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21년 9월 9일 목요일 (맑음)
산행코스: 중심이마을 ~ 소암봉 ~ 마니산 왕복 ~ 죽산봉 ~ 노고산 ~ 죽산마을
산행거리: 6.3km
산행시간: 10:00 ~ 15:20
산행트랙:
등산지도:
이번에도 3주 만의 원정 산행이다.
지난번 원정 산행은 산행이라기보다는 산책이었고, 그동안 가까운 관악산과 청계산은 계속 다녔지만 근교 산은 혼자 다니기가 무서워 동호회 산악회를 따라다니다 보니 애피타이저만 먹고 메인 코스를 안 먹은 느낌이다.
오늘은 영동의 어류산, 마니산, 노고산을 간다.
검색을 해보니 어류산은 채석장과 벌목 지대가 있어 등로가 없다고 봐야 한단다.
오르내리는 길이 무척 험하다고.
그럼 중심이마을에서 사자머리봉으로 올라가서 마니산, 노고산을 탈까?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중심이마을에서 사자머리봉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에 위치한 엘로힘 연수원을 통과할 수가 없단다.
통과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쪽 길 또한 가시덤불 투성이라 지금 같은 때는 사서 고생일 것이 뻔하고.
고심 끝에 중심이마을에서 소암봉으로 올라가서 마니산을 찍고 되돌아 내려가 노고산으로 가기로 하였다.
대장님은 어류산에서 내려가는 길만 좀 험하지 괜찮다고, 오지 산행이 다 그런 것 아니냐고 하시지만 쓸데없이 고생하고 싶진 않거든요.
일행들이 어류산 들머리인 태소마을에서 내린 후 나와 임병수운님, 모기발님 세 명만 중심이마을로 갔다.
버스에서 내리자 개 짖는 소리를 듣고 엘로힘 수련원 직원분이 쏜살같이 달려 나오더니 수련원 쪽으로 하산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하신다.
그쪽으로 안 내려갈 것이라고 안심을 시켜드리고 왼쪽 임도를 올라갔다.
조금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등산로 입구가 나온다.
등산로 초입에서 바라보는 마니산은 중심이마을을 병풍으로 두른 듯하다.
등산로 입구에서 주능선까지는 400m가량 가파르게 올라간다.
칡덩굴 지대를 통과하기도 하는데 등로 정비를 해놓아서 그렇지 안 그랬다면 이쪽 길도 고생을 바가지로 했을 것 같다.
이후 등로의 흔적이 가물가물한데 무조건 능선을 향해 치고 올랐다.
주능선에 도착한 후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참으로 가파르다.
오랜만에 힘든 산행을 해서 그런지, 백신 접종을 해서 그런지 너무 힘들어서 여러 번 쉬어가며 올라갔다.
마니산 정상을 찍은 후 가야 할 죽산봉과 노고산, 오정저수지도 보이고, 가야 할 능선도 보인다.
그런데 저게 소암봉인가, 마니산 정상인가?
선답자들의 블로그에서 봤던 밧줄 구간을 지나 계속 가파르게 올라간다.
조망이 뚫리는 곳에서는 왼쪽으로 천태산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어류산과 중심이마을, 금강이 보인다.
천태산
어류산(가운데)과 중심이마을
금강
가야 할 마니산 정상
그런데 소암봉이 어디지?
나무에 팻말이 걸려있던데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산성터로 올라가기 직전에 쉽게 가겠다고 산허리를 타고 가다가 알바를 하였다.
등로 같아서 따라갔는데 짐승들이 다니는 길이었나?
(이거 혹시 말굽버섯?)
어쨌든 1시간 30분 만에 마니산 정상에 도착하였다.
1.75km밖에 안되니 엄청 천천히 간 것이다.
뭐, 오늘은 산행 시간이 기니까 빨리 내려가 봐야 할 일도 없고.
마니산 정상
조망이 없는 마니산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쉬다가 오던 길로 되돌아 내려갔다.
마당바위까지 가보고 싶었지만 급경사 내리막길을 보고 쉽게 마음을 접었다.
