하며 고도를 높이는데 산 아래에서는 맑던 날씨가 위로 올라갈수록 흐려진다.
아마도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연화동 삼거리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이번에도 트럭을 먼저 타고 올라가 선두로 산행을 시작했지만 점심을 먹는 사이에 뒤차로 올라온 사람들까지 모두 앞서 가버렸다.
운무 속 산길을 터벅터벅 걷노라니 겉옷을 벗고 하얀 속살을 드러낸 나무들이 무리 지어 있었다.
흐릿한 운무 속 하얀 나무들이 마치 다른 세상으로 인도하는 것 같다.
난 이런 날이 좋다.
물론 맑은 날도 좋아하고.
하지만 이런 날 난 오히려 더 안정이 되는 것 같다.
마치 숲이 날 다독여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요 며칠 신경 쓸 일이 있어 많이 지쳐서 왔는데 그런 날 포근히 안아주는 것 같다.
그리고 피곤하고 예민해진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 같다.
괜찮다고, 지나갈 거라고.
1년 전 이맘때도 참 힘들어서 산을 찾았었는데 또다시 지친 마음으로 오게 되었네.
왜 난 항상 주변 사람들 일로 인해 힘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만큼만 자기 앞가림 잘하면 문제없을 텐데. ^^
늦은맥이재
늦은맥이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길을 떠났다.
나남출판사 조상호 회장이 이런 말을 했다.
한바탕 단풍 잔치를 마치고 한 해의 잎사귀를 훌훌 털어버리는 매몰찬 용기가 부럽고,
한겨울 찬바람을 온몸으로 견디는 나목(裸木)의 인내는 어디서 온 것인지 궁금하다.
나도 그런 용기와 인내를 가졌으면 좋겠다.
과감히 버리고 끝까지 인내하는 그런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잠겨 수많은 잔 봉을 오르내리다 보니 어느새 상월봉 갈림길에 도착하였다.
이정표에는 상월봉 표시가 없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기 십상일 것 같다.
늦은맥이재를 지나 국망봉 쪽으로 가다 보면 <고치령 ~ 국망봉>만 표시되어 있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에서 이정표 뒤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리본이 달려 있어서 조금만 주의하면 등로를 금방 찾을 수 있다.
사진을 찍었어야 하는데... ㅠㅠ
상월봉은 바위를 타고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상월봉에 올라서니 비로소 조망이 트이며 국망봉으로 가는 길이 훤히 보였다.
단양 쪽은 구름에 휘감겨있고 영주 쪽은 화창하다.
구름이 소백산을 넘어가지 못하는가 보다.
아무리 큰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이 산처럼 굳게 서있다면 그 어려움이 나를 삼키지는 못할 텐데.
아직도 너무나 약한 내 모습에 화가 난다.
왜 이렇게 밖에 못되는지...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없애주시거나 피할 방법을 알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겨낼 힘을 주신다고 하는데,
하나님, 저도 이겨낼 수 있게 해 주세요.
상월봉을 내려가면 아까 상월봉 갈림길에서 바로 국망봉 쪽으로 오는 길과 만나게 된다.
이후 국망봉까지는 진달래 터널이다. (아님, 철쭉인가?)
진달래이건 철쭉이건 꽃이 만발할 때 이 터널을 지나면 얼마나 멋있을까?
하얀 눈꽃이 피었을 때는 또 얼마나 멋있을까?
철쭉이건 눈꽃이건 꽃이 피면 다시 와야겠다.
뒤돌아보니 멀리 상월봉과 권투장갑 바위가 보인다.
단양 쪽 구름은 여전히 소백산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소백산! 절대로 지면 안 돼!
국망봉 정상
국망봉에서 사진을 찍고 비로봉으로 향하였다.
능선을 따라가는 길은 순탄하다.
초암사 삼거리를 지나서 계속 가다 보니 철없는 진달래가 있었다.
작년에도 이런 정신 나간 애를 만났었는데 올해 또 만나네.
뭐든지 때가 있는 법인데 그럴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정말 답답하고 힘들다. ㅠㅠ
이제 구름 속으로 완전히 들어왔는지 사방이 뿌옇다.
철쭉들도 국망봉 쪽보다는 훨씬 더 오래된 나무들처럼 보인다.
이런 곳에는 팡고른 숲의 엔트들이 살 것만 같다.
금방이라도 일어나 걸어와 말을 걸 것 같다.
"이봐, 인간, 사는 거 별 것 아니야. 너무 속 끓이지 말게나."
글쎄? 천 년, 만 년 산다면 조금 더 초연해질 수 있을까?
숲을 벗어나니 멀리 비로봉이 보인다.
비로봉까지 900m 남은 지점이다.
구름 속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비로봉이지만 저 위에 올라가면 분명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올라가야지.
힘들다고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지.
마지막 오르막을 지나면 목책이 있는 아름다운 길이 나타나고 곧이어 어의곡 삼거리에 도착한다.
어의곡 삼거리
다음에는 이리로 올라온다는 거지?
드넓은 초원 끝에 비로봉이 어서 오라는 듯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도 구름은 소백산을 넘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소백산아! 끝까지 버텨야 해!
소백산처럼 강하지는 못하더라도 이 억새들처럼 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릴망정 꺾이지는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길 끝에 비로봉이 보인다.
소백산 칼바람이 유명하다는데 내가 소백산에 올 때마다 바람이 잔잔하다.
차라리 칼바람이라도 맞으면 답답한 마음이 나아질 거 같은데.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바람을 맞으며 나아가면 용기가 생길 것 같은데.
바람도 내 연약함을 아는지 올 때마다 조용히 날 맞아준다.
비로봉(소백산) 정상
정상은 내 짐작대로 맑게 개어 있었다.
기를 쓰고 소백산을 무너뜨리려는 단양 쪽 구름들과 맑은 하늘 아래 아름다운 영주 쪽 단풍이 내려다보인다.
그런데 양쪽 다 너무 아름답다.
내 삶의 퍼즐 조각들이 어떤 그림을 그릴지 자못 궁금하다.
정상을 다시 한 번 쳐다보고 긴 계단 길을 따라 비로사 쪽으로 내려갔다.
삼가 주차장까지는 5.5km이다.
1시간 30분이 남았는데 시간 안에 갈 수 있을까?
내려가는 길이 그리 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쉽지도 않다.
긴 거리를 걸어오느라 힘이 빠져 다리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냥 포기하고 싶다.
그냥 여기서 주저앉았으면 좋겠다.
내 안의 겁쟁이를 꾸짖으며 내려갔다.
비로사 삼거리에 도착하니 5시 40분이다.
벌써 주위가 어둑해져 비로사 구경은 포기하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20분 안에 1.8km를 가야 한다.
지친 몸을 초코바로 충전시키고 부지런히 걸어 내려갔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6시 03분.
산우들을 많이 기다리지 않게 해서 다행이다.
(너무 멋있어서 흰마루 님 사진을 퍼왔다. 왜 내 사진기는 이렇게 안 나올까?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