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Eric Weiner
학창 시절 C+라는 치욕스러운 점수를 준 과목 두 개가 있었는데 철학 개론과 체육이었다.
체육이야 원래 나하고는 거리가 머니까 신경 안 쓰지만 철학 개론은 나름 관심이 있던 분야였는데...
강한 경상도 사투리의 교수님은 안 그래도 어려운 철학을 더 어렵게 만들었고 철학과 나 사이를 완전히 갈라놓았다.
이후 어쩔 수 없이 칸트니 헤겔이니 철학 주변을 떠돌아야 했을 때에도 한 번 멀어진 마음을 돌이키긴 힘들었다.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철학을 다시 접하게 되었다.
열네 명의 철학자들을 소개하는 이 책은 일단 쉽다.
그리고 재미있다!
운동과 게임을 하면 할수록 재미있어지는 것처럼 진짜 읽을수록 재미있다.
구면인 철학자들도 있고 초면인 철학자들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학파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게 되어 좋았다.
그러나 니체는 여전히 아리송했다.
자신이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자가 니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건지, 내가 이해를 못한 건지.
분명 내가 이해를 못한 것이겠지.
그나저나 "신은 죽었다."고 한 니체의 <영원회귀>를 설명하는데 왜 성경이 생각나는 걸까?
이미 성경에서 다 말하고 있는 내용들인데...
니체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철학자들도 성경을 알았더라면, 성경 속의 말씀을 깨달았더라면, 고통스럽게 진리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란 생각이 드니 난 영락없는 예수쟁이인가?
어쨌거나 철학은 추상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라 인생을 "제대로" 살게 해주는 아주 실용적인 지침서이다.
그대로 살지 못하는 게 문제겠지만.
내 머리가 좋다면 책을 통째로 다 외우고 싶은데 그건 불가능할 것이고, 잘 늙어갈 수 있는 열 가지 방법은 꼭 기억하고 싶다.
① 과거를 받아들일 것.
② 친구를 사귈 것.
③ 타인의 생각을 신경 쓰지 말 것.
④ 호기심을 잃지 말 것.
⑤ 프로젝트를 추구할 것.
⑥ 습관의 시인이 될 것.
⑦ 아무 것도 하지 말 것. 활동을 위한 시간이 있다면 게으름을 피우기 위한 시간도 있다.
⑧ 부조리를 받아들일 것.
⑨ 건설적으로 물러날 것.
⑩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넘겨줄 것.
"열정을 잃어버린 사람만큼 늙은 사람은 없다."는 소로의 말에서 나의 쓰잘데없는 호기심을 정당화하고, "노년이 이전 삶에 대한 터무니없는 패러디가 아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보부아르의 말에서 다시 또 목표지향적으로 살아야 하나 고민을 한다.
그런데 사실 시급한 것은 "나이 들수록 더 강렬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주의하는 것이리라.
감탄할 만큼 의지가 강한 젊은 여성은 짜증날 만큼 고집 센 할머니가 된다나? ㅋ
모처럼 흥미진진한 책을 만나 감사하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전혀 영양가 없어 보이는 이 책의 시시껄렁한(?!!) 주제들을 가지고 나만큼 따지고 확인하기 좋아하는 피곤한 사람과 함께 지적 유희를 즐길 수 있으면 진짜 재미있을 거 같다.
아니, 답이 없는 그 논쟁이 너무 끔찍할까?
그나저나 내가 스토아 학파였나?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그가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