산성 터를 지나고, 밧줄 구간을 지나 계속 내려가면 안부에 도착한다.
산성터
이제 죽산봉과 노고산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미리 얘기하자면 이제부터는 등로를 기대하면 안 된다.
그냥 방향만 보고 능선을 따라간다.
게다가 안부에서 죽산봉 올라가는 길이 너무 가파르고, 가파르게 뚝 떨어졌다가는 노고산 올라가는 길이 또 너무 가파르다.
"길"이라고 말은 했지만 길이 있어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헤치며 가는 것이다.
날것 그대로의 오지 산행인 것이지.
덕분에 거미줄을 뒤집어쓰고, 여기저기 긁히며, 나뭇가지에 눈도 찔려가면서 산행을 했다.
산행 루트만 보자면 욕 나올 상황이지만 다행히 조망이 기막히다.
마니산과 어류산, 금강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사방으로 산들이 물결치며 흘러간다.
저 산들 중 내가 갔던 산들도 있을 텐데 이름을 알 수 없어 답답하다.
영동이니까 각호산, 민주지산도 어디쯤인가 있을 텐데.
어쨌든 너무 좋다, 좋아!
등로 정비만 된다면 진짜 괜찮은 산행지인데.
마니산
어류산
금강
도라지 모싯대
죽산봉 정상
노고산 정상 주위에도 축성의 흔적이 있다.
조망이 없지만 지금까지 너무 경치가 좋았기 때문에 아쉬움이 없다.
노고산 정상
노고산 정상에서 90도 왼쪽으로 꺾여 내려가야 하는데 모르고 직진하다가 또다시 잠깐 알바를 하였다.
그래도 참 잘 찾아다녀요. ㅎ
노고산에서 내려가는 길을 잠시 등로가 분명하여 이제 고생 끝인가 싶었지만 봉우리를 하나 지나고 나서는 또 오리무중이다.
고꾸라질 듯 가파른 길을 죽청교를 바라보며 죽산마을을 향해 내려갔다.
들짐승이나 다닐 듯 한 길을 헤집고 내려갔더니 왼쪽으로 임도가 보였다.
휴~, 이제 진짜 고생 끝이네.
죽산마을에서 바라본 노고산
버스 출발 시간까지 1시간 30분 이상 남아 근처 식당에서 요기를 하려고 하였다.
마을회관에서 나오시던 할머니께 양해를 구한 후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근처에 식당이나 가게가 있느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늙은이들만 있고 암 것도 없단다.
그럼 죄송하지만 찬물 좀 마실 수 있겠느냐고 여쭈었더니 커피를 타주겠다고 마을회관으로 들어오라고 하신다.
감사하지만 더워서 뜨거운 것은 못 마시겠다고, 그냥 찬물 있으면 좀 달라고 했더니 마을회관에는 찬물이 없다며 자기 집으로 가서 찬물을 마시란다.
그래서 마을회관 앞에 있는 할머니 댁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 주시는데 생명수가 따로 없다.
그러더니 산에 갔다 와서 얼마나 배고프겠느냐며 부침개를 해주시겠다고 그동안 포도를 먹고 있으란다.
영동 포도가 유명한 줄은 알았지만 세상에 포도가 아니라 완전 사탕이다.
신나게 포도를 먹고 있자니 뚝딱 부침개를 만들어 오셨다.
고추가 들어가 매콤한 게 어찌 그리 맛있는지.
부침개 먹고 마시라고 요구르트도 주시고.
너무 감사하다.
안 받는다고 하시는 할머니께 누가 외지인에게 이렇게 해주느냐, 너무 감사해서 그런다고 말씀을 드리고 고쟁이 주머니에 만원을 찔러 넣어 드렸다.
떠날 때는 가져가서 먹으라고 포도를 푸짐하게 싸주셨다.
산에 많이 다녔지만, 요새는 시골 인심이 더 무섭던데 이런 푸근한 인심을 오랜만에 느껴보기에 더 감사한 하루였다.
나그네를 대접한 고마우신 할머니