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15년 9월 22일 화요일 (맑음)
산행코스: 도래기재 ~ 구룡산 ~ 곰넘이재 ~ 신선봉 ~ 차돌배기 ~ 석문 ~ 석문동
산행거리: 대간 12.0km + 접속 4.0km = 16.0km
산행시간: 10:35 ~ 17:25
등산지도:
지난 토요일 관악산 왕관바위에서 떨어져 다친 후 여기저기 아프다.
다리도 아프고, 엉덩이고 아프고, 팔도 아프고, 손가락도 아프고...
그래도 대간 산행은 가야지.
도래기재에 있는 터널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대간 22차 산행을 시작하였다.
도래기재
구룡산까지는 5.54km란다.
2시간이면 갈 수 있을까?
숲 속으로 들어가자 이내 가파른 계단이 나온다.
진짜 눈물을 꾹 참고서 올라갔다.
걸을 때 다리 힘만으로 걷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 힘으로 걷는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특히 올라갈 때는 엉덩이가 아프니까 도무지 기운을 쓸 수가 없었다.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는데 이를 악물고 스틱에 의지해서 겨우 겨우 올라갔다.
나이 먹어서 고관절이 부러지면 사망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진짜 나처럼 미련한 사람이니까 그 고통을 참으며 올라갔지 웬만하면 산행 포기하지 않았을까?
벤치가 있는 첫 번째 임도를 지나고,
팔각정이 있는 두 번째 임도에 이르니 덕스럽게 생긴 구룡산이 보인다.
구룡산
하지만 생긴 것과는 달리 구룡산 가는 길은 가파른 오르막이다.
게다가 날씨는 왜 이리 더운지.
요새 여름이 다시 온 것 같다.
마치 Indian Summer 같다.
지난번 태백산에서 추웠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럴 줄 알고 더위에는 전혀 대비를 안 하고 부채도 안 가져왔는데...
에고, 몸도 아픈데 덥기까지 하니 정말 힘들다.
가파르지만 아름다운 숲 터널도 지나고,
멋진 나무들도 지나서,
드디어 구룡산에 도착하였다.
구룡산 정상
서둘러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떠났다.
오늘은 아파서 빨리 갈 수가 없으니 되도록 쉬지 말고 천천히 계속 가야 한다.
물론 안 아팠더라도 빨리 못 갔겠지만.
고직령을 지나 곰넘이재에 도착하였다.
고직령
곰넘이재
여기에서 진조동 참새골로 내려갈 수 있다.
구룡산 이후로 여기까지는 길이 순탄했지만 다시 신선봉까지 올라가야 한다.
한동안 산불방화선이 이어지더니 깔딱고개가 나온다.
신선되기 정말 힘들다. ㅠㅠ
나 신선될 생각 전혀 없는데.
앞사람 꽁무니만 따라 고행하는 마음으로 기를 쓰고 올라갔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신선봉 정상
신선봉에는 덩그러니 잡초가 무성한 무덤이 있었다.
무엇하러 이 높은 곳에 묘를 썼나?
내가 죽으면 장례식장을 분홍색 장미꽃으로 치장해달라고 해야지.
그리고 화장을 해서 하얀 상자에 담아 작고 예쁜 묘비를 세운 잔디 아래에 묻어달라고 해야지.
노르웨이 교회 묘지에서 봤던 것처럼 묘석 주위에 색색의 꽃도 심어줬으면 좋겠다.
봤을 때 "아, 예쁘다." 하는 그런 묘지를 갖고 싶다.(?)
나도 참 별나다. ㅋㅋㅋ
묘비에는 "예수님을 닮으려 애썼던 ㅇㅇㅇ, 여기 육신의 옷을 벗다."라고 쓰면 어떨까?
이 말 정말 마음에 든다.
그러려면 예수님께 욕이 되지 않도록 내가 자알~ 살아야겠지?
"한 사람의 진정한 위대함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를 섬겼느냐에 있지 않고,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섬겼느냐에 있다"는 말처럼 나도 섬기는 자로 살고 싶은데 내 안의 이기심과 죄로 인해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시겠지?
여전히 많이 부족할지라도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면 그것으로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는 사실에 큰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는다.
신선봉을 지나 차돌배기에 가까이 갈수록 투구꽃들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투구꽃
차돌배기에 도착해서는 벤치에 벌러덩 드러눕고 말았다.
아이고, 더워. ㅠㅠ
아이고, 엉덩이야. ㅠㅠ
아이고, 다리야. ㅠㅠ
나 더 이상 못가!!!
차돌배기
오늘 정말 더워서 물을 잘 안 마시는 내가 물이 다 모자를 지경이다.
그런데 석문동으로 내려가는 길이 이렇게 길었나?
5시까지 내려오라고 하셨는데 도저히 5시까지는 못 내려갈 것 같다.
석문동으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데다 도토리들이 깔려 있어서 더 미끄러웠다.
게다가 다리와 엉덩이에 힘을 못 주니까 내려가는 길에 자꾸 미끄러진다.
아이고, 내가 여길 왜 왔나. ㅠㅠ
운동을 너무 심하게 하면 빨리 늙는다는데 백두대간 끝나고 팍삭 늙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이게 석문인지?
이게 석문인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석문을 지나고 석문계곡을 따라 석문동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에는 꽃향유와 고마리가 많이 피어 있었다.
꽃향유
고마리
오늘 정말 힘들게 한 구간 끝냈다.
끝까지 대간 산행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싶은데...
해야 하는데...
지난주 설악산 대한민국봉에 갔을 때 어떤 분이 떨어져서 다쳤는데 하산하고 싶은 걸 나 때문에 참고 올라왔다고 하셨다.
misscat도 가는데 내가 못 갈까 하는 마음으로 올라왔다고.
그때는 그 말이 고깝게 들렸는데 생각해보니 그렇게라도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좋은 거 아닌가?
만약 내가 대간을 완주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도전을 줄 수 있지 않을까?
misscat도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